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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스위니토드’- '연기장인' 조승우의 또다른 변신

중앙선데이 2019.10.29 14:22
스릴러 뮤지컬의 전설 ‘스위니토드’가 다시 돌아왔다. ‘미국 뮤지컬 사상 가장 혁신적인 작사·작곡가’이자 뮤지컬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 스티브 손드하임의 대표작이다. 1979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충격적인 걸작’이란 평가와 함께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상을 비롯해 총 8개 부문을 수상했다.

[유주현 기자의 컬처 FATAL]
샤롯데씨어터 2020년 1월 27일까지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40년 역사의 검증된 작품이지만, 국내에선 2007년과 2016년 단 두차례 공연됐다. 초연 당시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최우수외국뮤지컬상을 수상하는 등 높은 완성도와 예술성을 인정받았지만, 뮤지컬 산업 초창기이던 2000년대 중반 기준으로 대중적인 무대는 아니었던 탓이다. 뮤지컬에서 흔히 기대하는 대중적이고 서정적인 아리아풍 멜로디가 아니라 불협화음을 사용해 불편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과 육두문자가 난무하는 노랫말, 유혈이 낭자하는 복수의 드라마는 당시 우리 수준에서 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뻔한 작품들에 식상함을 느끼던 우리 관객에게 2016년 돌아온 ‘스위니토드’는 새로운 대안이 됐다. 새로운 무대에 목말라 있던 관객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예술성 넘치는 70년대 브로드웨이의 혁명에 새삼 반응하기 시작했다. 조승우라는 최고의 티켓파워까지 가세해 대박을 터뜨렸고, 3년 만에 돌아온 이번 시즌 역시 티켓 예매 오픈 2분 만에 전량 매진되며 흥행 레퍼토리로 정착하는 모양새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19세기 영국. 15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돌아온 이발사 벤자민 바커가 아내와 딸을 뺏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터핀 판사를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그를 흠모하는 파이가게 주인 러빗부인과 힘을 모아 인육 파이를 만들어 팔며 세상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는 과정에 런던의 귀족주의와 산업혁명기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담겼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부패·음모·광기·복수·살인 등이 이 ‘스릴러 뮤지컬’을 관통하는 키워드들이지만, 음산하고 공포스런 무대는 아니다. 비극적 스릴러와 천연덕스러운 유머 코드가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한다. 어딘지 어두우면서도 통통 튀는 유머와 날카로운 풍자로 경쾌한 리듬을 타고 흐르는 극을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숨겨진 퍼즐 조각을 놓치지 않으려면 시작부터 바짝 긴장해야 한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이번 시즌엔 무대가 확 바뀌었다. 상징적인 3층 구조물 하나와 강렬한 조명만 사용한 실험적인 미니멀리즘으로 승부했던 2016 시즌은 “지나치게 수수한 것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 이번엔 뮤지컬 ‘타이타닉’으로 주목받았던 무대 디자이너 폴 드푸를 기용해 대극장에 걸맞은 스케일로 업그레이드했다. 어두운 런던 뒷골목의 폐공장을 모티브 삼은 철골 구조를 기본으로, 거대한 벽과 트랙을 따라 움직이는 철골 다리, 스위니토드의 이발소가 있는 플랫폼과 러빗 부인의 커다란 화로 등 자동으로 움직이는 대도구를 적극 활용해 다양한 장면을 연출한다. 빠른 템포로 흘러가는 이야기와 음악에 빠른 무대 전환으로 호흡을 맞춘 셈이다.
 
다시 돌아온 조승우는 또다시 새로워졌다. 발성까지 확 바꿔 시종일관 강력한 무대화술로 ‘스위니토드’에 완벽히 빙의한다. 그밖에도 홍광호·박은태·옥주현 등 뮤지컬계 블루칩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됐지만, 그렇다고 주인공만 돋보이는 무대는 아니다. 배우들간의 앙상블이 관건인 무대다. 솔로곡은 거의 없고, 대위법을 잔뜩 사용해 정신없이 엇갈리는 고난도의 이중창, 삼중창, 사중창이 스릴과 위트를 고조시킨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압권은 1막 엔딩곡 ‘A Little Priest’다. 스위니토드와 러빗부인이 인육 파이를 만들기로 합의하면서 다양한 파이 종류를 만담처럼 열거하는 박장대소 장면. “이건 변호사”“비싸겠는데”“주둥이만 살아서 그런지 씹는 맛이 최고죠”“공무원 어때 아주 든든해”“꽉 막혔잖아”“그래도 엄청 잘 나가 실속 넘치는 안전빵이라” 등 숨가쁘게 변형되는 리듬을 따라가는 두 배우에게서 장인정신을 발견한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스위니토드' [사진 오디뮤지컬컴퍼니]

박장대소 와중에도 이번 시즌 유독 귓전을 때리는 가사가 있다. “인류의 역사엔 언제나 윗놈이 아랫놈 등쳐먹지, 기막힌 반전이야 윗놈이 아랫놈 식사거리”. 이 ‘스릴러 뮤지컬’이 즐거운 이유는, 우리를 등쳐먹는 ‘윗놈’들을 속시원히 비웃어주기 때문 아닐까.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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