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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다녀온 한국역도, "남남 같았다, 입국수속 때 라면 압수"

중앙일보 2019.10.29 10:26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 유소년 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29일 귀국한 한국역도대표팀. 인천=박린 기자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 유소년 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29일 귀국한 한국역도대표팀. 인천=박린 기자

“입국 수속 때 고기가 들어갔다며 라면을 뺏겼다.”

평양 역도국제대회 마친 한국, 29일 귀국
축구만큼 심하지 않았지만, 순탄치 않아
호텔서만 지내고, 어떤날은 마트 못가
북한 관중들, 한국 경기와 시상식 외면

 
평양을 다녀온 한국역도대표팀이 전한 이야기다.  
 
평양에서 열린 2019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역도대표팀은 29일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20일부터 27일까지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대회에서 금메달 14개·은메달 20개·동메달 19개를 합작한 한국 유소년과 주니어 선수 38명은 목에 메달을 걸고 돌아왔다.
 
앞서 지난 15일 한국축구대표팀은 북한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렸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때 푸대접을 받았다. 축구 만큼 홀대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인천공항에서 만난 역도대표팀 선수단은 일주일간 평양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전했다.
 
주니어 여자 최중량급(87㎏ 이상) 우승자 이선미(19·강원도청)는 “입국 수속 때 고기가 들어간 라면을 빼앗았다. 안걸린 애들도 있지만 고기가 조금조금 들어간 라면은 뺏겼다”고 전했다. 라면은 한국 진라면이었다. 이선미는 이번대회 인상 127㎏, 용상 150㎏, 합계 277㎏로 금메달 3개를 싹쓸이하면서 ‘포스트 장미란’이라 불리는 선수다.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 유소년 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 주니어 여자 최중량급에서 금메달 3개를 싹쓸이한 이선미. 인천=박린 기자

평양에서 열린 아시아 유소년 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 주니어 여자 최중량급에서 금메달 3개를 싹쓸이한 이선미. 인천=박린 기자

한국역도대표팀도 축구대표팀처럼 휴대폰 없이 방북해 호텔에서만 지냈다. 유소년 여자 최중량급(81㎏ 이상) 우승자 박혜정(16·선부중)은 “호텔이 답답하기도했고 휴대폰도 못썼지만, 선후배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며 돈독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선미는 “복도에서 언니들과 게임하기도 했다”고 했다. 또 이선미는 “어떤 날은 마트에 가도 뭐라고 안하는데, 어떤 날은 마트에 가면 북측에서 제재하는 사람이 나오라고 했다”고 전했다.  
2019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 대회가 열리고 있는 평양 청춘가역도전용경기장에서 유소년 여자 81㎏급에 출전해 인상, 용상, 합계 1위를 기록한 박혜정이 27일 오후 시상대에서 미소짓고 있다. 이날 박 선수는 인상 110㎏, 용상 145㎏, 합계 255㎏을 들어올리며 전부문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9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 대회가 열리고 있는 평양 청춘가역도전용경기장에서 유소년 여자 81㎏급에 출전해 인상, 용상, 합계 1위를 기록한 박혜정이 27일 오후 시상대에서 미소짓고 있다. 이날 박 선수는 인상 110㎏, 용상 145㎏, 합계 255㎏을 들어올리며 전부문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사진공동취재단

 
그래도 북한은 한국 선수단에 5성급 호텔에서 숙박과 식사를 제공했다. 박혜정은 “음식은 맛있게 해주셔서 웃고 떠들면서 먹었다”고 전했다. 이선미는 “음식을 잘해주셨다. 국이 한국과 비슷했다. 닭이 들어간 흰색과 빨간색 국이었다”고 말했다.  
 
이선미는 “경기장 밖은 90년대 한국모습 같았지만, 훈련시설은 운동하기 좋았다”며 “다만 운동시간은 원래 2시간이고, 다른나라에서는 조금 더 해도 뭐라 안하는데, 이 곳에서는 시간이 되니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대회 기간 남북선수들간 대화는 없었다. 박혜정은 “경기장에서 멀리 앉아있어 눈치만 보는 시간이 많았다”고 했다. 이선미도 “마주칠 일이 없어서 인사할 일도 없었다”고 했다.   
2019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22일 평양 청춘가역도경기장을 찾은 평양 시민들이 남측 선수의 순서가 되자 자리를 비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9 아시아 유소년·주니어 역도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22일 평양 청춘가역도경기장을 찾은 평양 시민들이 남측 선수의 순서가 되자 자리를 비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 관중 60여명은 한국선수 경기와 시상식 때 우르르 자리를 비웠다. 반면 북한선수 시상식 때는 관중석으로 돌아와 국가를 제창했다. 박혜정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반대로 우리는 박수도 쳐주고 호응도 많이 해줬다”고 말했다. 이선미는 “북한 시민들이 많이 왔는데, 남남 같았다. 원래 기록을 내면 박수를 쳐주는데, 북한 선수들에게만 쳐줬다”고 전했다.
  
이진현 연맹 부회장은 “식사와 잠자리는 호텔 5성급 대우를 받았지만, 어려움도 있었다”며 “북한 관중이 다 빠져나가 우리선수들이 혼선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이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말했다.
 
북한노동신문은 지난 29일 “북한이 금메달 55개 등 총 93개 메달을 땄고, 37개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고 보도하면서, 한국의 경기결과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세계신기록 37개 보도에 대해서는 “그렇지는 않고 조금 부풀린 것 같다”고 전했다. 이선미는 “스포츠는 정치랑 관계없이 다같이 어울려서하는 운동이니깐, 앞으로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또 이선미는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편 29일 대한역도연맹에 따르면, 북한 역도 관계자들이 내년 2월말 국내에서 열릴 예정인 제1회 동아시아 국제 역도대회 참가 여부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아시아역도연맹(AWF) 측에 전했다. 
 
인천=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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