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3·고1 부모들 "언젠 수행평가라더니···애들이 실험실 쥐냐"

중앙일보 2019.10.28 01:00 종합 1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관계 장관회의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관계 장관회의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서울의 일반고 1학년 아들을 둔 김모(44‧서울 노원구)씨는 요즘 밤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된 정시 확대 방침으로 김씨 아들이 치르는 2022학년도 대입이 어찌 될지 내다볼 수 없어서다. 내신이 상위권이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이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서울 소재 상위권대에 진학하려 했는데, 학종 비율을 줄일 것이란 소식에 걱정이 커졌다. 고심 끝에 사교육 컨설턴트를 찾아가 상담 받았으나 도움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 “정시 확대” 언급 후폭풍
고1 “지금껏 수행평가 강조해 놓고”
중3 “특목고·일반고 어딜 가야 하나”
전교조·진보교육감 “정시확대 반대”

김씨는 “’급격한 변화는 없다’는 교육부의 말만 믿고 학교 공부와 교내 활동에 매달렸는데 정시 모집이 늘면 지금까지 해온 게 소용없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교사도 컨설턴트도 답을 주지 못해 차라리 점이라도 치는 게 나을 판”이라고 답답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5일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정시를 확대하겠다고 밝히자 이들 대학을 염두에 뒀던 학생‧학부모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첫 적용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고1과 고입을 코앞에 둔 중3 학생‧학부모, 정시 비중이 적고 학종 비율이 높은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염두에 둔 상위권 학생이 동요하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관련기사

27일 교육부에 따르면 정시 확대 방안은 고1이 치르는 2022학년도 대입부터 적용될 수 있다. 교육계 관계자들은 고1이 배우는 교육과정과 정시가 불일치하는 면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재진 대학미래연구소장은 “고1은 교과수업 대신 학교 안팎의 활동을 장려하는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경험한 첫 세대다. 지필고사 대신 수행평가가 중요한 교육과정을 배워 수능식 문제풀이 대신 지식활용 교육을 받았던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이런 고1의 대입에 정시를 늘리면 교과과정에 충실한 학생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게 되는 상황이란 설명이다. 고1‧중1 두 자녀를 둔 이모(44·서울 양천구)씨는 “초등학교에선 시험을 없애고, 중학교에선 자유학기제로 활동을 권장했는데, 이젠 시험으로 대학을 가라고 하니 앞뒤가 안 맞다. 우리 애들이 실험실 쥐처럼 된 것 같다"고 화를 냈다.
 
수능에 유리한 특목고‧자사고 대신 일반고에 자녀를 보낸 것을 후회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고1 아들을 둔 김모(53‧서울 마포구)씨는 “중학교 때 성적이 상위권이었지만 내신을 생각해 일반고에 보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자사고에 보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고입을 앞둔 중3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도 크다. 교육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자사고‧외고, 일반고 중 어디에 지원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학생 성적과 성격 등을 토대로 대입에서 유‧불리를 살펴 고교유형을 선택했는데, 올해 자사고의 무더기 지정취소 사태를 거치고 정부가 자사고‧외고의 일괄 전환 방침까지 밝혀 혼란에 빠졌다. 중3 아들을 둔 직장인 백모(42‧서울 노원구)씨는 “자사고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가 올해 재지정 평가로 혼란이 커 일반고에 보낼 계획이었는데, 정부가 상위권대학에 자사고가 유리한 정시를 늘리고 폐지는 2025년으로 넘긴다니 하루에도 10번은 넘게 생각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 사후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스1]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 사후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스1]

학교 현장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대입에서 수시 선발이 증가하면서 상당수 고교가 수능 대비보다 교실 수업, 수행평가 등 학교생활기록부 관리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교사들에 따르면 정부 발표 이후 학부모들이 “정시 준비도 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곳이 적지 않다. 경기도의 한 일반고 교사는 “아직 정부가 확정안을 발표하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학부모들이 수능 대비 EBS 문제풀이 수업을 늘려 달라고 요청하는 학교들이 생겼다”며 “학종이 늘면서 학교 중심의 공교육이 정상화되는 분위기였는데 정시 확대 움직임으로 다시 무너질까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교육계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육혁신연대’ 등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정시확대 반대 기자회견을 한다. 이들은 “정시확대는 그나마 확장해온 고교교육 정상화 흐름을 거꾸로 되돌리고, 교육 불평등을 강화하는 일”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와 ‘정책 공조’를 했던 진보 교육감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 따르면 다음달 4일 예정인 총회에서 자체적인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현 정부의 정시 확대, 학종 축소 방침을 비판하면서 교과 성적(내신)과 수능 모두를 절대평가하자는 제안이 담길 예정이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