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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은 루마니아, 그동안 편견을 가져서 미안해!

중앙일보 2019.10.28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53)  

브라쇼브(Brasov) 올드타운 Sfatului광장의 일요일 오후. 여행객들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인근지역 시민들도 휴일에 가족과 나와서 쇼핑이나 외식을 즐기는 장소다. [사진 박헌정]

브라쇼브(Brasov) 올드타운 Sfatului광장의 일요일 오후. 여행객들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인근지역 시민들도 휴일에 가족과 나와서 쇼핑이나 외식을 즐기는 장소다. [사진 박헌정]

 
편견 없이 사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스스로 ‘난 편견이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 역시 드물다. 물론 그것도 좀 이상하겠다. 나는 이번에 열흘 동안 루마니아를 방문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이 나라에 대해 가졌던 피상적인 느낌이 얼마나 엉뚱한 편견이었는지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그동안 내게 루마니아는 ‘운동만 열심히 하는, 유럽 변방의 가난하고 소외된 공산국가’였다. 방문 전에는 겁도 약간 났다. 그런데 와보니 꽤 달랐다. 우선 ‘운동만 열심히’는 틀린 것 같고, ‘가난’과 ‘소외’는 어느 정도 맞다. 역사적으로 많은 부침을 겪었고 1인당 GDP가 세계 54위인 유럽의 빈국이다. 물론 아주 가난한 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 뒤편에 숨은 느낌이 하나 더 있었다. 바늘로 찔러도 들어갈 것 같지 않은 ‘강함’, 사회주의 집단체제가 개인을 통제하고 희생시켜 만들어낸 것 같은 강함의 이미지였다.
 
브라쇼브는 트란실바니(Transylvania) 지역의 중심도시다. 헝가리에게 빼앗겼다가 되찾은 땅이라 독일인, 헝가리인, 루마니아인의 함께 살았는데 요즘은 루마니아인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한다. [사진 박헌정]

브라쇼브는 트란실바니(Transylvania) 지역의 중심도시다. 헝가리에게 빼앗겼다가 되찾은 땅이라 독일인, 헝가리인, 루마니아인의 함께 살았는데 요즘은 루마니아인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한다. [사진 박헌정]

 
1998년 월드컵축구에 나온 루마니아 선수들의 머리가 전부 노랗길래 유전적 특징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다 같이 염색한 것이었다. 팀워크를 위한 자발적 행동일 수도, 상대 교란전술일 수도 있었지만 순간 내겐 ‘자유가 철저히 통제된 나라’의 느낌이 먼저 떠올랐다. 이때는 이미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사라지고 민주화된 시대였다. 만일 승리에 대한 그들의 염원을 독재시대의 강제력과 연결해 생각했다면 미안한 일이다.
 
이보다 앞서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가 있었다. 아직도 내 이전 세대들은 ‘루마니아=코마네치’로 알고 있다. 1976년 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10점 만점을 받은 앳된 소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스포츠의 역동성이나 천부적 재능에 대한 찬사는 빼고 ‘빨갱이들이 저 어린 것을 얼마나 고생시켰을까’ 생각한 게 사실이다.
 
루마니아에 대한 나의 편견은 절대적인 정보 부족의 결과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아는 루마니아는 코마네치, 차우셰스쿠, 드라큘라… 나 역시 그 정도였다. 언젠가 스웨덴 사람과 대화하다 보니 스웨덴에서 떠오르는 것도 채 20개가 되지 않았다. 한림원, 바이킹, 스톡홀름, 볼보, 아바… 그쪽도 Korea에서 전쟁을 먼저 생각해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곳곳에서 꽃을 팔고 집집마다 꽃을 키운다. 크고 호화로운 집은 아니어도 창마다 꽃이 있으니 삶이 더 소중한 느낌이 든다.[사진 박헌정]

루마니아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곳곳에서 꽃을 팔고 집집마다 꽃을 키운다. 크고 호화로운 집은 아니어도 창마다 꽃이 있으니 삶이 더 소중한 느낌이 든다.[사진 박헌정]

 
한정된 지식에서 출발하니 편견은 확장된다. 그 친구는 키 크고 어깨 좁고 하얀 얼굴에 수염을 길렀다. 그래서 지난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건장한 스웨덴 선수들과 맞붙기 전까지 내 머릿속 스웨덴 사람은 마르고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루마니아는 한반도보다 약간 넓고 로마인이 2천년 전에 세운 다치아왕국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로마제국에 편입되었다가 한동안 역사의 표면에서 사라졌지만 슬라브족과 섞이면서도 루마니아어를 유지하며 살아남았다. 중세 이후 투르크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고 영토의 상당 부분을 헝가리와 다투던 고난의 시절도 보냈다.
 
