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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공작인', 부산 '레인룸'...지방 미술관 '고퀄' 전시 경쟁

중앙일보 2019.10.28 12:18
광주 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리고 있는 '공작인'의 전시장 모습. [사진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광주 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리고 있는 '공작인'의 전시장 모습. [사진 광주아시아문화전당]

바람이 분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당일치기라도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음이 꿈틀거린다. 가을 여행, 산으로 떠나는 단풍 여행만 있는 게 아니다. 2~3시간 기차를 타고 다녀오는 미술관 여행은 어떨까. 이번에 국내 여러 도시의 미술관으로 눈을 돌려볼 때다. 나들이도 하고, 수준급의 전시를 함께 즐기기엔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지방 공립미술관, 대규모 국제기획전 눈길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공작인' 현대조각 조망
부산현대미술관 '레인룸', 3만5000명 관람
포항시립미술관, 현대미술운동 조망 '제로'

광주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공작인'. 부산현대미술관  '레인룸',  포항시립미술관의 '제로'. 지금 미술계에선 최근 지방 공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형 미술 전시가 화제다. 드넓은 전시공간을 활용한 대형 조각(설치) 작품부터 첨단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체험형 작품까지 콘텐트는 각기 다르지만, 지금 이들 미술관에선 세계 현대 미술의 흐름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대규모 국제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볼 만한 전시는 서울에서만 열린다'는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낸 야심찬 전시다. 
 

광주ACC '공작인', 조각의 고정관념 깼다

먼저 주목할 것은 현재 광주의 랜드마크가 된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공작인: 현대 조각과 공예 사이' 전시다. 지금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현대 조각가들의 큰 작품들이 여기 모였다. 서도호·양혜규·강서경 등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국내 대표 작가들은 물론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중국 대표로 참여한 중국의 두 작가인 인슈전과 류웨이, 그리고 현대 조각분야에서 이름이 높은 독일 작가 토마스 슈테와 로스마리 트로켈 등 7개국 아티스트 13인의 작품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천장 높이 걸린 한옥 모양의 옥색 대규모 패브릭 작품. '세계적인 한국 아티스트' 서도호의 '서울 집/서울 집/가나자와 집/베이징 집'(2012)이다. 영상·조각·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집'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파고든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실크를 소재로 섬세한 손바느질과 재봉틀 작업으로 한땀한땀 완성한 입체 '집' 작품은 그 아름다움으로 언제나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전한다.  
 
중국 인슈전의 '무기'.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중국관에서도 소개된 작품이다. [사진 아시아문화전당]

중국 인슈전의 '무기'.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중국관에서도 소개된 작품이다. [사진 아시아문화전당]

 
캄보디아 작가 숍힙 피치의 대형 조각 작품 '고난(Ordeal)'도 보고 나면 그 섬세한 조형미로 그 잔상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대나무와 목재·금속을 엮어 만든 그의 작품은 거대한 식물 열매(혹은 씨앗)의 형상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이 작품을 "내 기억의 정화이자 내게 영향을 미친 것들과 장소의 재현물"이라고 소개했다. 
 
이밖에도 파란색 털실로 뜨개질한 거대한 작품을 사각 프레임 안에 넣어 선보인 로스마리 트로켈의 울페인팅, 토마스 슈테의 세라믹 조각 '정원 요정들'등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슈테는 현대 조각에서 매우 중요한 작가로 거론되는 인물로 조만간 MoMA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공작인'은 한마디로 현대 조각 전시다. 하지만 사람들이 조각 하면 쉽게 연상하는 작품, 즉 돌을 깎아 만든 조각은 찾아볼 수 없다. 소재는 실크부터 대나무, 세라믹, 소가죽 등으로 다양하고 작품은 일일이 손으로 만든 작품들이다. 전시 제목을 라틴어 ‘호모 파베르(Homo Faber)’를 풀어 '공작인'이라고 붙인 이유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서울과기대 교수) 예술감독은 "현대 작가가들 중에 수공예적 기법으로 작업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면서 "현대 조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현대 조각을 읽는 새로운 키워드로 선택한 것이 바로 '공예'였다. 
 
김 예술감독은 "이번 전시에서 만나는 작가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작품에 공예의 전통과 지역의 특수성을 가지고 조각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면서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인 동시에 개념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란 점이 이들 작가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조각  

캄보디아 작가인 솝힙 피치의 '고난'. 캄보디아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아름다운 자연의 형상이지만,그의 작품엔 1970년대 후반 집단 학샐의 경험과 기억이 녹아 있다. [사진 광주아시아문화전당]

캄보디아 작가인 솝힙 피치의 '고난'. 캄보디아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아름다운 자연의 형상이지만,그의 작품엔 1970년대 후반 집단 학샐의 경험과 기억이 녹아 있다. [사진 광주아시아문화전당]

스위스 작가 마이-투 페레의 조각과 월페이퍼. 그의 작품은 공예 전통과 연결돼 있다. [사진 광주ACC]

스위스 작가 마이-투 페레의 조각과 월페이퍼. 그의 작품은 공예 전통과 연결돼 있다. [사진 광주ACC]

클라우디아 비서, '무제'(2017), MDF판에 구리, 도자기, 스테인리스강. [사진 광주아시아문화전당]

클라우디아 비서, '무제'(2017), MDF판에 구리, 도자기, 스테인리스강. [사진 광주아시아문화전당]

 
이 밖에도 종이로 사물을 감싼 작품인 '종이로 포장된 것'(2016)으로 이미지의 진실성과 허구성을 주제로 작업한 김범 작가의 조각과 월페이퍼 작품, 스위스 작가 마이 투 페레의 텍스타일과 도예 작업도 흥미진진하다. 
 
