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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과거 교재로 쓰인 풍수지리서, 첫 보물 된다

중앙일보 2019.10.29 10:56
풍수지리서의 일종인 지리전서동림조담. [사진 문화재청]

풍수지리서의 일종인 지리전서동림조담. [사진 문화재청]

 
조선은 과거(科擧)의 나라였다. 크게 문과·무과·잡과로 나뉘었는데 각각 문관, 무관, 기술직 중인(통역관·의사 등)을 뽑는 절차였다. 잡과 중에 음양과(陰陽科)는 관상감 관원을 선발하는 시험이었다. 음양과에 응시하기 위해선 천문학·지리학·명과학(命課學) 등을 공부해야 했는데 이 내용에 풍수지리가 포함됐다.  

관상감 관원 뽑던 음양과 교재 '동림조담'
세종실록에 '수강궁' 터 논할 때도 등장
청화백자 항아리 등 3건, 보물 지정 예고

 
교재로는 중국 오대(五代, 907~960) 사람인 범월봉이 지었다고 알려진 「지리전서동림조담」(이하 ‘동림조담’)이 널리 쓰였다. 중국에선 일부 주술적 요소가 있다는 이유로 주희 등 송대 유학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조선에선 국가시험 과목으로 채택된 걸로 볼 때 조선 고유의 풍수관 성립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의 과거 제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조선의 과거 제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문화재청은 29일 개인 소장품인 ‘동림조담’ 등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문‧무과 및 사마과(생원‧진사 선발 시험) 수험서인 유학서적은 상당수 간행됐지만 잡과의 풍수지리서는 수험생이 적어 많이 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전래본이 드물고 보물 지정도 이번이 처음이다.  
 
‘동림조담’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차례 언급된다. 대표적인 게 세종 23년(1441년) 5월 19일 수강궁 터를 논하는 자리에서다. 수강궁은 현재 창경궁 터에 있던 고려시대 궁궐로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 신축해 처소로 삼았다. 세종실록 92권엔 당시 술자(術者), 즉 풍수지리학자였던 최양선이 세종에게 이같이 상소했다고 적혀 있다.  
 
"지리 제서(地理諸書)에서 사묘(社廟)라고 칭한 것은 신불(神佛)을 가려서 말함이니, 《동림조담(洞林照膽)》과 지남 제서(指南諸書)에서 이른바 신전(神前)·신후(神後)의 유(類)가 바로 그것이며 (중략) 이제 창덕궁과 수강궁은 모두 종묘의 주맥(主脈)에 매우 가까워서 비록 좌우에 끊어짐이 없다 하오나, 정맥(正脈)이 있는 곳은 저윽이 파헤쳐지고 손상된 곳이 있사오니, 정업원(淨業院) 동쪽 언덕으로부터 종묘 주산에 이르기까지의 정척(正脊) 좌우의 2, 30 보(步)되는 곳에다가 각각 요량하여 소나무를 재배함이 옳겠나이다."(세종실록 92권)
 
동림조담 등을 근거로 창덕궁과 수강궁 자리가 풍수지리학상 그다지 좋은 입지는 아니지만, 소나무를 심어서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록은 조정이 이를 “그대로 따랐다”고 전한다. 세종과 친견해서 풍수지리를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관상감의 지위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 17세기 이후 성리학이 득세하면서 이 같은 역할은 차츰 예조 관리들에게로 넘어갔다고 한다. 황정연 문화재청 학예연구사는 “조선에서 풍수지리는 사실상 지리‧천문의 의미였고 음양과 역시 계속 치러져 동림조담은 중요 교재로 활용됐다”고 전했다.  
 
이번에 보물 지정 예고된 동림조담은 상권과 하권 22편으로 구성됐고 본문은 조선 건국 후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인쇄되었다. 별도 기록은 없지만 활자 사용으로 볼 때 적어도 태종 연간(1400~1418)에는 인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조선 전기인 15~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白磁 靑畵梅鳥竹文 壺)도 보물 지정 예고됐다. 높이 약 27.8㎝ 크기의 아담한 청화백자 항아리로 겉면에 청화 물감으로 매화, 새, 대나무 등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국보 제170호 백자 청화매조죽문 유개항아리(白磁 靑畵梅鳥竹文 有蓋壺)와 비교할 때 뚜껑이 없어 온전한 한 벌이 아닌 점을 제외하면 문양 장식 기량이 거의 흡사하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 [사진 문화재청]

백자 청화매조죽문 항아리. [사진 문화재청]

 
'대불정수능엄경' 혹은 '능엄경'으로 불리기도 하는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은 전체 10권 중 권1∼2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태조 이성계가 승려 신총에게 글씨를 쓰게 한 뒤 1401년 제작한 목판으로 찍었다. 15세기 말까지 사용된 한글인 반치음과 옛이응이 남은 점과 교정 흔적 등으로 미뤄 15세기에 인쇄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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