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변·욱일기·태풍·문신...시끄러운 럭비 월드컵

중앙일보 2019.10.27 17:24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이 하카를 추는 뉴질랜드 선수단을 V자로 애워싸고 있다. 잉글랜드의 '맞불'에 뉴질랜드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흔들렸다는 분석이다. [AFP=연합뉴스]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이 하카를 추는 뉴질랜드 선수단을 V자로 애워싸고 있다. 잉글랜드의 '맞불'에 뉴질랜드 선수들은 심리적으로 흔들렸다는 분석이다. [AFP=연합뉴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2019 일본 럭비월드컵이 이변과 이슈 속에 치러지고 있다. 잉글랜드는 26일 일본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준결승에서 우승 후보 0순위 뉴질랜드를 19-7로 꺾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최다 우승국(3회) 뉴질랜드의 패배는 대회 최대 이변이다. 뉴질랜드 헤럴드는 "'하늘이 무너졌다! '올블랙스(뉴질랜드 럭비대표팀의 애칭)'가 잉글랜드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상대 전적에서 잉글랜드를 압도한 뉴질랜드(33승·1무·7패)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승 후보 뉴질랜드 결승행 실패
태풍에 날아간 '후쿠시마 선전전'
욱일기는 되고, 문신은 안 된고

 
잉글랜드는 기막힌 심리전을 앞세워 뉴질랜드를 무너뜨렸다. 뉴질랜드의 경기 전 하카(Haka·전투에 나서는 마오리족 원주민 춤)를 선보이는데, 눈을 희번덕 뜨고 혀를 내민 채 발을 쿵쿵 구르는 동작을 본 상대는 시작하기도 전에 기세가 꺾인다. 잉글랜드는 가만히 서서 하카를 지켜보는 관례를 깨고, 예상을 뒤엎는 '맞불'을 놨다. 잉글랜드 주장 오웬 페어웰(28)을 위시한 잉글랜드 선수들은 하카를 추는 뉴질랜드 선수단을 포위하듯 V자로 애워쌌다. 일부 잉글랜드 선수는 센터라인 부근까지 접근했다. 뉴질랜드 선수들은 적지 않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다행히 심판이 제지해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잉글랜드는 상대가 흔들리는 틈을 타 경기 시작 1분36초 만에 선취점을 올린 뒤, 한 번도 리드를 내주지 않았다. 페어웰은 승리 후 BBC와 인터뷰에서 "상대의 계획대로 흐름이 흘러가도록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데일리 메일은 "하카는 잉글랜드에 아무런 심리적 타격을 미치지 않았다"고 승리 요인을 꼽았다.잉글랜드는 2003년 호주 대회 이후 두 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결승은 다음 달 2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캐나다 럭비대표팀이 일본 이와테현 가마이시에서 하비기스 태풍 피해 복구를 돕고 있다. [AP=연합뉴스]

캐나다 럭비대표팀이 일본 이와테현 가마이시에서 하비기스 태풍 피해 복구를 돕고 있다. [AP=연합뉴스]

 
내년 도쿄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지역의 안정성을 선전하겠다는 계기로 삼겠다는 일본의 생각은 태풍의 영향으로 차질을 빚었다.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뉴질랜드-이탈리아, 잉글랜드-프랑스(이상 12일), 나미비아-캐나다(13일) 조별리그 3경기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9회째를 맞은 럭비월드컵 사상 경기가 취소된 것은 처음이다. 
 
세 경기는 대회 일정상 재경기가 어려워 대회 규정에 따라 0-0 무승부 처리됐다. 일본-스코틀랜드전은 예정대로 13일 오후에 열렸는데, 경기 전까지 양팀 선수들이 허벅지까지 물에 잠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경기가 취소된 캐나다 대표팀은 현지 태풍 피해 복구를 돕는 모습도 전해졌다.
 
 
왼쪽은 영국 내 럭비 월드컵 중계를 소개하는 펍 안내판. 오른쪽은 통신사 보다폰에서 제작한 영상에 럭비 월드컵을 응원하며 등장한 욱일기. [사진 서경덕 교수]

왼쪽은 영국 내 럭비 월드컵 중계를 소개하는 펍 안내판. 오른쪽은 통신사 보다폰에서 제작한 영상에 럭비 월드컵을 응원하며 등장한 욱일기. [사진 서경덕 교수]

 
도쿄올림픽 리허설 차원에서 열린 이번 월드컵에서 일본은 대회보다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 선전에 더 열을 올려 논란을 빚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에 따르면 팀팩 티켓 디자인에 욱일기 문양이 교묘하게 이용됐고, 개막식 때부터 경기장에서 욱일기 문양의 머리띠를 둘러매고 응원한 관중도 있었다. 또 도쿄 거리 곳곳에는 럭비 월드컵을 알리는 욱일기 문양을 담은 홍보물이 난무했다. 
 
일본은 욱일기에 대해선 관대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출전 선수들의 문신 노출을 제한하는 '내로남불' 지적도 받았다. 욱일기를 무차별적으로 노출한 일본은 야쿠자를 상징한다면서, 외국 선수들의 문신은 금지하는 황당한 주문도 했다. 일본은 뉴질랜드, 사모아 등에게 문신은 '야쿠자'를 상징해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훈련장 등에서 문신을 노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사모아에서 문신은 부족의 상징이다. 
 
사모아 선수들은 고심 끝에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사모아 주장 잭 램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문화에서 문신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일본 문화를 존중한다는 뜻으로 가리겠다"고 했다. 가디언은 "뉴질랜드에서 문신은 일상이다. 특히 마오리족을 비롯한 부족 사회에선 상징적인 의미"라면서 "문신 금지는 이번 대회 들어 가장 당혹스런 일에 속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