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늘 짜증내는 엄마를 보고 자란 자녀의 마음, 생각해봤나요

중앙일보 2019.10.28 07:00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28)

어제 환절기 감기로 인해 동네 병원을 찾았다.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가 발 한쪽의 절반 정도를 깁스하고 엄마와 함께 입구 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은 짜증 난 표정이었고, 아이는 엄마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나를 포함해 대여섯 명의 사람이 엘리베이터 앞에 모였다. 아이는 다리를 쩔룩거리며 왔다 갔다 하면서 흥얼거리기도 하고, 깁스하지 않은 한 발로 콩콩 뛰기도 했다.
 
엄마는 불편한 표정으로 아이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자 아이는 자신을 쳐다보는 엄마를 보며 “엄마 왜?”라고 질문했다. 이때 엄마는 옆에 있는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하도 엄마 말을 안 들어서 누구 닮아서 그런지 보는 거야!” “너 깁스하지 않은 발이 아프다고 어제도 찜질했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뛰어다니니…. 어휴 정말, 네가 왔다 갔다 하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불편하잖아. 이쪽으로 좀 와서 붙어 있어!”
 
아이들은 다양한 감정표현과 분노 해결법을 같이 생활하는 보호자에게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대로 배운다.[사진 pxhere]

아이들은 다양한 감정표현과 분노 해결법을 같이 생활하는 보호자에게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대로 배운다.[사진 pxhere]

 
오늘 빵 가게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 동안 난 또 앞 테이블에 앉아 빵을 먹는 아들과 엄마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아이는 만 세 살쯤 돼 보이는 아이였고, 엄마와 마주 앉아 있었다. 아이의 맞은편 의자에는 아이 것으로 보이는 어린이집 가방이 놓여 있었다.
 
빵을 포크로 찍어 먹던 아이는 먹던 빵을 보면서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이건 뭘까?”(보통 이 나이 또래의 아이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때이므로 ‘아! 이 아이도 발달단계에 맞는 행동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아이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응, 이건 파슬리라는 거야. 한번 맛볼래?” 혓바닥으로 파슬리를 맛보는 아이에게 엄마는 “어때 맛있어?”라고 물으니 아이가 “아니, 아무 맛이 없는 것 같은데…. 엄마 아무 맛이 없는 것을 왜 빵에다 넣지?” 하고 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글쎄, 빵을 만드시는 분이 왜 그러셨을까? 그런데 이 파슬리는 무슨 색이야?”라고 아이에게 되물었다. 아이는 “초록색”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래 초록색이구나. 그런데 만약 이 빵에 초록색 파슬리가 있는 빵과 없는 빵이 어떻게 다를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질문했다.
 
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빵을 물끄러미 이리저리 관찰했다. 그러고는 곧 아이의 관심은 빵에서 멀어져 의자 밑에 숙여서 보기도 하고, 빵을 만지던 손으로 의자를 짚고 의자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엄마는 다시 아이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가 이제 배가 부른가 보다. 그런데 의자에 빵을 묻히면 다른 사람들의 옷에 초록색 파슬리가 묻을까 엄마가 걱정되는데…. 우리 이제 정리하고 갈까?”라고 말했다. 엄마는 의자도 닦고 아이의 손도 닦은 후 아이에게 옷을 입도록 했다.
 
“이제 밖에 나가려면 우리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제 밖이 썰렁하지?” 옆 테이블에서 빵을 먹던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날씨가 썰렁하다’라는 단어는 이제 세 살 먹은 아이에게서 나올법한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아마도 부모와 이런 식의 대화 속에서 또래에 비해 많은 감정과 단어를 말로 표현하는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는 일상의 다양한 문제를 만날 때 비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직접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사진 pixabay]

보호자는 일상의 다양한 문제를 만날 때 비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직접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사진 pixabay]

 
3~4살 나이 또래는 다양한 감정을 배우는데, 스스로가 그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이는 내가 느끼는 것이 화인지, 불안인지, 기쁨인지 그 이름도 모른 채 그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지금 내 느낌이 화나는 것이구나!’ 이럴 때는 이 분노를 이렇게 처리하는지를 누구에게 배울까? 같이 생활하는 보호자에게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대로 배운다.
 
보호자는 일상의 다양한 문제를 만날 때 비폭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직접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때 아이는 친구와의 사이에서 화난 감정이 나타났을 때 ‘나 (어떤) 이유로 화났어!’라고 말하고 폭력 없는 방식으로 그것을 처리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바로 보호자에게서 몸으로 배운다는 것이다. 만약 반대의 방식으로 배웠다면 아이는 그런 행동 처리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이것은 평생 아이의 생각을 만드는 밑거름이다.
 
어제 병원 앞의 엄마는 아이와 어떤 대화를 해야 했을까? 그 당시 엄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엄마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키는 아이의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네가 하도 엄마 말을 안 들어서 누구 닮아서 그런지 보는 거야!”라는 말이 엄마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인가? 그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그저 ‘비아냥’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공공장소가 아니라 가정 안이었다면 더 많은 비난의 말이 아이에게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아이의 불편함을 잘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그 아이는 많이 움직이는 발달 단계에 있고, 기질적으로 더 움직임이 많은 아이일 수 있다.
 
“발에 깁스하고 있어서 맘껏 움직이지 못하니 많이 불편하지? 그래서 한 쪽 발로 콩콩 뛰는 거야? 그런데 한 발에 너무 무리가 가서 어젯밤에도 아주 아팠잖아. 엄마는 또 몹시 아플까 봐 걱정되는데…. 지금 의사 선생님 만나러 가니 선생님께 한쪽 발을 콩콩해도 되는지 여쭤 보자. 20초 정도면 엘리베이터가 오겠다. 이쪽으로 올래?” 이런 접근이었다면 아이에게 엄마가 자신의 불편함을 엄마가 알고 있다는 것도 표현하고, 엄마의 걱정도 알릴 수 있는 대화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부모가 자녀의 감정과 정서 발달 단계를 존중하면서 다가갈 때 자녀는 부모가 원하는 학습에 대한 호기심과 자주적 행동력이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사진 pixabay]

부모가 자녀의 감정과 정서 발달 단계를 존중하면서 다가갈 때 자녀는 부모가 원하는 학습에 대한 호기심과 자주적 행동력이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사진 pixabay]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부모는 자녀의 문제 행동을 만날 때 새로운 것을 배우게 하는 ‘기회의 포착’이라는 측면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 아이들은 늘 짜증과 화내는 부모의 모습을 보게 되고, 가정은 부정적 분위기로 흘러갈 수 있다.
 
부모가 생각하는 문제의 행동은 사실 대부분 이 나이 또래의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것들일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것을 부정적 측면만을 보고 아이에게 화내고 벌씌우며 모욕을 주는 것이 결코 궁극적으로 부모가 원하는 모습의 자녀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안전에 대해 늘 걱정이 많고 자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는데, 이것이 궁극적으로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외려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하는 경우를 많이 만난다. 부모가 자녀의 감정과 정서 발달 단계를 존중하면서 다가갈 때 자녀는 부모가 원하는 학습에 대한 호기심과 자주적 행동력이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손민원 손민원 성ㆍ인권 강사 필진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젊은이와 노약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남자와 여자..... 모두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들의 인권 이야기, 폭력예방, 성평등.... 교육을 통해, 나와 이웃 모든 사람이 가진 자유, 평등, 존엄에 대해 공감하는 힘을 키우기를 소망합니다. 강의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목소리를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