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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열두발자국] 스마트한 경찰과 응급차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2019.10.29 01:03 종합 32면 지면보기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집에서 먼 곳에 큰 공원 하나가 있는 것보다, 작은 공원이라도 집 가까이 있어 언제라도 쉴 수 있어야 행복한 도시다. 유럽의 도시들처럼 말이다. 세종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마스터 플랜을 만들면서, 도시계획을 하는 자문위원들로부터 놀라운 지적을 받았다. 공원은 밤에 우범지역이 되니, 도시 내 공원 수를 줄이라는 것이다. 오랜 현실적 경험을 통해 나온 조언이었을텐데, 왜 대한민국 도시에 작은 공원들이 그토록 부족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범죄 예방·사생활보호 가치충돌
법과 기술의 섬세한 적용이 혁신
스마트 응급실 관제 서둘러야

도시의 공원을 조성하는 데 있어 두 가지가 충돌한다. 편히 쉴 수 있는 공원이 많을수록 좋지만, 밤에는 우범지역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은 바로 이런 충돌 상황을 정면돌파할 때 만들어진다. 잘 사는 집이나 아파트를 방범해주는 치안 시스템을 공원용으로 특화, 범죄예방 시스템을 개발해 보기로 했다. 누구인지 식별하지는 않더라도 이상행동이나 이상상황이 공원 내에서 감지되면, 스마트 가로등과 순찰드론, 순찰로봇이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말이다. 기술적으론 어렵지 않은데, 시행하려면 법이라는 걸림돌이 있다. CCTV로 사람들의 행동을 모니터링해서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이상 행동이나 이상상황을 감지하는 것 자체가 현재는 불법이다.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되고 개인의 사생활 보호는 무엇보다 중요하니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범죄를 예방하는 작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전 늦은밤 귀갓길에 한 남성이 여성을 아파트까지 쫓아 오고, 집 문을 열려고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실제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그 행위 자체는 여성에게 범죄를 당한 것 못지 않은 큰 위협과 공포의 경험이 된다. 만약 그때 버튼 하나로 경찰차가 출동해 집 근처를 사이렌을 켜고 순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드론이 상공에서 순찰을 한다면 어떨까? 사생활을 보호하는 범위 안에서, 우리는 사후 조치 외에도 범죄를 예방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런 기술들을 어떤 경우에 적용할지를 정할 수 있다. 단순히 이분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방식으로 법과 기술을 섬세하게 적용할 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응급차도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응급환자가 생겨 응급차를 부르면, 응급차는 응급환자를 태운 후 가까운 병원 응급실에 연락한다. 그 곳에 수술할 수 있는 수술실과 수술할 의사가 현재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러는 사이에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골든아워는 흘러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스케일에서의 응급실 관제가 필요하다. 그 도시 안의 모든 병원 응급실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모니터링되어, 비어있는 응급실 침대, 수술실 현황, 응급처치를 위한 의사 수 등이 표시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설 응급차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시 스케일에서 시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 한다.
 
112와 119는 연동돼야 한다. 범죄 현장에는 종종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와 피해자가 함께 존재한다. 따라서 경찰과 119 안전신고센터의 긴밀한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건이 터져 신고가 들어왔을 때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출동하고, 스마트치안을 위한 공동대응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화재가 발생해도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는 오래된 도시의 소방시스템도 혁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트위지나 오토바이 같은 개인용 모빌리티를 도입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을 화재 현장에 침투시키고, 화재 현장을 3차원으로 바라보면서 드론 같은 기기를 활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하진 못하지만, 가능한 기술조차 도입하지 않는 건 정부의 직무유기다. 이를 위해선 세금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마저 어렵다면, 응급차나 소방차가 가는 도로의 모든 차들에 길을 터달라는 메시지가 전송돼 단 몇 분이라도 골든아워를 줄여야 한다. 도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경찰과 소방공무원은 어떤가. 그들의 방화복은 정해진 기간에 한번씩 교체하는 게 아니라, 제 기능을 못 하면 수시로 바꿔줘야 한다. 그들의 몸과 정신 건강을 위한 병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왜 이런 곳에 세금을 아끼는가? 그들의 안전을 도시가 보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안전한 미래도 없다. 스마트도시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민 서비스는 경찰서와 응급차, 그리고 소방서에서 시작된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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