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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이 본래 위치서 14m 뒤로 삐딱하게 틀어진 사연

중앙일보 2019.10.27 13:00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2)

 

서울 사람들에게 궁궐은 가깝고도 멀다. 늘 가까이 있으니 무심해지고, 궁궐에 가본들 크게 감흥도 없다. 궁궐에 들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건물만 기웃거리며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이야기와 건축의 유래를 알고 본다면 궁궐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질 것이다. 교직 생활을 하다 조각가로 전업한 필자가 우리 궁궐의 아름다운 세계로 안내한다.<편집자>

 
광화문, 참 잘 견뎌낸 우리의 역사 한가운데 있던 이 이름을 오늘 이야기해 보자. 광화문은 처음에는 오문(午門) 또는 정문(正門)으로만 불리다가 세종 13년에 정식으로 광화문으로 불리게 되었다. 광화문의 이름은 광피사표(光被四表)와 교화만방(敎化萬方)에서 따 왔으니, 그 의미는 국왕의 큰 덕이 온 나라와 백성을 비춘다는 뜻이다.
 
경복궁을 사방으로 에워싼 궁장에는 네 개의 큰 문이 있다. 동은 건춘문. 남은 광화문, 서는 영추문, 북은 신무문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사대문 중 남문이며 정문으로, 세 개의 홍예(虹蜺)를 갖추고 있고 그 규모나 격식에 있어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
 
남쪽의 문이므로 사방위신 중 주작이 가운데 홍예문 천장에 그려져 있다. 양쪽의 홍예 천장에는 각각 기린(麒麟, 동쪽)과 현무(玄武,서쪽)가 그려져 있다. 가운데 홍예는 왕이 드나들던 어문이며, 양옆의 동쪽 홍예문으로 문관이, 서쪽 문으로 무관이 각각 드나들었다. 고종 4년에는 의정부에서 계를 올려 출입할 때 승지는 영추문으로, 문관은 광화문 동협문으로, 무관은 서협문으로 드나드는 것을 규정했다고 했다.
 
광화문은 5대 궁궐문 중 유일하게 독립된 망루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담장을 따라 동쪽 끝 모퉁이까지 가면 차도 한복판에는 높다란 석축 위에 사모지붕의 건축물이 외따로 서 있다. [사진 pixabay]

광화문은 5대 궁궐문 중 유일하게 독립된 망루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담장을 따라 동쪽 끝 모퉁이까지 가면 차도 한복판에는 높다란 석축 위에 사모지붕의 건축물이 외따로 서 있다. [사진 pixabay]

 
광화문(光化門)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불탔으나, 조선 후기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재건됐다. 궁장의 양 끝에는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이 있어 5대 궁궐의 문 중 유일하게 독립된 망루의 형식을 갖춘 문이다. 광화문 담장을 따라 동쪽 끝 모퉁이까지 가면 그 바로 앞의 차도 한복판에는 높다란 석축 위에 사모지붕의 건축물이 외따로 서 있다.
 
아무도 관심 없는, 그 위치가 사뭇 의아하기까지 한 이 건물이 바로 경복궁의 동십자각이다. 십자각은 궁성의 동남쪽 모서리에 서 있는 각루(角樓)다. 궁장의 모퉁이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길 한복판에 있어 양쪽으로 차들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경복궁 궁장 남쪽의 양 모퉁이에는 동·서십자각이 있었으나 궁장의 축소로 동십자각은 도로 한복판에 따로 떨어져 나간 채 외로이 서 있고 그나마 서십자각은 그 흔적조차 없어졌다.
 
일제는 1923년 9월 효자동으로 통하는 전찻길을 개설하면서 경복궁 서남쪽 모퉁이의 궁장을 헐어냈는데, 서십자각도 이때 함께 철거되어 없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담장을 잃고 꼼짝없이 갇혀버린 동십자각의 처지나 아예 사라져버린 서십자각의 팔자나 어느 쪽이 더 딱한 건지 잘 모르겠다.
 
원래 광화문 밖 남쪽으로는 정치와 행정의 중심축인 육조거리가 있었고 그 육조거리는 다시 경제의 중심인 운종가와 맞닿아 있었다. 이는 광화문이 한양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축을 잇는 곳에 있음으로써 당시의 왕조사회에서 궁궐이 갖는 위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광화문 앞 관청가인 육조 거리는 궐외각사(闕外各司)로 동쪽에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 기로소(耆老所)가 있었고 서쪽엔 예조, 병조, 사헌부, 형조, 공조, 장예원이 있었다. 세월 따라 길은 넓혀지고 변하더라도 늘 흔적은 남아 있듯이 광화문 앞에는 관청가의 유래로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 청사 그리고 외국 대사관들이 정치 공간으로서의 맥을 유지하고 있다. 
광화문은 낮보다 밤의 야경이 더 근사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화려한 조명에 비쳐진 광화문을 보면서 그 웅장하고 멋진 자태에 감탄한다. [사진 pixabay]

