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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의 이코노믹스] 역세계화의 거센 역풍 맞고 있는 한국 경제

중앙일보 2019.10.29 00:32 종합 26면 지면보기

글로벌 가치사슬과 국익의 충돌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애플사가 발표한 2019년 ‘공급자 책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 제품을 만드는 ‘가치사슬’에 45개국의 1049개 기업이 참여했다. 이 중 상위 200개 공급기업의 국적은 대만 46개, 중국 41개, 일본 38개, 미국 37개, 한국 13개 순이다. 또 생산 공장은 809개로 중국 380개, 일본 126개, 미국 65개, 대만 54개, 한국 35개였다. 놀랍게도 미·중 무역 전쟁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가치사슬에서 중국 의존도는 지난해 더 높아졌고, 스마트폰 경쟁기업인 삼성전자(9개)와 삼성SDI(5개) 공장도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애플의 아이폰을 어느 나라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세계 무역 3분의 2 ‘세계 합작품’
GVC가 세계 일자리·소득 창출
무역전쟁이 이 네트워크 흔들자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힘들어져

한 조사(IHS Markit)에 따르면, 아이폰 X의 경우 소매가격 1200달러 중 부품비용은 370달러다. 부품 중 단일비용이 가장 큰 것은 액정화면으로, 110달러가 삼성디스플레이에 지급된다. 또 부품비용의 가장 큰 몫은 일본 기업들에 돌아간다. 아이폰은 최종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대만계 팍스콘에서 완제품으로 조립되지만, 팍스콘이 받는 조립비용은 제조비용의 6%, 제품 가격의 2%에 불과하다.
 
애플사가 밝힌대로, 애플 제품은 애플이 설계하고 운영하는 글로벌 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이 만든 제품이다. 글로벌 가치사슬은 선진국의 원천 기술과 상품 개발부터 부품 공급, 신흥국의 최종 완제품 조립에 이르기까지 각국의 부존자원과 생산여건의 특성에 따라 각기 특화된 기업들이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글로벌 수직 네트워크로 연결된 생산체제를 말한다.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과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애플의 사례와 같이 다국적 기업들이 운영하는 글로벌 가치사슬을 통해 중간재의 형태로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며 만들어진 상품들은 특정한 어느 나라 제품이 아니라 ‘Made in the World’다. 세계 합작품이란 얘기다.
  
한국 경제도 GVC 통해 성장해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세계 무역의 3분의 2는 글로벌 가치사슬 또는 글로벌 공급사슬에 의해 제조된다. 즉 세계 무역의 흐름은 글로벌 가치사슬의 활성화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 나라 경제가 글로벌 가치사슬에 얼마나 참여하는가는 그 나라 경제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 총수출(2015년)을 부가가치로 분해하면 수입 원자재 부분 32.6%, 국내 부가가치 67.4%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제3국의 수출용 원자재로 수출되는 부분을 제외하면 한국의 GVC 참여율은 51.7%로 추산된다.
 
글로벌 가치사슬 참여는 외국인 직접투자와 중간재 수출에 따른 일자리·소득 창출뿐만 아니라 세계 첨단의 기술·지식·정보 및 혁신의 역동성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관건이 된다. 결국 글로벌 가치사슬이 참여국 간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제고함으로써 세계 경제성장을 주도해왔다고 볼 수 있다. 한 나라 경제발전에 글로벌 공급사슬 참여가 미치는 중요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세계 상품 수출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은 1993년 2.5%에 불과했으나 2017년 13.9%로 높아졌다.
 
하지만 글로벌 가치사슬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변화를 맞고 있다. 우선 신흥국들의 수입대체산업과 내수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수입 중간재 의존도가 낮아져 글로벌 가치사슬의 성장세가 무역 증가세보다 낮아지고 있다.  
 
