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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일본 빼앗겼다"···그렇게 아버지는 혐한론자가 됐다

중앙일보 2019.10.29 05:00
일본 도쿄 도심을 행진하고 있는 혐한 시위대 [중앙포토]

일본 도쿄 도심을 행진하고 있는 혐한 시위대 [중앙포토]

일제시대 일본군 군모를 쓰고 시위에 참가한 일본의 혐한시위대 [연합뉴스]

일제시대 일본군 군모를 쓰고 시위에 참가한 일본의 혐한시위대 [연합뉴스]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한 시위'를 보면 고령자들이 적지않게 눈에 띈다.  
눈대중으로만 그렇게 판단하는 게 아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얼마전 '혐한은 왜 고령자에게 많이 나타나는가'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고령자 가운데 혐한론자들이 많다는 걸 여론조사 수치로도 보여준 이 신문은 그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한국의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한국의 국력이 일본에 맞설만큼 커졌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은퇴 후의 소외감이다. 사회 활동과 인간 관계가 줄어들면서 교류의 한 방법으로 혐한을 택한다는 것이다. 
"나름의 정의감과 애국심으로 혐한 활동을 하면서 사회와 연결됐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한 은퇴자의 후회어린 고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20일 아사히신문에도 '혐한'과 노년층의 '상실감'을 연관짓는 내용의 칼럼이 실렸다. 
'지적인 아버지가 만년에 네토우요(온라인상에서 극우적 주장을 하는 네티즌)가 됐다. 상실감과 고독 때문에 혐한론자가 된 것일까?'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일본의 유명작가 스즈키 다이스케(46)씨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보내는 '망부가(亡父歌)'이자, 혐한·극우 논리에 빠져드는 노년층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 글이다.  
핵심은 이렇다. 오로지 가정과 나라 만을 위해 뼈빠지게 살아온 아버지 세대가 은퇴 후 겪는 사회와의 괴리감은 엄청나다.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의 변화를 따라가기 벅차고, '자신'만을 챙기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젊은 세대와는 주파수가 달라 소통하기 힘들다. 함께 살아가는 정(情)이 넘치고, 노력한만큼 보상받는 세상은 '올드팝'처럼 추억이 됐다. 
일부 세력과 매체는 "좋았던 세상은 사라진 게 아니라, 누군가가 빼앗아갔다"는 논리로 노년층의 상실감을 파고 든다. 그들이 조장한 '혐오'는 독버섯처럼 빨리 번져가고, 이에 편승한 '혐오 비즈니스'도 기승을 부린다.  
한국과 중국이 혐오의 주요 타깃이며, 아사히 신문도 먹잇감이 된다. 그런 '혐오 몰이'에 노년층 뿐 아니라, 자식 세대 또한 피해자다. 자식들은 아버지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뒤늦은 후회를 한다. '아버지를 고독하게 만들고, 소통하려 하지 않은 내게도 책임이 있다'면서.  
 
아사히 신문에 일본 노년층의 혐한 성향에 대한 글을 쓴 일본 작가 스즈키 다이스케 [트위터 캡처]

아사히 신문에 일본 노년층의 혐한 성향에 대한 글을 쓴 일본 작가 스즈키 다이스케 [트위터 캡처]

 
칼럼 내용을 그대로 전한다.  
 
암 때문에 77세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말년에 '네토우요'적인 언동이 눈에 띄게 늘어갔다. 한국과 중국을 비판하거나 여성을 경시하는 발언이 많았고, 한류 드라마는 "시시하다"고 했다. 나의 취재 테마였던 젊은 층의 빈곤에 대해선 "자기 책임"이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말기에는 침대 옆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유튜브 텍스트 동영상의 음성을 계속해서 들었다. 컴퓨터에는 '혐한(嫌韓) 혐중(嫌中)'이라는 제목의 폴더가 있었고, 북마크는 우편향 뉴스 사이트로 가득차 있었다.  
아버지는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을 졸업해 (가정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한 '기업 전사'였다.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었지만, 지적 호기심이 충만했다. 회사 재직 중에는 동년배들과 잘 교류하지 않았지만, 62세에 퇴직한 뒤에는 지역 활동이나 대학 동창회에 열심히 참가했다. 동세대 친구들이 많이 생긴 듯 했다. 그 때부터 우익적인 발언이 늘었고, 머리맡에는 우파 잡지가 놓여져 있었다. 
아버지 세대는 전형적인 고도성장기의 샐러리맨들이다. 아버지는 여러 세대가 화장실과 부엌을 함께 쓰는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했고, 악착같이 일해서 '마이홈'을 지을 수 있었다.  
이웃간의 정이 두터웠고, 노력한만큼 보상받는 소박한 사회였다. 아버지는 그 좋았던 시대의 일본이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는 상실감을 갖게 되신 듯 했다. 여론조사에서는 연령이 높아지면, 혐한파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네토우요의 배외(排外)주의적 주장이 노골적으로 담겨있는 '그 옛날 좋았던 일본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이다'라는 논조에서, 아버지 세대는 구원을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한편 아버지의 발언에는 헌법 9조 개정이나 '핵무장이 필요하다' 등의 의견은 없었다. 야스쿠니 신사에도 가지 않았고, 경축일에 일장기를 게양하는 일도 없었다. 아버지와 주변의 동세대 남성들에게 네토우요적 주장은 술안주 같은 공통언어이면서 오락이었다.  
아버지 친구들은 고학력이면서 인터넷에도 밝다. 네토우요의 주장은 신기하면서도, 이야깃거리로서 충분히 화제가 될 만했다(진위는 차치하더라도).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분들도 TV의 와이드쇼(사회·정치적 이슈를 엔터테인먼트화한 교양·정보 프로그램)를 보고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저번에 얘기했던 거네"라며 납득하는 건지도 모른다.  
'혐한 비즈니스'에 있어, 고령자 만한 귀중한 손님은 없다. 출판사는 생존을 걸고 선정적인 제목을 뽑고, 인터넷매체도 페이지뷰를 높이기 위해 필사적이다. 아버지들이 그런 비즈니스에 놀아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다.  
다만 아버지의 '편향'에 대해선, 아버지를 고독하게 만든 내게도 무거운 책임이 있다. TV에 악담을 퍼붓는 아버지를 무시하지 말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아버지의 '변절'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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