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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의 시선] 총리의 길, 이낙연의 길

중앙일보 2019.10.28 00:26 종합 32면 지면보기
신용호 논설위원

신용호 논설위원

이낙연 총리가 오늘로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됐다. 재임 881일로 김황식 전 총리의 기록을 넘었다. 총리직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보니 차기 대선 지지율이 높다. 지난해 이맘때 쯤 박원순·김부겸을 제치고 범여권 선두로 나섰고 지금도 1위다. 천운도 있다. 안희정·조국이 쓰러졌고, 이재명·김경수도 곤란을 겪고 있다. 박원순은 뜰 기미가 잘 안 보인다. 김부겸은 당장 내년 총선(대구)에서 살아오는 게 급선무다.
 

정무감각에 중도 확장성 갖춰
뚜렷한 정치적 자산은 안보여
험한 대선의 길 이제 시작인 듯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차기의 시대정신’을 묻는 말에 권력의지를 드러냈다. 매사 조심스러운 그라 인상적이었다. 평소 ‘대선에 나갈 거냐’고 물으면 몸을 낮추며 선을 그어왔다. 그런데 이번엔 시대정신에 대해 꽤 장황하게 설명하며 “이번 대선엔 후보의 정치적 역량이 중요시될 것”이라고 했다. 대선을 바라보는 이에게 시대정신은 민감한 질문이다. 시대정신이 대통령을 고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론 출마 준비에 들어간 지 꽤 됐다고 한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몇달 전 총리 쪽에서 도와달라는 말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벌써 꿈틀거리는 데도 있다. 지난 23일 이낙연을 지지하는 정대철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만나봤다. 이낙연은 정대철이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사이로 요즘도 가깝다. 지난달 민주평화당을 탈당했다. 그는 “이 총리가 균형 있고 스캔들 없는 유능한 정치인”이라며 “문 대통령의 신뢰도 높다”고 했다.
 
주변에 돕겠다는 이들이 있나.
“총리가 막걸리 만찬을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최근 후원자들이 생겼다. 전직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겠다고 나한테 얘기를 한다. 권노갑 고문도 그렇고 동교동계가 기울었다.”
 
민주당 내 친문 인사들은 어떨까.
“안희정·이재명도 없고 유시민도 선을 긋고 있다. 그쪽에 사람이 없지 않나. 이낙연은 중도로 확장성도 있다.”
 
당내 인사들에게도 얘기를 들어봤다. 24일 만난 한 친문 중진 의원은 “총리 하면서 평이 갈수록 좋아졌고 안정감 있고 균형 있게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을 잘 대변해왔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자원 중 한 분”이라며 “지금 대선 후보 얘기를 하는 건 큰 의미가 없고 연말에 총리직에서 벗어난다면 총선에서 역할을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호남 출신의 한 의원은 “호남 후보가 대통령이 되려면 철학과 가치, 대중 설득 능력이 DJ급(김대중 전 대통령)은 돼야 한다. 그래야 충청을 끌어들이고 영남에서도 표가 나온다”고 했다. 다른 초선 의원은 “총리 하다 꽃이 핀 케이스인데 정치적으로 대변인 외에 부각된 게 없다”며 “총리를 마치고 나면 지지율이 유지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낙연은 안정감 있는 총리직 수행으로 지지율 1위에 올랐고 여기엔 4선 의원, 지사를 거치며 다진 정무감각이 한몫을 했다. 정치적 성향상 중도·통합 행보가 가능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랬듯 총리직을 수행하는 데야 이 정도면 크게 나무랄 곳은 없다. 하지만 조만간 총리직을 내려놓고 내년 총선에 나서거나 대선 행보를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자신만의 뚜렷한 정치적 자산이 없다는 점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지도자가 내놓을 수 있는 철학이나 가치, 비전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선 후보 노무현 하면 떠올랐던 지역주의 타파나 지방 분권 같은 브랜드를 그에겐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색깔이 없다’는 평도 나온다. 정치적 자산이란 게 단번에 생기는 게 아니라면 이낙연만의 색깔이라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일례로 조국 국면을 거치며 느낀 거지만 ‘대통령과 사이가 좋은 총리’보다는 ‘할 말은 하는 총리’가 더 색깔 있어 보이지 않을까.
 
박원순계, 안철수계는 있는데 이낙연계가 없다는 점도 정치 인생을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대선을 위해 당내 세력은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앞으로 세력이야 모을 수 있지만, 결국엔 친문의 도움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소신 있는 후보’보다는 ‘친문을 위한 후보’ 쪽으로 기울 수 있다.
 
연말 당 복귀가 그의 뜻대로만 되지 않을 것이란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자칫 총리 후임자를 잘못 뽑아 야당이 주도하는 청문회 정국이 조성되면 총선에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 특히 ‘조국의 상처’가 있는 문 대통령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거다. 대통령 입장에선 그만한 총리가 있겠나. 그리되면 총리를 3년 가까이 해야 하는데 약이 될지 독이 될지다. 피고 진 어느 후보에게나 그랬듯 이낙연에게도 대선까지의 길은 아직 멀고 험하다. 
 
신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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