김 예술감독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전시를 해보고 싶었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면서, 그 안에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전시를 구성하는 데 주력했다"며 "관람객들이 여유롭게 거닐고 앉아서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2020년 2월 23일까지. 관람료 4000원. 
 
※서울에서 광주ACC에 가는 방법=서울 용산에서 광주 송정역까지 KTX로 2시간 걸린다. KTX를 내린 뒤 기차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면 30분이 채 안 돼 아시아문화전당 역에서 내릴 수 있다. 

 

빗속에 선 당신, 부산현대미술관 '레인룸'

부산현대미술관의 '레인룸' 전시 현장. 관람객이 빗속으로 들어가는 '체험형'전시다. [사진 이은주]

부산현대미술관의 '레인룸' 전시 현장. 관람객이 빗속으로 들어가는 '체험형'전시다. [사진 이은주]

'젖지 않는 비'로 이름을 떨친 이 전시는 지난 8월 15일에 개막한 이래 지금까지 3만여 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전시 특성상 사전 예매해야 볼 수 있어 하루에 최대 540명 정도로 관람객 입장이 제한된 점을 고려하면, 굉장히 뜨거운 호응을 받는 셈이다. SNS에 '레인룸'을 검색하면 '#레인룸전시' '#레인룸은 매진' "#레인룸예매필수'등의 키워드가 줄줄이 이어질 정도다. 
 
'레인 룸(Rain Roomㆍ2012)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그룹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의 뉴미디어 설치작품으로 가장 큰 특징은 관람객이 작품 안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제작된 '체험형'이란 것이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100㎡ 규모의 전시장을 관람객이 젖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다. 폭우 속에 서 있는 관람객들은 조명에 비치는 굵은 빗줄기 속에서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보이는 것이 특징. 이 시각적인 효과 때문에 셀카와 SNS를 즐기는 젊은 관람객층에 더욱 인기다.
 
한편 인체를 감지하면 쏟아지는 물을 정지시키는 첨단 센서가 작동하는데, 관람객이 너무 빨리 움직일 경우 관람객이 비에 젖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류소영 부산현대미술관 큐레이터는 '레인룸'을 가리켜 "현대 예술의 영역이 첨단 테크놀로지를 만나며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라며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정체성과 자율성, 자연과의 관계 등을 생각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이 전시는 더욱 인기다. 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코스모스 군락지에, 미술관 맞은편에 자리한 에코센터엔 핑크뮬리의 분홍빛 물결이 일고 있어 주말에는 방문객 차량이 줄 잇는다. 전시는 1월 27일까지. 사전예약 필수. 관람 시간은 10분. 관람료 5000원. 
 
※서울에서 부산현대미술관 가는 법=지난해 6월 개관한 이 미술관은 낙동강 하구의 을숙도에 있다. 부산역에서 지하철 타고 하단역까지는 40분 정도 소요. 하단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다.
 

'포항에서 이 전시가?', 포항시립미술관 '제로'

'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는 포항시립미술관. 2년 동안 준비한 야심찬 전시다.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는 포항시립미술관. 2년 동안 준비한 야심찬 전시다.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포항에서 이 전시가 열릴 줄은 몰랐다…." 

포항시립미술관의 '제로(ZERO)'전시가 '미술인들 사이에 조용히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로는 1950년대 후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동한 국제적인 미술운동이다. 독일 출신의 아티스트 하인츠 마크, 오토 피네, 귄터 위커가 주축이 됐던 것으로,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은 이후 전통미술과 결별을 선언했던 아티스트들의 고민을 담았던 운동이다. 
 
오토 피네, '코로나 보레알리스'(1965, 144 x 95cm, 알루미늄, 황동, 400개의 전구, 전기 설치, 인터벌 타이머). 제로 파운데이션,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오토 피네, '코로나 보레알리스'(1965, 144 x 95cm, 알루미늄, 황동, 400개의 전구, 전기 설치, 인터벌 타이머). 제로 파운데이션,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전시를 기획한 김석모 포항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당시 유럽의 미술가들은 전쟁으로 단절되고 왜곡된 전통미술과의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상업적으로 퇴색되어버린 미술의 본질을 어떻게 회복할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며 "당시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모색한 진취적인 미술가들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제로(ZERO)'는 말 그대로 ‘원점’으로부터의 새로운 시작이란 의미다. 1958년 마크와 피네는 ‘제로’(ZERO)라는 제목의 미술 매거진을 출판했고, 이후 출판을 매개로 국제적인 미술가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전시와 행위예술, 관람객들이 참여하는 이벤트 등 진보적인 형식들이 과감하게 실험됐다. 1966년 제로의 활동이 공식적으로 종결될 때까지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의 10여 개 나라에서 온 40여 명 이상의 미술가들이 제로의 활동에 동참했다. 
 
이 전시는 포항시립미술관과 독일 뒤셀도르프의 제로파운데이션이 공동기획한 것으로, 아시아에서는 최초다. 김 학예실장은 "이번 전시는 포항시 승격 70년, 시립미술관 개관 10년을 기념해 2년 전부터 기획해 추진해왔다"며 "한국의 산업화 중추적 역할을 했던 철강 도시 포항의 문화도시로의 새로운 시작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는 포항시립미술관 전시장 전경.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는 포항시립미술관 전시장 전경. [사진 포항시립미술관]

이 전시는 제로의 미술사적 의의를 폭넓게 조망하기 위해 제로운동에 참여했던 주요 작가들의 대표작 48점을 소개한다. 김 학예실장은 "예술과 기술이 융합되고 빛이나 움직임 등과 같은 비물질적인 재료가 작품에 사용된 작품들은 현대 미술의 뿌리를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2020년 1월 27일까지. 관람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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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부산=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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