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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트럼프가 낙마하면 어찌할 건가

중앙일보 2019.10.29 01:07 종합 34면 지면보기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2년간 전 세계의 관심을 끌어온 김정은·트럼프 주연, 문재인 연출의 북핵 드라마. 이 세기의 드라마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대에서 떨어지면 어찌 될까. 조국 사태는 지난 두 달간 블랙홀처럼 온 국민의 관심을 빨아들여 중대한 나라 밖 흐름에 눈멀게 했다. 그중 하나가 1년 밖에 안 남은 미 대선(내년 11월 3일)이다.
 

내년 미 대선에서 패배 확률 커져
북, 후임자와의 담판 모색할 수도
‘트럼프 없는 미국’도 염두에 둬야

현 판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밀리는 양상이다. 지난 10일 폭스뉴스 조사에선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및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민주당의 선두 주자 3명 중 누구와 붙어도 50% 대 40% 정도의 지지율 차로 지는 거로 나왔다. 우크라이나 의혹으로 탄핵 조사가 본격화되면 격차는 더 벌어질 거다. 지금 추세라면 두 정상이 벌여온 북핵 드라마는 머잖아 막을 내리게 된다.
 
온갖 이변이 속출하는 미 대선인지라 트럼프가 이기지 말라는 법은 물론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서는 트럼프 낙마를 염두에 두고 판을 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럴 경우 북한 앞에 놓일 선택지는 두 개다. 트럼프 임기 내에 대북 제재를 푼 뒤 되돌릴 수 없게 대못을 박거나, 아니면 아예 기다렸다 새 대통령과 담판을 짓는 거다.
 
트럼프 임기 중 끝장을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그가 제재 철회를 결심하더라도 의회 설득 등에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지난 27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시간 끌기로 올해 말을 넘기려 한다면 어리석은 망상”이라며 “당장에라도 불과 불이 오갈 수 있다”고 협박한 것도 초읽기에 몰린 초조함 탓일 거다.
 
하지만 이 정도 말 폭탄에 꿈쩍할 트럼프가 아니다. 결국 연말까지 지금 상황이 이어지면 북한은 새 대통령과 북핵 문제를 담판 지으려 할 것이다. 트럼프와 기껏 합의한 내용을 후임자가 뒤집을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실제로 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어렵게 이룬 제네바 합의가 깨진 데에는 후임자인 조지 W 부시의 책임도 적잖다. 부시는 대놓고 북한을 ‘악의 축’이라 몰아세우며 대북 적대 정책을 취했다.
 
게다가 당선 가능성이 큰 민주당의 바이든, 워런 후보 모두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몹시 부정적이다. 바이든은 “북한 독재자를 위한 변명을 일삼는 데다 북한인권대사조차 지명하지 않고 있다”며 트럼프의 인권 무시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워런은 “무자비한 독재자와의 사진 찍기와 연애편지에 미국의 영향력을 낭비해선 안 된다”고 질타했다. 둘의 공통점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되든 북한 내 인권 개선이 없는 한, 대북 제재 해결은 쉽지 않을 분위기다. 북한이 바이든을 “지능지수가 모자라는 멍청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김정은·트럼프 간 대타협을 통한 북핵 해결 가능성은 갈수록 희미해지는데도 문재인 정권은 아직도 여기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임기 중 결코 흔들리지 않을 통일의 기초 공사를 끝내겠다는 사명감 때문일 게다. 하지만 집착의 가장 큰 해악은 이성을 마비시켜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는다는 거다. 퍼주기 논란을 부를 게 뻔한 대가 없는 지원, 굴욕적인 대북 저자세 모두 북한 집착이 불러온 후유증이다. 이렇게 가면 보수 및 중도층의 반발을 부를 게 뻔하고, 진보 정권의 재집권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든다. 진보 정권이 2년 반 뒤 갈릴 가능성이 커지면 북한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더더욱 현 정권의 약속을 믿지 않고 무시하려 할 게 뻔하다. 북한에 올인하면 할수록, 북한 문제는 더 안 풀리는 역설적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서독이 통독에 성공한 건 “통일을 준비하되 말하지 않는다”는 긴 호흡의 일관된 정책 덕분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통일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어떤 정권이 뒤에 들어서건, 흔들리지 않을 상식적 방안을 펴야 한다. 이제는 ‘트럼프 없는 미국’을 염두에 둔 플랜B를 구상할 때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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