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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이러려고 대통령 됐나

중앙일보 2019.10.29 01:09 종합 35면 지면보기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문재인은 왜 대통령이 됐을까?’ 요즘 제가 가진 가장 궁금한 질문입니다. 직접 물어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지면을 통해 묻습니다.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됐습니까. 진정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된 것입니까. 아니면 정의와 상식을 뒤엎어 나라를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기 위해 대통령이 된 것입니까. 도대체 왜 대통령이 된 겁니까.
 

이대로 가면 정권 재창출은커녕
심판론 탓에 내년 총선도 위험
취임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
왜 대통령 된 건지 돌아봐야

촛불을 들었던 많은 이들이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를 타산지석(他山之石) 삼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는다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취임사에서 밝힌 대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가 될지 모른다는 벅찬 희망도 있었습니다. 취임 초 80%가 넘는 지지율은 대다수 국민의 이런 소망과 기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거치며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습니다. 이대로 가면 정권 재창출은 고사하고, 내년 총선도 위험합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우리가 알던 문재인은 겸손한 자세로 사람들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선하고 온유한 성품의 지도자였습니다. 남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알고 보니 당신은 누구보다 고집이 센 지도자입니다. 한번 입력이 되면 좀처럼 사고의 회로를 바꿀 줄 모르는 독선적인 스타일입니다. 그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이 지지율 하락과 국정 동력 약화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7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당신은 지역통합 대통령, 세대통합 대통령, 국민통합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취임식 연설에서는 “오늘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뛰어넘어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직접 대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손은 강자가 내미는 것입니다. 야당 탓만 한다면 그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통합은 지도자의 포기할 수 없는 소임입니다.
 
조국 사태를 지켜보면서 저는 당신이 뭔가에 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나라가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져 싸우는 걸 보면서도 그토록 조국에 집착하는 까닭이 도대체 뭔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자신이 좋아하고 믿는 사람에게 장관 경력을 쌓게 해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올려놓을 심산이었습니까. 조국 아니면 검찰 개혁이 안 된다는 말은 억지에 불과합니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정치는 허울 좋은 명분일 뿐 실제 관심은 자기들 밥그릇에 있다는 걸 똑똑히 보았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된 것은 그동안 비었던 진보 진영의 밥그릇을 채우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집권당인 민주당의 초선의원 두 명이 조국 사태에 대한 반성과 책임의 의미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대통령 자신입니다. 거센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한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면 좀 더 오래 조국을 지켜야 했지만, 취임 35일 만에 던진 사표를 당신은 수리했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한 셈 아닙니까. 취임사에서 당신은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송구하다는 말 한마디로 때우고, 검찰과 언론에 화살을 돌렸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당신 얼굴만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경제 걱정, 안보 걱정, 아이들 장래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룬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러려고 우리가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저는 아직 당신의 선의를 믿고 싶습니다. 약자를 배려하는 더불어 잘 사는 세상에 대한 꿈과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공영하는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꿈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방향이 아무리 옳아도 국정은 현실입니다. 때로는 속도를 조절할 줄 알고,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은 맹목 아니면 무능입니다. 전임자의 ‘만기친람(萬機親覽)’을 비판했으면서 대입 정시 비율까지 간섭하는 것은 ‘내로남불’입니다. 정부의 일은 정부에 맡기고, 청와대는 청와대의 일을 해야 합니다. 조국 정국에서 제 역할을 못 한 참모진의 인적 쇄신도 불가피합니다.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고, 직을 걸고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사람들로 참모진을 새로 채워야 합니다.
 
아직 임기의 절반이 남았습니다. 남은 기간 레임덕에 빠진 식물정부가 되지 않으려면 국민통합 대통령을 자임한 초심으로 돌아가 신발 끈을 고쳐매야 합니다. 대국민 성명이나 기자회견을 통해 조국 사태를 포함한 그동안의 국정운영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사과의 뜻을 밝히는 것으로 집권 후반기를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전면적인 국정쇄신 의지와 구상을 밝혀주십시오. 그런 노력이 없다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은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한국당에 표를 줄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불행한 탄핵 사태가 재발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막느냐 못 막느냐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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