광화문은 낮보다 밤의 야경이 더 근사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화려한 조명에 비쳐진 광화문을 보면서 그 웅장하고 멋진 자태에 감탄한다. [사진 pixabay]

 

광화문 유감

이제 광화문광장의 세종로 육조거리를 지나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에 들어가는 운치를 즐겨보자. 비록 육조거리는 사라졌지만 광장 한복판에서 바라보는 경복궁의 위상은 대단하다. 사람들은 광화문을 경복궁의 정문이라는 구실보다 세종대로 가장 북쪽에 서 있는 독립된 구조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광화문에서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한껏 화려하고 멋있는 수문장 교대식이 있고, 오랜만에 경복궁을 찾은 사람들은 궁궐에 들어서기 전에 조선시대 복장을 한 수문장 모델들과의 사진 찍기도 흥미롭다. 더구나 낮보다 밤의 야경이 더 근사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 데 그들은 화려한 조명에 비친 광화문을 보면서 그 웅장하고 멋진 자태에 감탄한다.
 
아직 광화문의 본래 모습에 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아무도 광화문을 통해 경복궁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관람권을 내고 입장하는 흥례문이 경복궁의 정문 구실을 하고 있지 않은가. 광화문 안쪽 마당은 그냥 흥례문 앞에서 출발하는 수문장 교대식 같은 옛 행사를 보여주는 광장이나 통로쯤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수문장 임명의식이 재현되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종로구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수문장 임명의식이 재현되고 있다. [중앙포토]

 
광화문은 일제 침략기를 거치면서 조선왕조의 비명을 고스란히 몸으로 견뎌낸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한 우리의 역사이다. 일제는 1926년 총독부 청사가 경복궁 내에 완공되자 그 앞에 있는 광화문을 아주 헐어 없애려다가 여론의 반대에 밀려 1927년 9월 현 민속 박물관 정문 자리에 옮겨 놓았다. 정문으로의 구실을 박탈당하고 동문 건춘문 위쪽으로 쫓겨 간 광화문이 6·25전쟁의 폭격으로 문루가 불타 없어지고 석축만 남아 있던 것을 1968년 경복궁의 정문으로 재건돼 옮겨졌다. 그러나 새로 지은 광화문은 본래의 위치에서 14.5m 뒤로 물러났고 각도도 본래의 축에서 동남 방향으로 틀어지게 되었다.
 
당시 정부가 중앙청으로 사용하던 일본 총독부 건물은 애초 경복궁의 기본 축과는 다르게 자리 잡은 건물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중앙청의 앞에 지어진 광화문의 각도는 본래의 방향에서 3.5도 틀어지고 경복궁의 궁 배치와도 어긋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없어진 문루를 복원(이것을 복원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하면서 튼튼한 철근콘크리트로 지었으니 다시 불에 탈 염려는 없게 됐지만 우리 궁궐 건축의 전통은 찾아볼 수 없는 문화재 아닌 문화재로 그 역사적 의미마저 위축된 복원이 되었다.
 
게다가 광화문의 현판은 원래 ‘門化光’(왼편부터 읽기)이던 것이 대통령의 한글 친필휘호 ‘광화문’으로 대체되었다. 신식 철근 콘크리트 조 광화문에는 차라리 어울리는 한글표기의 새 문패려니 자조하다가도 늘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는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 자리 잡은 광화문에서 삐딱하게 보이는 경복궁의 건물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문민정부 시절 2003년부터 철근콘크리트 조 광화문을 철거하고 본래의 위치를 찾아 전통방식에 의한 복원에 들어갔다. 새로 복원한 광화문은 석축 기단 위의 목조 건물로 문 앞의 월대가 일부분만 복원되는 아쉬움은 있으나 복원공사가 완료되어 2010년 8월 15일 광복절에 본래의 자리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은 광화문-흥례문-근정전-강녕전-교태전으로 이어지는 일직선 상의 엄격한 축을 가지고 세워졌다. 광화문 가운데 홍예를 통해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이 하나의 축선에 들어오는 그 모습은 광화문이 그 자리를 박탈당했다가 실로 84년 만에 되찾은 시각이었다. 애초에 경복궁이 지니는 그 반듯한 축을 이제야 되찾고 나서 광화문 가운데 홍예를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는 시각은 참 소중했다. 
 
당신이 이미 경복궁 안으로 들어왔다면 근정전 월대에서 일직선 상에 들어오는 근정문, 흥례문, 광화문 밖 세종로 거리를 내다보시기를 권한다. 요즈음 들어 다시 광화문의 현판이 잘못되었다는 보도로 또 신문 지상에 그 이름을 드러낸 광화문의 본래 모습을 다시 한번 의미 깊게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 광화문 앞 월대와 함께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양쪽에 거느린 당당한 광화문의 제모습찾기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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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우 이향우 조각가 필진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 교사로 명예퇴직 후 조각가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를 배우고 알리는 궁궐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궁궐에서의 오랜 활동을 바탕으로 조각가의 심미안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궁궐의 아름다움을 직접 그리고 글을 썼다. 우리 궁궐의 정다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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