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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의 선택, 패스트트랙 시간표 나왔다…왜 12월 3일인가

중앙일보 2019.10.29 17:39
국회 신속처리(패스트트랙·fast track) 안건으로 지정된 ‘검찰·정치개혁’ 법안의 시간표가 나왔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9일 한민수 국회 대변인을 통해 “12월 3일 사법개혁(검찰개혁)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본회의에 부의된 이후에는 신속하게 처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검찰개혁 법안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2건 등 4건이고, 정치개혁 법안은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 1건이다. 문 의장이 ‘신속한 상정’ 방침을 밝힘에 따라 이 5건의 법안은 이르면 12월 초 운명이 판가름날 전망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본회의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본회의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부의와 상정은 어떻게 다른가=사전적으로 ‘부의(附議)’는 토의에 부친다는 의미다. 12월 3일에 검찰개혁 법안이 본회의에 부의된다는 것은 그날을 기해 검찰개혁 법안 4건을 본회의로 넘긴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바로 표결 절차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려면 본회의에 ‘상정(上程)’돼야 한다. 토의할 안건을 회의 석상에 내어 놓는다는 것인데, 그래야만 의사일정에 올라가고 표결에 부칠 수 있다.

 
문 의장이 “12월 3일 부의 이후 신속하게 상정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그래서다. 패스트트랙 관련 규정이 담긴 국회법 제85조의2에 따르면, 패스트트랙 안건은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보는 날부터 6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돼야 한다. 늦어도 내년 1월 말까지는 본회의 표결에 부쳐져야 하는데, 문 의장은 이 시점을 최대한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한민수 국회 대변인. [연합뉴스]

한민수 국회 대변인. [연합뉴스]

◇부의 시점, 왜 달라졌나=당초 문 의장이 국회입법조사처를 통해 부의 가능 시점에 대한 법률 자문을 받았을 때, 자문에 응한 9명 중 과반인 5명이 ‘12월 3일’을 꼽았다. 다수설의 논리는 검찰개혁 법안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한 4월 30일 이후 숙려기간(180일 간)인 10월 28일까지가 심의 기한이긴 하나, 동시에 소관 위원회였던 사법개혁특위가 8월 말 활동을 종료하면서 법안을 의결 없이 법사위로 넘긴 9월 2일부터 체계·자구 심사 기간 90일이 시작됐다고도 봐야한다는 것이다.

 
한민수 대변인에 따르면 법사위 고유 법안은 심의 기간에 체계·자구 심사도 포함된다는 것이 국회의 관행인데, 검찰개혁 법안은 사개특위에서 법사위로 넘어간 9월 2일부터 법사위 고유 법안이 됐으므로 이 때부터는 체계·자구 심사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체계·자구 심사 기한은 90일인데, 10월 28일 시점에는 이 기간이 57일에 불과하므로 90일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회 패스트트랙 검찰개혁 법안 처리 예상 일정. 그래픽=신재민 기자

국회 패스트트랙 검찰개혁 법안 처리 예상 일정. 그래픽=신재민 기자

앞서 민주당은 검찰개혁 법안이 법사위 소관으로 넘어갔으니, 관례에 따라 별도의 체계·자구 심사 기간을 생략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논리대로라면, 사개특위 종료 후 법사위로 넘어온 순간부터 법사위 고유법안이므로 언제든 부의가 가능하다고 봐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설령 숙려기간을 지키더라도 논란이 있을 수 있어서다. 만일 10월 21일 법사위 고유법안이 됐다면 숙려기간인 10월 28일까지 단 일주일 안에 법안심사는 물론 체계·자구 심사까지 마쳤다고 볼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당은 180일의 숙려기간이 끝난 뒤, 별도의 체계·자구 심사 기간 90일을 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르면 일러도 내년 1월 29일이 돼야 본회의 부의가 가능했다.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 의장은 지난 28일 이 같은 여야 입장을 전달 받은 뒤 ▶패스트트랙 안건의 연착륙을 연말 이후까지 미룰 수 없고 ▶공수처 설치 법안을 우선처리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을 수용해도, 바른미래당·정의당·평화당 등 야 3당이 반발하는 만큼 이들 법안의 본회의 처리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현실적 고려를 했다고 한다. 당초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에 합의하면서 선거법 개정안을 검찰개혁 법안에 앞서 본회의 표결 처리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문 의장으로선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다. 

 
29일 오후 국회에서 14시에 개회 예정이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시작이 간사협의 등으로 지연되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오후 국회에서 14시에 개회 예정이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시작이 간사협의 등으로 지연되고 있다. [연합뉴스]

◇12월 3일은 어떤 의미인가=9월 2일부터 90일 더해 계산한 날짜가 12월 3일이지만, 공교롭게도 이날은 법에서 정한 내년도 예산안 심사 기한(11월 30일)과 맞물려 있다. 여야가 예산안을 확정짓지 못해도, 국회법에 따라 11월 30일이 지나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지난 8월 29일 정치개혁특위에서 의결돼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최대 90일) 단계에 있는 선거법 개정안도 11월 27일이면 패스트트랙 절차에 따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따라서 12월 3일은 검찰·정치개혁 법안과 내년도 예산안 등 3건의 굵직한 의안이 모두 본회의에 올라가 있는 시점이다.

 
이 때문에 이날 문 의장의 결정을 두고 “패스트트랙 안건과 예산안을 일괄 처리할 수도 있다”는 일종의 ‘여야 압박용’ 카드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실제 한 국회 관계자는 “야당 입장을 충분히 수용해 내린 결정인 만큼 3일 부의 이후에는 의장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로써 민주당이 추진했던 공수처 설치 법안 우선 처리는 사실상 무산됐다. 다만, 한 대변인은 “12월 3일 이전에라도 여야가 합의한다면 신속하게 부의·상정할 수 있다”고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를 권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문 의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변선구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열린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를 권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문 의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변선구 기자

◇12월 3일 이후에는 통과되나=이날 긍정 반응을 보인 것은 바른미래당뿐이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우리로써는 원칙을 이탈하는 해석이다.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12월 3일도 맞지 않다. 법에 어긋난다”고 했다. 
 
그러나 여야 간 이견이 12월 3일 이후에도 좁혀지지 않는다해도, 본회의 표결 절차가 내년으로 늦춰질 가능성은 적다. 문 의장의 ‘신속 상정’ 의지 때문이다. 그럴 경우 민주당(128석)·바른미래당(28석)·정의당(6석)·민주평화당(4석) 등 여야 4당과 대안신당(무소속·10석)의 의석수(176석)만으로도 과반 의결이 가능하다. 결국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 당시 여야 4당의 공조가 얼마나 단단하게 유지되느냐에 따라 검찰·정치개혁 법안의 운명이 걸렸다는 것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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