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용한 배틀그라운드]“실전은 10분, 준비는 1년” 국가대표가 흘리는 ‘피ㆍ땀ㆍ눈물’

중앙일보 2019.10.27 05:00
18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ADEX 2019’ 행사에 참여한 국방부 의장대. 박용한

18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ADEX 2019’ 행사에 참여한 국방부 의장대. 박용한

 
버킹엄 궁전 앞에서 열리는 근위병 교대식은 영국을 상징한다. 위엄과 절도를 갖춘 근위병은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대영제국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근위병은 단순히 군인 한 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국이라는 국가의 전통과 국력을 과시한다.

영국 ‘근위병’, 한국 ‘의장대’
세계 유일 ‘여군 의장대’ 활약
까다로운 조건·평가 통과 필요
국가대표가 흘리는 '피·땀·눈물'

 
대한민국에도 국가를 대표하는 국방부 의장대가 있다. 국빈 환영식을 비롯한 각종 정부 공식 행사와 현충원 안장식, 국경일 행사 등 이들이 맡은 임무는 다양하다. 연간 수행하는 행사 지원 규모는 총 1700회를 넘어선다.  
 
지난 18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방산전시회인 ‘서울 ADEX 2019’에서 동작시범을 보여준 국방부 의장대와 동행하며 ‘막전막후’를 곁에서 살펴봤다.(*중앙일보 홈페이지·유튜브에서 영상 확인할 수 있습니다)
 
런던 버킹검궁앞에서 열린 왕실근위병 교대식이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리고 있다.

런던 버킹검궁앞에서 열린 왕실근위병 교대식이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리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시곗바늘이 정확히 7시 30분을 가리키자 의장대를 태운 버스는 국방부를 출발했다. 모든 군대가 그러하지만, 특히 의장대는 시간 엄수가 생명이다. 동작 하나하나를 맞춰 행동하는 습관처럼 예정된 계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날 행사장은 성남 서울공항이라 꽤 먼 거리였다. 마침 출근 시간대와 겹치기도 했다.
 
행사장이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은 올라갔다. 김예진 중사는 “오늘도 잘할 수 있을까. 처음 했던 행사처럼 항상 떨리고 긴장감을 느낀다”면서 “행사장에 도착할 때, 준비할 때, 관객분들 보면서 행사를 시작하면서 점점 더 고조되는 긴장감과 함께 몰입된다”고 말했다. 
 
여군 의장대 소대장 김다혜 중사는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최면을 건다”며 “‘그동안 잘해왔고, 오늘도 잘하자’ 이렇게 다짐한다”고 말했다. 장석빈 병장은 “구령수에 동작을 맞추는 것에만 집중한다”며 “평소 넓은 연병장에서 연습하기 때문에 관객이 많아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의장대원이 동작시범 중 앞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박용한

의장대원이 동작시범 중 앞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 박용한

 
국방부 의장대 장병은 엄격한 기준을 거쳐 선발된 뒤 혹독한 훈련을 마친 정예 요원이다. 우선 신장 조건부터 까다롭다. 남군은 180㎝ㆍ여군은 165㎝를 넘어서야 선발된다. 태극기 등 깃발을 드는 기수 요원은 186㎝ 이상인 경우 가능하다. 그러나 키만 크다고 선발되지는 않는다. 국군과 국가를 대표하기 때문에 인성도 따진다. 기소유예 이상 처분을 받았던 범죄경력을 가졌거나 재판을 받고 있으면 선발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방부 의장대가 ‘대한민국 1%’로 불리는 이유다.
 
의장대원 ‘300명’에 선발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단 13명뿐인 ‘세계 유일’ 여군 의장대는 경쟁률 ‘20:1’을 뚫어야 가능하다. 그나마도 공석이 생기지 않으면 선발조차 하지 않는다. 국방부 의장대대장 김태진 중령은 “열병식이나 의전 활동을 펼치는 여군은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지만, 총을 돌리고 던지는 동작시범을 보이는 여군 의장대는 국방부 의장대가 유일하다”고 말한다.
 
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北京) 창핑(昌平)구 인민해방군 열병식 연합 훈련소에서 훈련하는 중국 여군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중국 베이징(北京) 창핑(昌平)구 인민해방군 열병식 연합 훈련소에서 훈련하는 중국 여군 [연합뉴스]

 

관련기사

곽경은 하사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군인이 되고 싶었다”며 “전쟁기념관에서 여군 의장대 행사를 본 뒤 지원했다”고 말했다. 육ㆍ해ㆍ공군 및 해병대 의장대는 입대 전 특기병으로 지원한 장병 또는 훈련소에서 선발한다. 여군 의장대는 육군 부사관 훈련소에서 지원자 가운데 뽑는다. 김다혜 중사는 “기본 조건과 함께 체력과 의사 전달력이 뛰어난 경우에 선발된다”고 귀띔해줬다.
  
