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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레시피보다 전화로 물어보는 엄마 레시피가 좋은 이유

중앙일보 2019.10.28 09:00

[더,오래] 빵떡씨의 엄마는 모르는 스무살 자취생활(5)

엄마가 만들어주는 무생채는 맛있다. 그것도 심하게 맛있다.엄마만의 비결이 있는 것 같았다. [사진 flickr]

엄마가 만들어주는 무생채는 맛있다. 그것도 심하게 맛있다.엄마만의 비결이 있는 것 같았다. [사진 flickr]

 
- 여보세요.
- 엄마 난데, 무생채 어떻게 만들어?
- 무생채? 웬 무생채?
- 집에 무 남은 게 있는데 상온에 뒀더니 말라비틀어지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이걸 빨리 반찬으로 만들어야 할 거 같아서 무생채를 하려고.
- 아이고, 라면도 안 끓이던 애가 무생채를 한다니 기가 막히네.
 
엄마는 기가 막혔음에도 열심히 레시피를 불러 주었다. “무에 소금을 착착착 뿌리고, 30분 기다리면 물이 생기는데 그걸 꼭꼭 짜. 그럼 이 양념 저 양념 삭삭 뿌려서 조물조물 버무리고…”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착착착’이라든가 ‘꼭꼭’, ‘삭삭’, ‘조물조물’ 같은 단어가 듣기 좋아 웃으며 받아 적었다.
 
물론 요즘에야 팔로워 288만 명에 빛나는 백종원의 유튜브 채널(이 순간에도 팔로워는 늘고 있다)에만 들어가도 거의 모든 집밥 레시피를 볼 수 있지만, 왠지 무생채만은 엄마만의 비결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엄마의 무생채는 심하게 맛있기 때문이다. 나와 동생은 그 무생채를 거의 국수처럼 먹는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했고, 비결은 딱히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역시 비결 같은 건 〈생생정보통〉에 나오는 맛집에나 있는 건가 보다.
 
무생채를 만들며 몇 가지 난관에 봉착했다. 일단 무를 써는 것부터 험난했다. 체감상 무가 아니라 나무 기둥을 써는 느낌이었다. 반 정도 썰고 진지하게 지금이라도 때려 칠까 고민했지만, 엄마는 매일 하는 고생인데 나라고 포기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엄마한테 “무 써느라 손목 나갈 뻔했다”고 하니 “엥? 너희 집에 채칼 없냐? 칼로 썰면 힘들지”라고 해 묘하게 배신감을 느꼈다.
 
다음 난관은 무의 물기를 짜는 일이었다. 엄마가 분명 ‘물을 꼭꼭 짜라’고 했는데 ‘꼭꼭’이 얼마나 꼭꼭 인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나는 ‘꼭’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들어갔으니 분명 많이 짜라는 뜻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듯 내 판단은 틀렸고, 즙 짜듯이 무에서 물을 짜낸 결과 동생에게 무생채가 아니라 무말랭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았다.
 
두 번째 칸 빨간 뚜껑 통에 담긴 게 내가 만든 무생채인데 비로소 다 먹어 간다. [사진 빵떡씨]

두 번째 칸 빨간 뚜껑 통에 담긴 게 내가 만든 무생채인데 비로소 다 먹어 간다. [사진 빵떡씨]

 
마지막 난관은 재료의 부재였다. 우리 집엔 소금, 설탕, 간장 말고 없었다.
- 매실청을 한 숟갈 넣고
- 없는데?
- 그럼 그냥 올리고당 넣고
- 없는데?
- 사와 그럼 인마. 그리고 멸치 액젓도 반 숟갈 넣어
- 없는데?
- …너어는 공기로 음식을 만들려고 했니?
나는 뭔가 비슷한 재료로 대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멸치 액젓 대신에 간장을 넣고, 매실청 대신 유자차를 넣으려다 동생에게 강하게 제지를 당해 결국 설탕을 넣었다. 다 만들고 동생에게 간을 보도록 했다. 동생은 뭔가 밍밍하다고 했다. 나는 고심했다.
“음… 라면 수프 좀 넣을까?”
“…돌았냐?”
그렇게 해서 이 음식의 이름은 ‘무생채가 되고 싶었던 돌은 무말랭이’가 되었다.
 
