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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2014년 일반화된 서비스, 한국에선 2019년 '불법'

중앙일보 2019.10.29 09:11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다. 'AI 정부'를 자임했다. 정부의 AI 전략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만시지탄이다. 그러나 믿음이 안 간다. 대통령이 'AI로 가자'라고 역설하던 바로 그 시간, '타다'는 불법 기소됐다. '타다'도 못 타게 하면서 무슨 AI를 논하는가? 택도 없는 일이다.

'타다' 서비스, 불법 기소로 또다시 시험대
중국선 2014년 이미 상용화된 O2O서비스
中 정부의 과감한 규제 철폐와 적극적 지원
기업은 혁신으로 응답, AI 선진국 초석 깔아

AI가 어찌 하루아침에 될 일이던가. 억지로 될 일도 아니다. 그래서 또다시 중국을 본다.

검찰의 불법 기소로 '타다' 서비스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검찰의 불법 기소로 '타다' 서비스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응답하라 2014!'

 
중국 인터넷 산업 발전에서 있어 2014년은 변곡점같은 해였다. 그 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한 해의 시작이라는 '춘절(우리의 설)'에 벌어졌다.

 
중국인들은 설에 '홍빠오(红包)'를 돌린다. 우리로 치자면 세뱃돈이다. 붉은색 봉투(红包)에 현금을 넣어 준다. 그런데 '위챗 홍빠오'라는 게 생겼다. 핸드폰 '위챗' 앱으로 들어가 홍빠오를 누르면 휙~ 전달된다. 한 명에게도 보낼 수 있고 100명에게도 원 샷에 보낼 수 있다. 1위안(약 170원)도 보내고, 1만 위안(170만원)도 가능했다.
 
받은 건 현금이 아닌데,
쓸 때는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와우~! 재밌네. 친구끼리, 선생님과 제자가, 멀리 떨어진 친적끼리도 '디지털 홍빠오'를 주고받았다. 핸드폰 결제가 아직 낯설던 시절, 재밌으니 모두 따라 했다. 너도나도 텐센트(腾讯)의 앱 '위챗'을 깔았고 계좌와 연결했다. 폭발적이었다. 모바일 결제는 급속도로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거지의 구걸 바가지에도 QR코드가 달려있었다.
 
중국인들의 현금 사랑은 유별나다. 그런 그들이 위챗페이, 알리페이 등을 쓰면서부터 지갑을 비우고 다녔다. 중국은 그렇게 신용카드를 뛰어넘어 모바일 결제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의미를 우리만 몰랐을 뿐이다.

중국의 택시 호출 서비스인 '디디'는 2012년에 시작해 2014년 급속하게 거리로 퍼져나가게 된다.

5월에는 '디디다처(滴滴打车)'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택시 호출 서비스다. 이 역시 하루아침에 뚝딱 나온 건 아니었다. 시작은 2012년 선보인 택시 예약 서비스다. 당시는 택시를 하루 전날 예약했다. 별 볼 일 없는 서비스, 그러나 2013년 텐센트가 이 회사에 150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택시 호출서비스는 2014년 1월 위챗 앱에 추가된다. 택시 기사에도 혜택을 줬다. 위챗을 열어 택시를 부르면 그 즉시 달려오고, 내릴 때 결제도 됐다.

 
우버를 베꼈네? 그러나 우버와 달랐다. 중국 사용자들은 '앱인앱(app-in-app)'을 만끽했다. 위챗에 들어가면 SNS도 하고, 택시도 부르고, 결제도 하고…. 택시호출 서비스는 '홍빠오 열풍'을 타고 급속하게 거리로 퍼져 나갔다. 편했다. '우버 선생님'은 결국 2년 후 보따리를 싸야 했다.
 
2014년 9월에는 세계를 놀랄 일이 벌어졌다. 알리바바가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250억 달러였다. 사상 최대 규모. "페이스북보다 많다고? 중국 업체가? 어떻게 그게 가능해?" 세계가 놀라는 건 당연했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은 중국 IT 회사들이 뉴욕 시장에 올랐다. 그러나 알리의 상장은 의미가 달랐다. 중국에도 고유 인터넷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생태계가 말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2014'의 가장 극적인 사건은 9월 10일 벌어졌다. 당시 톈진에서 열린 하계 다보스 포럼. 리커창 총리의 연설에 이 단어가 나온다.
 
'대중창업, 만중창신(大众创业 万众创新)'
 
"젊은이들이여 창업하라, 정부는 IT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혁신을 지지한다"라는 선언이었다. 인터넷 발전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으로 돌아서겠다는 분명한 사인이었다. 정부 정책은 이듬해 3월 열린 전인대 정부업무보고에서 '인터넷플러스' 정책으로 구체화한다. 

베이징의 창업 거리인 중관춘을 방문한 리커창 총리

창업 붐, 혁신의 붐 물결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중앙정부가 창업을 얘기하니, 지방 정부는 주요 도시에 창업 보육센터를 조성했다. 재정 자금이 인터넷 벤처로 방향을 트니 거대 민간 투자자금이 유망 벤처기업가를 찾아 나섰다. 민간이 하겠다는 건 그냥 내버려 뒀다.
 
우리는 그 이후 중국 인터넷 업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O2O(Online-to-Offline) 서비스의 폭발'이다. 인터넷은 중국에서 단순한 정보전달의 수단이 아닌 생활의 영역으로 치고 들어왔다. 음식을 시켜 먹고, 커피를 주문하고, 겨울옷을 주문하고, 고속전철을 예약하고…. 각 영역에서 수많은 스타트업이 탄생했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 나갔다. 마윈은 재신(财神)이자, 롤 모델이었다. 청년 거부가 속출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게 바로 데이터다. 음식을 시킬 때, 겨울옷을 주문할 때, 고속전철을 예약할 때도 데이터는 쌓여갔다. 생활 인터넷의 장점이다. '이젠 DT(데이터 기술)시대'라는 마윈의 2016년 선언은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
 
차곡차곡 쌓인 데이터가 향하는 곳이 바로 AI다. 2014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오늘 중국 AI로 이어진 것이다. 결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봄 소쩍새 울지 않고,
먹구름 속 천둥이 또 그렇게 울지 않는데,
어찌 한 송이 국화꽃이 필 수 있겠는가….
 
AI는 그런 영역이다.
 
'타다'도 못 타게 하면서 AI를 말한다고? 거듭 말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다.
 
차이나랩=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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