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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전시는 서울에? 선입견 깨는 부산·광주·포항

중앙일보 2019.10.29 00:06 종합 25면 지면보기
광주 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리고 있는 ‘공작인’ 전시장. [사진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광주 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리고 있는 ‘공작인’ 전시장. [사진 광주아시아문화전당]

지금 미술계에선 지방 공공미술관의 대형 전시가 화제다. 드넓은 전시공간을 활용한 대형 조각(설치) 작품부터 첨단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체험형 작품까지 콘텐트는 각기 다르지만, 세계 현대 미술의 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대규모 국제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볼만한 전시는 서울에서만 열린다’는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낸 야심찬 전시다.
 

공공미술관 대형 기획전 잇따라
유명작가 총집결 광주 ‘공작인’
인원 제한 부산 ‘레인룸’ 연일 매진
포항선 현대미술운동 ‘제로’ 조망

◆광주ACC의 ‘공작인’=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현대 조각가들의 큰 작품들이 광주의 랜드마크,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공작인: 현대 조각과 공예 사이’ 전시에 모였다. 서도호·양혜규·강서경 등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국내 대표 작가들은 물론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중국 대표로 참여한 중국의 두 작가인 인슈전과 류웨이, 독일 작가 토마스 슈테와 로스마리 트로켈 등 7개국 아티스트 13인이 참여했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천장 높이 걸린 한옥 모양의 옥색 대규모 패브릭 작품, ‘서울 집/서울 집/가나자와 집/베이징 집’(2012)이다. 영상·조각·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집’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파고든 서도호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실크를 소재로 섬세한 손바느질과 재봉틀 작업으로 한땀한땀 완성한 입체 ‘집’ 작품은 그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전한다.
 
캄보디아 작가 숍힙 피치의 대형 조각 작품 ‘고난’(Ordeal)도 섬세한 조형미로 그 잔상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대나무와 목재·금속을 엮어 만든 그의 작품은 거대한 식물 열매(혹은 씨앗)의 형상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이 작품을 “내 기억의 정화이자 내게 영향을 미친 것들과 장소의 재현물”이라고 소개했다. 파란색 털실로 뜨개질한 거대한 작품을 사각 프레임 안에 넣어 선보인 로스마리 트로켈의 울페인팅, 토마스 슈테의 세라믹 조각 ‘정원 요정들’등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공작인’은 한마디로 현대 조각 전시다. 돌을 깎아 만든 조각은 찾아볼 수 없다. 소재는 실크부터 대나무, 세라믹, 소가죽 등으로 다양하고 작품은 일일이 손으로 만든 작품들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서울과기대 교수) 예술감독은 “현대 작가들 중에 수공예적 기법으로 작업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면서 “현대 조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현대 조각을 읽는 새로운 키워드로 선택한 것이 바로 ‘공예’였다. 전시 제목을 라틴어 ‘호모 파베르’(Homo Faber)를 풀어 ‘공작인’이라고 붙인 이유다.
 
이 밖에도 종이로 사물을 감싼 작품인 ‘종이로 포장된 것’(2016)으로 이미지의 진실성과 허구성을 주제로 작업한 김범 작가의 조각과 월페이퍼 작품, 스위스 작가 마이 투 페레의 텍스타일과 도예 작업도 흥미진진하다. 전시는 2020년 2월 23일까지. 통합 관람료 4000원.
 
부산현대미술관의 ‘레인룸’. 관람객이 빗속으로 들어가는 ‘체험형’ 전시다. 이은주 기자

부산현대미술관의 ‘레인룸’. 관람객이 빗속으로 들어가는 ‘체험형’ 전시다. 이은주 기자

◆부산현대미술관 ‘레인룸’=‘젖지 않는 비’로 이름을 떨친 이 전시는 지난 8월 15일에 개막한 이래 지금까지 3만여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전시 특성상 사전 예매해야 볼 수 있어 하루에 최대 540명 정도로 관람객 입장이 제한된 점을 고려하면, 뜨거운 호응을 받은 셈이다. SNS에 ‘레인룸’을 검색하면 ‘#레인룸은매진’ ‘#레인룸예매필수’등의 키워드가 줄줄이 이어질 정도다.
 
‘레인 룸’(Rain Room·2012)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그룹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의 뉴미디어 설치작품으로 가장 큰 특징은 관람객이 작품 안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제작된 ‘체험형’이란 것이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100㎡ 규모의 전시장을 관람객이 젖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다. 폭우 속에 서 있는 관람객들은 조명에 비치는 굵은 빗줄기 속에서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 이 시각적인 효과 때문에 셀카와 SNS를 즐기는 젊은 관람객층에 더욱 인기다.
 
류소영 부산현대미술관 큐레이터는 ‘레인룸’을 가리켜 "현대 예술의 영역이 첨단 테크놀로지를 만나며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라며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정체성과 자율성, 자연과의 관계 등을 생각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월 27일까지. 사전예약 필수. 관람 시간은 10분. 관람료 5000원.
 
‘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는 포항시립미술관. 2년 동안 준비한 야심찬 전시다.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는 포항시립미술관. 2년 동안 준비한 야심찬 전시다.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제로’=‘제로’(ZERO) 는 1950년대 후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동한 국제적인 미술운동이다. 말 그대로 ‘원점’으로부터의 새로운 시작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1958년 독일 출신의 아티스트 하인츠 마크와 오토 피네가 ‘제로’라는 제목의 미술 매거진을 출판했고, 이후 출판을 매개로 국제적인 미술가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전시와 행위예술, 관람객들이 참여하는 이벤트 등 진보적인 형식들을 과감하게 실험했다. 1966년 제로의 활동이 공식적으로 종결될 때까지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의 10여 개 나라에서 온 40여 명 이상의 미술가들이 동참했다.
 
이 전시는 포항시립미술관과 독일 뒤셀도르프의 제로파운데이션이 공동기획한 것으로, 아시아에서는 최초다.
 
제로의 미술사적 의의를 폭넓게 조망하기 위해 제로운동에 참여했던 주요 작가들의 대표작 48점을 소개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모색한 당시의 진취적인 미술가들을 소개하고 싶었다”며 "예술과 기술이 융합되고 빛이나 움직임 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재료가 작품에 사용된 작품들은 현대 미술의 뿌리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020년 1월 27일까지.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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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부산=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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