나는 반찬을 한 번 만들어보니 요리에 대한 자신감과 재미가 붙었다. 이 가정의 식사를 내가 책임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같이 먹는 사람도 좀 생각해 달라며 눈물의 호소를 했지만, 요리에 대한 나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요리 천재 빵떡씨는 어느 날 마트에 갔다. 그런데 부케 다발만 한 고구마 줄기가 한 단에 1500원밖에 안 했다. 와 이게 1500원이면 고구마 줄기 농부들은 남는 게 없을 텐데! 내가 남의 장사까지 걱정하는 사이에 마트 직원 아주머니가 오셔서 친절하게 고구마 줄기 요리법을 알려주셨다. 줄기에서 잎을 똑 떼 껍질을 벗기고 삶아 들깨랑 볶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했다. 나는 아주머니의 말을 믿고 고구마 줄기 두 단과 들깨 한 봉지를 샀다.
 
하지만 나는 곧 마트 아주머니에게 앙심을 품게 되는데…. 껍질이 벗겨지질 않는 것이었다. 고구마 줄기를 소금물에 불려 놓으면 껍질이 저절로 흐물흐물 떨어져 나올 줄 알았는데, 얘들은 서로 떨어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뭔가가 분명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볶음 반찬 하나에 이렇게 손이 많이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또 엄마에게 전화했다.
 
- 엄마, 고구마 줄기 쉽게 까려면 어떻게 해야 해?
- 엥? 고구마 줄기를 왜 까?
- 고구마 줄기 볶음 해 먹으려고.
- 그걸 껍질 벗겨 놓은 걸 사야지 그냥 줄기를 샀어?
- …아, 껍질을 벗겨서 팔아?
- 아이고 당연하지. 그걸 어느 세월에 까?
 
고구마 줄기 까는 중인데 사진에 보이는 양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고구마 줄기 까는 중인데 사진에 보이는 양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나는 꽃다발을 쥐고 관에 누운 백설 공주처럼 고구마 줄기 다발을 쥐고 주방 바닥에 드러누웠다. ‘괜히 싼 게 아니었어….’ ‘1500원에 내 노동 값을 더해야 진짜 가격이었네….’ 나는 ‘호갱’이 된 기분에 노동할 의욕을 잃었다. 그때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 빵떡아, 그거 줄기를 똑똑 분지르면서 하면 더 잘 벗길 수 있어.
나는 엄마 말대로 줄기를 분지르며 껍질을 깠다. 엄마 말대로 껍질이 훨씬 수월하게 벗겨졌다. 물론 그런데도 고구마 줄기의 절대량이 많았기 때문에 이틀 저녁 내 까야 하긴 했다. 이 단순노동을 오래 하다 보니 점점 생각이 없어졌다. 번뇌가 많은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나는 고구마 줄기 볶음을 완성해 주말에 본가에 갖고 갔다. “수고했다. 이제 엄마가 반찬 안 해줘도 되겠네.” “그럼, 이제 내가 반찬 해서 엄마 줄게.” “그건 사양한다.” “아 왜, 맛있어~” “석구가 네 무생채 무말랭이라 하던데.” “아 그것보다 맛있게 했어.” 하는 대화가 오갔다. 엄마는 특히 내가 “엄마, 마음을 비우는 데에는 108배보다 고구마 줄기 까는 게 나아”라고 말한 부분에서 크게 웃었다. 딸의 고통에 이리 즐거워하실 줄이야….
 
엄마⸱아빠는 내 어이없는 실수를 재미있어했고 내 요리는 오래도록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엄마⸱아빠는 이제껏 내 모든 일의 시작을 목격해 왔듯이, 내 독립과 요리의 시작도 지켜봐 주고 있다. 검색만 하면 백종원 아저씨가 모든 레시피를 다 가르쳐 주는 세상이지만 당분간은 전화로 엄마에게 레시피를 물어보려고 한다. 이런 세상에서도 처음 시작하는 서투름을 가족과 공유하는 즐거움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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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떡씨 빵떡씨 프리랜서 마케터 필진

[빵떡씨의 엄마는 모르는 스무살 자취생활] 올해 초부터 서울에 전세를 얻어 살기 시작했다. 동거인은 쌍둥이 동생으로 둘 다 94년생 사회 초년생이다. 동갑내기 90년대 생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겪는 에피소드를 연재하고자 한다. ‘이눔 자식들 집 나가서 밥은 잘 먹고 다니나’ 하는 궁금증을 금하지 못 하는 부모님들이라면 솔깃할 이야기. 20대가 직면한 부모로부터의 독립, 연인과의 동거, 결혼 문제 등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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