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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 40억 쪽박찬 그 "아내에 당첨 안 알릴수도 있지"

중앙일보 2019.10.29 11:32
28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A씨(67). 전직 공무원인 그는 2003년 12월 로또 1등에 당첨돼 세금 떼고 40억원을 손에 쥔 뒤 사업 투자 등으로 1년 만에 모두 날렸다. 전주=김준희 기자

28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A씨(67). 전직 공무원인 그는 2003년 12월 로또 1등에 당첨돼 세금 떼고 40억원을 손에 쥔 뒤 사업 투자 등으로 1년 만에 모두 날렸다. 전주=김준희 기자

"난 돈보다 명예가 중요한 사람이요."
 

도박판 전전하던 60대 전직 공무원
2003년 로또 1등 51억…실수령액 40억
후배와 서울서 의류사업 하다 20억 날려
선후배 등 돈 빌려줘 1년 만에 빈털터리
"내 성격 원래 낙천적…남 탓하지 않아"

로또 1등 당첨금 40억원가량을 손에 쥐었다 모두 날린 전직 공무원 A씨(67)의 말이다. A씨는 중앙일보가 익명을 원한 제보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난 27일 보도한 <'로또 1등' 43억 당첨된 60대, 2년 만에 쪽박 찬 사연>의 실제 주인공이다.  
 
A씨는 보도가 나간 이튿날 "난 제보자 말처럼 거지처럼 살지 않았다"며 연락해 왔다. 28일 오후 전주 완산구 한 전통시장 내 커피숍에서 A씨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해당 시장은 지난 11일 과거 로또 1등에 당첨돼 실수령액 12억원 중 5억원을 형제 등에게 나눠준 50대 남성이 12년 만에 빚 문제로 말다툼 끝에 친동생을 살해한 곳이다.
 
28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A씨(67).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입은 그는 외모만으론 50대처럼 보였다. 전주=김준희 기자

28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A씨(67).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입은 그는 외모만으론 50대처럼 보였다. 전주=김준희 기자

A씨를 만나기 전 '추레한 옷차림'을 상상했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A씨는 청바지에 갈색 가죽점퍼를 입고 나타났다. 짧게 자른 머리를 검게 염색해 겉모습만 보면 50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A씨는 "기사에 나오는 내 이야기는 전체적 맥락에서 대부분 맞다"면서도 "일부 내용은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됐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짬뽕을 얻어먹으면서 '짬뽕 먹을 자격도 없다'며 구박을 받았다" "도박판에서 '동냥아치' 소리를 들었다" "매일 술집을 돌아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썼다" 등을 지적했다.
 
A씨는 "이왕 기사를 쓸 거면 팩트대로 써 달라"며 인터뷰를 자청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로또는 언제 당첨됐나.
"2003년 12월 (전주 한 복권집에서) 로또 1등 51억원에 당첨됐다. 세금 떼고 39억9000만원을 받았다."
 
-당시 로또는 얼마나 샀나.
"5만원어치 샀다. 로또 한 게임에 2000원이던 때다. 숫자는 자동으로 뽑았다. 4만원어치 4장(1장당 다섯 게임)은 모두 '꽝'이었다. 마지막 장에 있는 A, B, C, D 네 줄까지 번호가 안 맞았다. 마지막 E 줄에서 (1등 당첨) 숫자 6개가 한눈에 싹 들어왔다."
 
