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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권 수호자 자처한 방송, 신뢰 위기 자초했다

중앙일보 2019.10.29 00:38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대호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김대호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조국 사태’는 한국 언론에 큰 숙제를 남겼다. 조국 일가 의혹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다. 특히 공영방송은 공정성의 가치를 저버리고 정권의 수호자 역할을 맡아 신뢰 위기를 자초했다.
 

조국 사태를 생각한다
여권 집회 찬사, 야권 집회는 외면
진영논리, 사실 왜곡에서 유턴할 때

편파적인 보도 일색에 시청자들이 외면하고, 방송사 구성원 스스로가 이를 인정할 정도였다. MBC 노동조합은 자사 보도가 여권 집회에 대해서는 찬사 일색이었고, 야권 집회는 외면하는 편파 보도를 반복했다고 성명을 냈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에 출연한 기자는 “이 프로그램은 충분히 조국 장관한테 유리하게 방송되고 있다”고 시인했을 정도다.
 
그 와중에 언론인을 사칭하며 언론의 본질을 훼손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일들도 일어났다. 그 중심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있다. 유씨는 “저도 유튜브 언론인이라 기자들처럼 취재를 열심히 한다”고 주장했다. 유씨가 언제 언론인이 됐나. 본인 스스로 인정한 ‘어용 지식인’ 아니던가.
 
그러더니 유씨는 KBS의 조국 일가 의혹 취재팀이 검찰과 내통해서 취재 자료를 검찰에 넘겨줬다는 주장을 느닷없이 했다. 더 큰 문제는 이 말을 듣고 KBS 사장이 보인 행태다. 유씨의 지시를 이행하듯 기존 법조팀 배제와 별도 조사위원회 구성 방침을 발표했다. 급기야 유씨의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에 출연한 한 패널이 KBS 법조팀 검찰 출입 여기자를 가리켜 성희롱 발언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시 산하 기관인 tbs 교통방송은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조국 비호’ 방송에 앞장섰다. 뉴스를 빙자해 진영 논리를 조직적으로 전파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 방송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해 357억원의 예산을 지원했고 1∼5월 라디오 광고비 전액(8268만원)을 집행해 불공정 논란을 일으켰다.
 
방송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는데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 당일 문재인 대통령은 진영에 치우친 발언을 했다.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소중한 기회가 됐다. (언론에) 자기 개혁의 노력을 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했다. 언론 개혁은 검찰 개혁과 함께 조국 수호를 외친 진영 집회의 구호였다.
 
진짜 언론의 위기는 여기에 있다. 레비츠키와 지블렛 교수는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정권이 언론을 압박하고, 언론에 대해 대응을 하겠다고 나서고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전체주의 행동으로 가는 주요한 신호의 하나라고 설파했다. 이를 잠재적인 독재자를 판단할 수 있는 경고 신호라고 봤다.
 
민주주의를 합법적으로 전복하는데 사법부 지배, 의회 장악과 더불어 언론 장악이 추진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 과정이 지금 이 땅에서 진행되는 것 아닌가.
 
뉴스 속보나 정보 제공, 토론 등 과거에 방송이 담당했던 기본적인 역할이 유튜브와 같은 대안 미디어로 넘어가고 있다. 뉴스와 정보가 SNS를 통해 확산하고 유통되는 시대다. 이런 미디어 변화도 방송의 위기를 가중하고 있다.
 
방송은 공정성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 미디어다. 진영 논리에 매몰돼 사실을 왜곡·은폐하고 특정 진영을 대변하는 것은 더는 방송이 아니다. 정치인이 자신을 언론인으로 포장하는 것도 언론을 비하하는 부적절한 일이다. 언론인은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알리는 저널리즘 원칙과 윤리의식·책임성 등을 갖춘 전문인이다.
 
언론의 위기는 언론에만 국한하지 않고 민주주의 전체의 위기를 보여주는 징표다. 잘못된 길을 가던 방향에서 유턴해야 할 때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노력으로 존재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많은 국민을 분노케 한 조국 사태는 그러한 반환점이 돼야 한다.
 
김대호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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