차우셰스쿠 시절부터 친서방 분위기를 유지하여 서구자본이 많이 들어왔고, 공산권이 보이콧한 LA 올림픽에 참가해 미국 다음으로 종합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은 르노 계열이 된 다치아 자동차와 금속, 화학 등 산업기반도 있고 석유도 생산하는, 꽤 잘 살던 나라다.
 
수도 부쿠레슈티는 공산화와 독재시절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웅장한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이면에는 낡고 초라한 지역도 많아 더욱 대비된다. [사진 박헌정]

수도 부쿠레슈티는 공산화와 독재시절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웅장한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이면에는 낡고 초라한 지역도 많아 더욱 대비된다. [사진 박헌정]

 
루마니아인은 라틴민족 기질이 있어 낙천적이고 급한 게 없다고 한다. 겉보기엔 무표정해도 말 걸면 잘 웃고 친절하며 정이 많다는데, 실제로 겪어 본 느낌 역시 밝고 활기찼다. 일단 말을 많이 하고, 영어를 알든 모르든 큰 소리로 시원시원하게 대하니 의사소통이 수월했다. 잘 놀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정서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강하다고 한다.
 
약속에 허술하고 변명이 많다는 평가도 있다. 어떤 이는 루마니아 친구가 약속을 어긴 후 하는 변명이 대개 “할머니 집에 다녀오느라…”식이라고 한다. 그건 또 가족 간의 애정이 강한 이탈리아 분위기 같다. 언어도 라틴계열인 스페인어와 비슷해서 ‘하나(unu), 둘(doi), 셋(trei)’ 같은 간단한 단어를 쉽게 익혀 가게 같은 곳에서 써먹으니 아주 반가워한다.
 
루마니아에 대한 또 하나의 이미지는 ‘집시’였다. 차우셰스쿠가 인도주의와 인권을 선전하려고 대규모로 집시를 수용했는데 1989년에 민주화되면서 복지혜택을 축소해서 서유럽으로 많이 옮겨갔다고 한다. 서유럽의 집시는 강도 수준이라 골치 아프지만 정작 루마니아 집시들은 비록 동정받지 못하는 멸시의 대상이기는 해도 특별히 위험한 정도는 아니다. ‘영악한 집시는 다 떠나고 어설픈 집시만 남았다’고 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조용히 살아간다.
 
냉전시절, 우리에게 동구권 공산국가들은 ‘적성국가’로 인식되었지만 당시에도 이 나라들은 서방세계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거부하거나 차단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보 부족은 마음대로 상상하여 괴물 같은 편견을 만들어낸다. [사진 박헌정]

냉전시절, 우리에게 동구권 공산국가들은 ‘적성국가’로 인식되었지만 당시에도 이 나라들은 서방세계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거부하거나 차단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보 부족은 마음대로 상상하여 괴물 같은 편견을 만들어낸다. [사진 박헌정]

 
짧은 조사와 여행으로 루마니아를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고 어쩌면 또 다른 편견을 만들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동안 내가 생각하던 것들이 얼마나 틀렸는지는 깨닫게 되었다. 직접 보고 겪음으로써 편견을 깨는 것, 그게 여행의 가장 큰 선물 아닐까.

 
내 머릿속의 편견을 밀어내고 새롭게 들어찬 루마니아의 이미지는 ‘해맑은 나라’다. 그 이미지는 첫날 숙소를 찾지 못해 어둠 속에서 헤맬 때 가던 길을 멈추고 도와준 잘 생긴 두 청년의 환한 미소 속에서 이미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이제 다음 여행지는 불가리아다. 불가리아에 대한 알량한 지식과 느낌에 대해서도 이 기회에 한 번 흔들어보려고 한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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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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