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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문턱' 넘기 힘드니 시행령 개정해 ‘기업 옥죄기’

중앙일보 2019.10.28 15:51
정부가 국회 견제를 피하기 위해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기업 옥죄기’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재계에서는 과잉입법일 뿐 아니라 위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기획재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부가 입법예고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철회해 달라는 의견을 최근 정부에 제출했다. 현행법은 단순투자 목적으로 5%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시행령 개정안은 공적 연기금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정관 변경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경영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게 아닌 것’으로 분류했다.  
 
경총은 이번 개정안이 정관 변경을 ‘경영권 영향 사항’이라고 못 박고 있는 상위법과 충돌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총은 “국민연금을 통해 정부ㆍ시민단체ㆍ정치권 등이 기업경영에 간섭ㆍ규제하는 이른바 ‘기업 길들이기’의 길을 확대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입법 대신 시행령·고시 개정으로 이뤄지는 주요 조치. 그래픽=신재민 기자

입법 대신 시행령·고시 개정으로 이뤄지는 주요 조치. 그래픽=신재민 기자

한국경제연구원은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사외이사 재직기간을 해당 회사 6년으로 제한하고 이사ㆍ감사 후보자의 개인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경영 투명성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한경연은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자 과잉금지원칙에 반하는 위헌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경연은 “이 같은 규제 강화는 결국 이사회 구성원의 인력풀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이사의 비중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및 기업집단 현황공시 개정안도 논란이다.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공동 손자회사’ 설립이 금지되며, 지주회사가 계열사로부터 받은 부동산 임대ㆍ컨설팅료 내역을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종석 의원실(자유한국당)에 따르면 공정위의 지난 6년간 하위법령 개정 가운데 규제강화가 81건, 규제완화는 32건이었다. 규제를 강화하는 법령의 비율은 2015년 1.4배에서 2016년 2.3배, 2017년 2.4배를, 2018년 5배로 증가했다. 과도한 규제가 기업경영ㆍ산업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호소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외에도 법률을 위반한 기업인을 전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게 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과 같은 경우는 엄연히 자격 정지에 해당하는 형벌"이라며 "형벌은 사법부가 법에 근거해 내리는 것이어서 행정부가 시행령으로 강제하면 헌법정신인 삼권분립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불안감이 커진 재계에서는 헌법소원까지 검토하고 있을 정도로 반발이 크다. 그럼에도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밀어붙이는 것은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국민연금의 이른바 스튜어드십코드 강화를 주장해왔고, 대기업 총수의 전횡을 견제하겠다는 견해를 피력해왔다. 공정위의 개정안은 최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행위 제한처럼 법을 고쳐야만 재벌 개혁이 아니다”라고  발표한 공정경제 성과를 실현하기 위한 후속 조치 중 하나다. 
 
국회에서의 공론화 과정과 야당의 반대를 피해 가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가 국회의 견제를 피하며 정책을 펼쳐나가는 수단으로 시행령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 위의 시행령’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이미 시행령 개정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는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은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29일 공포ㆍ시행된다. 공권력 남용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국가회계관리시스템(에듀파인)을 사용하지 않는 유치원은 5∼15% 정원 감축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근거도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이뤄졌다. 자사고와 외국어고ㆍ국제고는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상 근거조항을 삭제해 폐지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막대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반대했던 발전차액지원제도(FITㆍ한국전력이 고정가격을 보증해 주는 제도)는 시행령의 하위 법령인 고시와 규칙 개정을 통해 '한국형' 발전차액지원제도로 명칭을 변경해 도입되기도 했다. 친여(親與) 태양광 조합이 요구했던 사안으로,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다 결국 지난해 7월 시행됐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시행령으로 기업을 강제하는 경우가 많아지면 자유시장 경제 원칙을 침해하게 된다"며 "특히 헌법 126조는 천재지변 등 긴급한 사안을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의 경영을 국가가 통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위헌의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론도 나온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야 할 국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철학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행정편의주의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정부의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위해 국회가 법률의 구체적 내용을 정부에 맡기는 위임입법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재량 범위 내에서 시행령을 먼저 도입하면, 향후 잘못된 점을 보완해 입법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과거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과도하게 보유하는 등 오랫동안 입법을 통해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의 경우 시행령을 통해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스튜어드십 코드의 경우 주주가 위임한 경영권을 스스로 감시·감독하기 위한 것”이라며 “시행령 개정을 통해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은 오히려 주주 자본주의 원리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세종=손해용ㆍ허정원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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