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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이탄희가 전화 한 통이면 된다잖아요”

중앙일보 2019.10.29 00:07 종합 16면 지면보기
박태인 사회1팀 기자

박태인 사회1팀 기자

“이탄희가 전화 한 통이면 된다잖아요. 왜 변호사님만 깨끗한 척하세요.”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지난주 아침 뉴스를 듣고 달라진 의뢰인에게 ‘전관예우’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지난 22일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인 이탄희(41·전 판사) 변호사가 CBS라디오에 출연해 “검찰 단계에서 전관예우가 훨씬 더 심각하단 생각이 팽배하다” “전화 한 통화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도록 해주고, 특정 검사한테 배당을 하게 해주고 수천만원씩 받는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 발언이 전파를 탄 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의뢰인에게서 “돈은 아낌없이 줄 테니 수사검사에게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 이런 건 사라졌다” “함께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거절하니 돌아온 답은 “이탄희도 된다는데 왜 당신만 깨끗한 척을 하냐”는 매몰찬 불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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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뢰인은 자신의 변호인이 아닌 이 변호사의 말을 더 신뢰했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맞섰던 그 이탄희가 한 말이기에 의뢰인은 철썩같이 믿은 것이다.  
 
하지만 경험담을 전한 변호사는 “이 변호사가 말한 ‘수천만원씩 받고 영장을 빼주는’ 전관예우는 사라진 지 오래됐거나 범죄”라며 “의뢰인과의 신뢰관계가 깨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검에선 이례적으로 이 변호사의 발언 뒤 “근거 없는 주장으로 검찰 구성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반박 입장문을 냈다.
 
이탄희가 틀렸고 대검이 옳다는 말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한국 법조계 시장에서 전관예우는 이 변호사의 말처럼 팽배하다. 지난 8월 옷을 벗은 가장 따끈따끈한 검찰 출신 전관들은 “이젠 정말 어렵다”고 하소연을 한다.  
 
하지만 서초동의 비(非)전관 출신 변호사는 “전관들은 전관이 아닌 변호사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절대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에겐 ‘전관의 세계’만 존재하기에 어려워도 거기서 어렵다는 것이다. “(전관예우의) 근거를 대라”는 대검의 입장을 반영해 조금 더 양보해도 “전관예우가 통한다”는 믿음이 법조계에 팽배한 것은 사실이다.  
 
대형 로펌은 사건을 수임하면 당장 의뢰인이 수사받는 경찰서와 검찰청의 아는 사람이 있는 변호사를 단체메일로 찾는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속한 진보 성향의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 이광범 변호사가 설립한 LKB파트너스에 정경심 교수 건을 비롯한 서초동의 중요 사건이 몰리는 이유도 일부분은 이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믿음에 “근거를 대라”고 말하는 대검의 입장은 오만하다. “수천만원이면 영장도 빼준다”는 이탄희의 비판에도 현실 감각이 아닌 검찰에 대한 불신만이 느껴질 뿐이다.
 
전관예우에 대한 논의는 이탄희와 대검의 주장 중간쯤에 놓였을 현실에서 시작해야 한다. 검찰이 국정감사에서도 공개하지 않은 구두변론 관리대장이 공개돼야 하고, 전관변호사의 수임 사건번호와 수임액도 이젠 공개해야 한다. 과태료 처분에 불과한 선임계 없는 몰래 변론의 형사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이 내용을 모두 담은 법안은 이미 국회에 제출돼 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그래도 이탄희가 말을 하니 논의가 시작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이탄희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 이탄희가 말하면 사람들은 정말 믿기 때문이다.
 
박태인 사회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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