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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가 친엄마를 만나는 날, 자꾸만 목구멍이 후끈거렸다

중앙일보 2019.10.28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10)

햇볕이 쨍쨍한 토요일 오후. 일부러 맛집을 찾아서 은지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고 기분 좋게 약속 장소로 갔다. 우린 2주 전부터 은지가 친엄마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할 건지, 뭐라고 부를 건지…. 재미있는 게임을 하듯, 예행연습까지 했었다. 코끝이 찡해질 때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이날을 준비해왔다.
 
작은 손을 맞잡고 계단을 쿵쿵 올라가는데 내 심장에서도 쿵쿵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은지는 여전히 까르르 웃고 있었다. 고개를 까딱이며 신나게 계단을 오르는 은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지야, 지금 누구 만나러 가는 거지?”
“은지 낳아준 엄마!”
씩씩하고 해맑은 표정을 보면서 맞잡은 손을 더 꼭 잡았다.
 
“안녕하세요?”
2년 만에 만난 은지 친모는 수줍은 듯 웃었다. 훌쩍 커버린 은지를 보더니 선물이라며 스티커 책을 먼저 내밀었다. 환한 얼굴로 선물을 받고 팔짝팔짝 뛰는 은지. 나를 쳐다보는 은지….
 
나도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올렸지만 점점 눈이 붉어져서 그걸 바라볼 수가 없었다. 웬만한 일엔 떨지 않던 내가, 결혼식 날에도 김밥까지 다 먹던 내가 유난히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이었다.
 
은지와 친모에게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센터 선생님들과 일어났다. 자리를 떠나 있는 내내 마음은 은지랑 친모 사이에 끼어 있었다. [사진 pixabay]

은지와 친모에게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센터 선생님들과 일어났다. 자리를 떠나 있는 내내 마음은 은지랑 친모 사이에 끼어 있었다. [사진 pixabay]

 
함께 있던 가정위탁센터 선생님들이 자리를 안내해서 앉았다. 은지는 스티커 책을 펼쳐서 재빠르게 붙여 나갔고, 친모는 옆에서 그걸 지긋이 바라봤다. 나는 그 둘을 번갈아 보며 표정을 살폈다.
 
은지랑 친모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센터 선생님들과 일어났다. ‘행여나 친모가 은지를 빨리 데려가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친아빠에 관해 얘기하면 어떡하지?’, ‘은지는 친모를 뭐라고 부를까?’
 
자리를 떠나 있는 내내 마음은 은지랑 친모 사이에 끼어 있었다. 센터 선생님들이랑 가정위탁제도에 관해 이야기 하고, 은지가 친모를 닮아서 그림을 잘 그리고, 기억력도 좋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는 수다를 떨면서도 신경은 은지랑 친모 사이에 앉아 있었다.
 
힐끔힐끔 시계를 보다가 다시 일어났다. ‘은지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친모는 은지에게 뭐라고 했을까?’, ‘또 만나자고 약속했을까?’ 머릿속은 온갖 궁금증으로 가득한데, 괜찮은 척 살짝 미소를 띠고 은지랑 친모가 있는 곳으로 갔다.
 
둘 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은지는 스티커 붙이기에 열중하고 있었고, 친모는 옆에서 지켜보며 간혹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물다섯 살, 미래를 계획하고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또래 청년들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은지 친모는 요즘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고 들었다. ‘은지랑 같이 살려면 빨리 돈을 모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오히려 위탁가정에서 계속 지내는 게 은지를 위해서도 나은 게 아닐까?’, 곱고 수수한 친모의 고민은 가을밤처럼 깊고, 짙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은지는 스티커 책만 만졌다. 공주 스티커, 왕관 스티커를 붙였다 떼며 한참을 놀았다. 저녁이 돼서 둘째 어진이가 돌아오자 은지는 스티커 책을 안고 뛰어나가며 외쳤다.
 
“언니! 이거 하얀 옷 입은 언니가 준 거야. 이거 봐!”
내 귀를 의심했다. 은지는 친모를 만나서 스티커 책을 선물 받았는데, 뜬금없이 ‘하얀 옷 입은 언니’라니? 은지의 끝없는 자랑을 듣다가 어느 시점에 번뜩 깨달았다. 은지는 너무나 젊은 친엄마를 보고 엄마라기보다는 언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은지 입장에서는 스물네 살, 열아홉 살의 우리 오빠, 우리 언니랑 비슷해 보였던 거다. 낳아 준 엄마를 만나러 갔는데, 거기서 만난 건 ‘하얀 옷 입은 언니’였다. 그 언니가 스티커 책을 줬고, 그게 너무 신났던 하루다.
 
은지 친모는 '은지랑 같이 살려면 빨리 돈을 모아야 하는데', '오히려 위탁가정에서 계속 지내는 게 은지를 위해서도 나은 게 아닐까?'하며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고 들었다. [사진 pixabay]

은지 친모는 '은지랑 같이 살려면 빨리 돈을 모아야 하는데', '오히려 위탁가정에서 계속 지내는 게 은지를 위해서도 나은 게 아닐까?'하며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고 들었다. [사진 pixabay]

 
“은지야…, 오늘 은지 낳아주신 엄마 만난다고 했잖아? 그, 하얀 옷 입은 언니가…, 은지 낳아주신 엄마야.”

은지는 곧바로 내게 쏘아붙였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 현실이 은지에겐 거짓말 같은 일이겠지. 나도 이게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그래, 그래. 우리 은지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다. 그렇지?”
은지의 빵빵한 얼굴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자꾸만 목구멍이 후끈거렸다.
 
▶ Tip 가정위탁보호제도란? 
아동이 가정 내·외의 여러 가지 요인(부모의 질병, 가출, 실직, 수감, 사망 등)으로 친가정에서 건강하게 양육될 수 없을 때, 일정 기간 아동을 보호·양육하는 제도다. 아동과 적합한 가정에서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친가정이 가족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문적인 아동복지서비스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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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희 배은희 위탁부모·시인 필진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 제주도에 사는 시인. 낮엔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일하고, 밤엔 대학원에서 공부한다. 색다른 동거를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매너 있고 돈 많은 남자와 사는 게 아니라, 작고 여린 아기와 하는 동거다. 우린 동거인이면서 가족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위탁가족’이다. 우리의 색다른 동거가 ‘사랑’으로 전해지길 기도한다. 동거는 오늘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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