또 서비스 무역의 성장 속도가 상품 무역의 증가율을 크게 추월함으로써 글로벌 가치사슬이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충격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의 유인이었던 노동비용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대신 지식과 정보 집약적인 투자가 증대하면서다. 이런 변화들은 신흥국들이 낮은 노동비용을 디딤돌로 수출산업을 육성해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작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정적으로 심각한 역풍은 지난 20여년 국가 간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작용해 왔던 글로벌 가치사슬이 이제는 국익이 충돌할 경우 각국의 핵심 응징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화웨이에 대한 미 기업의 부품 공급을 금지했고,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글로벌 가치사슬을 통해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려 들고 있다.
  
무역 위축돼도 가치사슬 중요
 
과연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는 글로벌 가치사슬을 훼손함으로써 자국의 국익을 확보했을까. 아이폰을 중국에서 생산함으로써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주체는 미국 소비자들이며, 애플의 주주들이다. 아이폰을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급격한 생산비용 상승이 불가피해 소비자와 주주는 손해를 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중국 수입품에 부과한 관세는 고스란히 미국 소비자들이 부담할 공산이 커진다. 관세 부과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생산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도록 촉진하는 효과도 불투명하다.
 
그런데도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에 대한 응징으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고, 일본은 징용 근로자 보상 문제를 포함한 과거사 문제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했다. 미·중과 한·일 간은 사실상 글로벌 가치사슬을 무기로 전쟁을 하는 것과 같다. 그 결과 세계 가치사슬에 대한 지정학적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 한국의 수출은 10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요컨대 글로벌 가치사슬은 정치·경제적으로 역(逆) 세계화(deglobalization)의 거센 역풍을 맞고 있으며, 그 결과로 세계 무역은 위축되고, 세계 경제는 다시 침체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 가치사슬이 세계 무역과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시대는 끝났는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이미 구축된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구축하는 것은 엄청난 비용과 위험을 수반하는 만큼, 글로벌 가치사슬은 다소 위축되더라도 여전히 세계 무역의 중심축으로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세계화의 틀과 각국의 국내 정치 간의 충돌이 진행되는 국면이다.
 
지정학적 위험이 커질수록 외국인 직접투자는 각국의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주목해야 할 점은 글로벌 가치사슬의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는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위험과 기회를 함께 직면하는 시기라는 점이다. 국내 정치를 우위에 두고 글로벌 가치사슬을 훼손하는 국가는 산업경쟁력의 저하를 초래함으로써 경제적 국익을 잃을 것이며, 반면에 정치가 글로벌 가치사슬과 국내 문제 간의 충돌을 조정하는 데 성공한 국가는 글로벌 가치사슬에 참여하는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된다.
 
소재·부품 주도권 놓고 맞붙은 한국과 일본의 가치사슬
글로벌 가치사슬의 구조에서 한국은 부품 수입 비중이 높지만, 일본은 소재·부품을 위주로 하는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다. 양국의 상호의존도를 비교해 보면, 2015년 한국 총수출의 부가가치에 대한 일본의 기여도가 3.1%였지만 일본의 수출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는 0.6%에 불과했다. 이것은 유감스럽게도 양국 간의 무역전쟁이 확대돼 글로벌 가치사슬이 전면적으로 붕괴할 경우, 한국이 입을 타격이 일본보다 클 것을 시사한다.
 
그 이유는 한국 상품은 주로 세계시장 규모가 크고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품목에 밀집됐지만, 일본 상품은 세계시장 규모가 작고 시장점유율이 높은 품목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소재·부품 국산화에 성공한다는 것은 가격·품질·공급의 안정성에서 일본 제품과 대등한 세계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이 수입대체에 성공한다면, 양국 기업은 세계시장에서 피나는 경쟁을 벌이고 세계시장은 심각한 초과 공급 상태에 직면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 기업이 수입대체에 실패한다면, 나라 안팎에서 존립이 어려운 투자 실패에 빠질 수 있다. 세계 소재·부품산업의 주도권은 물론 양국 경제의 명운이 걸렸다는 얘기다. 과연 한국 기업들은 세계의 전자제품 시장에서 일본 기업을 몰아냈듯이 소재·부품시장에서도 일본 기업들을 밀어낼 수 있을까. 그 결과에 따라 한국 경제는 또 다른 변곡점을 맞게 될 것이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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