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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화형 광장의 기념비

중앙일보 2019.10.29 00:36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승현 논설위원

김승현 논설위원

#. “헌금 상자에 던져 넣은 돈이 ‘짤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이 연옥(煉獄)에서 벗어난다는 설교는 단지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일 따름이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대 교회 정문에 ‘95개 조 반박문’이 붙었다. 성직자 마틴 루터는 중세 가톨릭 교회의 면죄부 남발에 항의했다. ‘신의 대리인’을 넘어 무소불위의 폭군처럼 변한 교황에게 “교회법에 규정되지 않은 벌은 면제할 수 없다”고 외쳤다. 종교개혁의 신호탄이었다.
 
#.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인 것일 뿐이다.” 개신교의 기틀을 다진 종교개혁가 장 칼뱅에게 인문학자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1515~63)가 반발했다. 1553년 10월 27일 세르베투스라는 의사 겸 신학자가 삼위일체론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신정(神政)국가’를 추구한 칼뱅을 모두가 두려워할 때 카스텔리오는 “신념은 자유다”라며 ‘정신적 독재’에 맞섰다.(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개신교 최초의 ‘종교적 살인’으로 불린 세르베투스 사건은 “이단자를 죽이는 것은 범죄”라고 했던 칼뱅의 ‘내로남불’ 광기(狂氣)로 평가되기도 한다.
 
#. “위대한 개혁자 칼뱅을 존경하는 후예들로서 그 시대의 오류이자 그의 오류를 척결하고 종교개혁과 복음의 진정한 원리에 따라 양심의 자유를 견지하면서 1903년 10월 27일에 이 화해의 기념비를 세운다.” 세르베투스 사후 350년 만에 과거의 화형장이었던 제네바 샹펠 광장에 이런 묘비문이 새겨졌다. 개혁은 ‘위대함과 오류’ ‘독재와 자유’ 그리고 ‘화해’로 점철된다. 502주년을 맞은 종교개혁 주간(매년 10월 말)에 검찰 개혁 때문에 갈라진 우리 광장을 보니 더 착잡하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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