-로또 당첨 사실을 부인과 가족에게는 왜 숨겼나.
"당첨되기 전 후배와 1년 가까이 집에 안 들어가고 여관 생활을 했다. 둘이 도박판을 다녔다. 매일 (도박판에서) 담배 피우고 (집에) 들어가면 어린애들(두 딸)에게 담배 냄새 풍겨 안 좋았다. 당시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A씨는 이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로또 당첨금은 어디에 썼나.
"(여관 생활을 하며 도박판을 전전했던) 아는 동생과 서울에 올라가서 사업 등에 투자해 사실상 6개월 만에 당첨금 40억원을 모두 날렸다.(※당초 "A씨가 2년 만에 당첨금을 날렸다"는 제보자 말보다 탕진 기간이 짧았다.) 소문과 달리 술 마시는 등 유흥비로는 수천만원밖에 안 썼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맨 처음 동대문에 사무실을 얻어 의류사업 하는 데 5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옷을 받아 파는 경비로 15억원이 깨져 총 20억원을 1년 만에 까먹었다. 친구가 하는 오락실 사업에 6억원을 투자했다 날렸다. 부도 난 지인 회사를 살리려고 전기공사면허를 산다고 5억원을 썼다. 아는 동생이 부천에서 오락실을 한다고 2억5000만원, 또 다른 동생이 전주에서 사채업 한다고 2억5000만원을 빌려줬다. 나머지 5억원가량은 서로 어려울 때 소주 한잔하던 친구와 선후배 등 지인들에게 빌려줬다가 모두 떼였다. 차용증은 쓰지 않고, '나중에 돈 벌면 갚으라'고만 했다. 아직까지 한 명도 빚 갚은 사람이 없다. (※옆에 있던 A씨 후배가 '난 왜 (돈을) 안 줬냐'고 농담하자 A씨는 "넌 달라고 안 했잖아"라며 웃었다.)"
 
-로또 당첨 후 서울에 올라갈 때 부인에게는 뭐라고 했나.
"내가 원래 도깨비 같은 사람이라 (부인이) 신경을 안 쓴다. 역마살이 끼어 (결혼 후) 평생 집에는 1년에 한두 번 들어갔다. 불나방 같은 삶이었다."
 
-전주에는 언제 돌아왔나.
"2006년 5월 내려왔다. 그 전까지 서울 역삼동에서 보증금 5000만원, 월세 100만원짜리 원룸에 살았다. 당첨금을 모두 까먹은 뒤 막판 6개월간 매일 24시간 술만 마셔 뼈만 남았다. 건강도 나빠져 당뇨병을 얻었다. 이 기간에 안사람이 전주 집을 놔두고 딸들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와 함께 살았다. (몸이 아프자) 아버지 등이 오셔서 우리 가족을 데려갔다."  
 
-서울에 있는 동안 가족 생계는 누가 책임졌나.  
"아버지가 매달 아내에게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를 댔다. 난 유유자적하며 돌아다녔다. 아버지뿐 아니라 처가 쪽도 건물 등 재산이 수십억원이어서 로또 당첨이 안 됐어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었다.(※A씨 부인(57)은 홀로 주점 등을 운영하며 집안 생계를 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은 뭐 하며 지내나.  
"거의 매일 골프를 치거나 체육관에 다닌다. 남한테 민폐 끼치며 살지 않는다."  
 
28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A씨(67). 전직 공무원인 그는 2003년 12월 로또 1등에 당첨돼 세금 떼고 40억원을 손에 쥔 뒤 사업 투자 등으로 1년 만에 모두 날렸다. 전주=김준희 기자

28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커피숍에서 만난 A씨(67). 전직 공무원인 그는 2003년 12월 로또 1등에 당첨돼 세금 떼고 40억원을 손에 쥔 뒤 사업 투자 등으로 1년 만에 모두 날렸다. 전주=김준희 기자

-부인은 로또 1등 당첨 사실을 숨긴 당신을 용서해 줬나.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나. 남자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아이들을 굶기기라도 했나. 잘못했다기보다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다. (※후배는 A씨 부인을 가리켜 "형수는 대인배"라고 추켜세웠다. 실제 A씨 부인은 인터뷰가 이뤄진 커피숍에 있었지만 "남편 얘기가 알려져 딸들 보기 민망하다"고 할 뿐 A씨를 나무라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에게 욕먹을 것 같은데.
"욕먹어도 상관없다. 팩트(사실)대로 말한 거다."
 
-당첨금을 날린 데 대해 후회한 적은 없나.
"없다. 내가 원래 성격이 낙천적이다. 남을 탓하지 않는다. (※A씨 후배가 "이 형님은 돈을 날렸어도 '내 돈이 안 되려고 그랬나 보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신 애들이 잘 컸다. (30대 초반인) 두 딸이 내 능력을 안 믿고, 자기들 나름대로 잘 살았다. 모두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닌다. 딸들이 내가 좋아하는 만큼 아빠를 좋아하고, 내 생각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준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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