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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컨테이너 혁명’의 비극

중앙일보 2019.10.28 00:16 종합 35면 지면보기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1954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독일 브레머하펜으로 향한 화물선 S.S 워리어호. 이 배에 실린 5000t에 이르는 화물은 식품부터 가정용 제품,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품목만도 19만4582가지에 달했다. 문제는 이렇게 다양한 물건을 싣고 내리는 일이었다. 운항 기록에 따르면 하역에만 열흘이 걸렸다. (팀 하포트의 『경제학 팟캐스트』)
 
하역 때 발생하는 병목현상은 운송 비용과 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었다. 상황이 달라진 건 길이 12m, 폭 2.4m, 높이 2.6m의 주름식 강철 박스가 등장하면서다. 맬컴 매클린이 1956년 만든 컨테이너가 세계 무역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트럭과 쉽게 분리되고 쌓아 올릴 수 있는 표준화한 컨테이너 덕에 운송 시간이 줄고 운송비는 낮아지게 됐다.
 
‘컨테이너 혁명’은 세계 무역 팽창의 신호탄이었다. 국경을 넘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더 긴밀하게 연결됐다. 싼값에 다양한 물자를 소비할 수 있게 됐다. 컨테이너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며 재화와 서비스, 인력이 국경을 넘어 오가는 세계화에 가속이 붙었다.
 
하지만 세계화가 모든 이들의 장벽을 낮춘 것은 아니다. 반 세계화의 흐름 속 유럽의 반이민 정책까지 강화되며 밀입국 알선은 거대 산업이 되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유로폴의 자료를 인용해 유럽 내 난민·이주자 밀입국 알선업 규모는 연간 46억 파운드(약 7조원)로 추산되고 트럭 운전사 등 이에 연루된 사람도 4만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비극적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23일 영국 남부 에식스 산업단지의 한 냉동 트럭 컨테이너에서 39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밀입국을 시도하다 냉동 컨테이너 안에서 동사했거나 질식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몸을 실은 컨테이너가 누군가에게 움직이는 관이 된 비극이 슬프다.
 
하현옥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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