처음 의장대에 전입오면 3개월 동안 집중적인 교육을 받는다. 여군 의장대 막내 곽경은 하사가 교육을 받고 있다. 여군 의장대는 목총과 깃발을 돌리는 동작시범도 한다. 영상캡처 = 공성룡 기자

처음 의장대에 전입오면 3개월 동안 집중적인 교육을 받는다. 여군 의장대 막내 곽경은 하사가 교육을 받고 있다. 여군 의장대는 목총과 깃발을 돌리는 동작시범도 한다. 영상캡처 = 공성룡 기자

 
행사장에 도착하자 꼼꼼한 준비가 시작됐다. 평소 의장대 행사를 보면 정확하게 움직이는 대형은 신기롭기만 했다. 이날 의장대가 가진 비밀을 발견했다. 장병들이 바닥에 푸른색 테이프를 붙여 표식하는 ‘마킹’ 작업을 했다. 공군 의장대장 송근주 대위는 “처음에 대기하는 장소와 앞으로 나와 분열하며 시작하는 장소가 달라 그 위치를 정해 표시해 둔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의장 행사에 앞서 자기 위치에 표식을 하고 있다. 박용한

본격적인 의장 행사에 앞서 자기 위치에 표식을 하고 있다. 박용한

 
위치를 정한 뒤 마지막 연습을 끝으로 모든 행사 준비를 마쳤다. 연습이지만 실전과 다름이 없었다. 연습이 끝난 뒤 김희영 하사는 “동작도 잘 맞고 노래도 잘 맞고 괜찮았던 것 같다”며 웃음을 보였다. 행사를 책임진 김태진 중령은 “지금까지 준비한 것 이상으로 보여줬다”며 “잠시 뒤 본행사에서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의장대는 최종 연습이 끝난 뒤에도 총기를 점검하거나 틈틈이 연습을 이어갔다.
 
국방부 의장대는 육ㆍ해ㆍ공군ㆍ해병대ㆍ여군으로 구성돼 복장에서 각 군의 특색을 발견할 수 있다. 영상캡처 = 공성룡 기자

국방부 의장대는 육ㆍ해ㆍ공군ㆍ해병대ㆍ여군으로 구성돼 복장에서 각 군의 특색을 발견할 수 있다. 영상캡처 = 공성룡 기자

 
국방부 의장대는 3군을 통합해 꾸렸기 때문에 다양한 복장에서 각 군의 특성도 확인할 수 있다. 정연욱 상병은 “육군의 강인함과 용맹함을 상징하는 호랑이 자수가 양팔 소매 부분에 새겨졌다”며 소개했다. 박범수 병장도 팔을 들어 보이면서 “공군은 대한민국 영공 수호의 날개를 상징한다” 며 은색 자수를 보여줬다.  
 
이현재 병장은 “해병대는 정열의 빨간 명찰과 해병대 고유의 세무 워커를 갖추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곁에선 임은석 병장은 “해군은 수병을 형상화한 복장인데 구두 위로 흰색 가죽 각반도 씌워져 있다”며 전통적인 복장을 보여줬다. 이수연 중사는 “여군 의장대 복장은 군기를 상징하면서도 의장 행사를 위한 동작 편의성도 반영했다”고 소개했다.
 
3군 지휘관 송근주 대위를 선두로 공군기ㆍ육군기ㆍ국방부기ㆍ태극기ㆍ합동참모본부기ㆍ해군기ㆍ해병기(왼쪽부터)를 든 기수단이 행진하고 있다. 박용한

3군 지휘관 송근주 대위를 선두로 공군기ㆍ육군기ㆍ국방부기ㆍ태극기ㆍ합동참모본부기ㆍ해군기ㆍ해병기(왼쪽부터)를 든 기수단이 행진하고 있다. 박용한

 
드디어 실전이다. 오전 10시부터 화려한 의장행사가 펼쳐졌다. 힘찬 구령과 동작으로 의장대원이 입장했다. 촘촘하고 치밀하게 짜인 동작에 의장대원 70명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태극기’ㆍ‘한반도’ㆍ‘무궁화’ 형상으로 대형을 자유자재로 바꾸었다. 그런 뒤 ‘파도치기’ 동작과 총을 빠르게 돌리는 ‘돌려총’, 총을 하늘 위로 던지는 ‘총뿌리기’ 동작을 역동적으로 이어나갔다. 마지막에는 ‘승리의 문’ 대형을 선보이며 약 12분에 걸친 행사를 마쳤다.
 
행사장에 도열한 의장대원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빠르게 앉았다 일어서며 '파도타기' 동작을 보이고 있다. 박용한

행사장에 도열한 의장대원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빠르게 앉았다 일어서며 '파도타기' 동작을 보이고 있다. 박용한

 
이를 지켜본 관중들은 큰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행사를 마친 의장대원들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끝낸 완벽한 동작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행사장을 빠져나오면서 미소를 보여줬던 김다혜 중사는 “제가 웃었는지 몰랐는데 오늘 행사 잘 된 것 같고 기분이 좋아서 저절로 웃음이 난 것 같다”며 소감을 전했다. 이날 3군 지휘자를 맡았던 송근주 대위는 “국민 앞에서 행사하면 군의 위상을 높이기 때문에 저희도 스스로 뿌듯해진다”며 “행사가 무사히 끝날 때 기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의장대원이 강한 군기를 담은 절도있는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박용한

의장대원이 강한 군기를 담은 절도있는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박용한

 
이런 완벽한 행사는 ‘피, 땀, 눈물’ 을 흘린 훈련을 반복하며 다져진 결과다. 처음 의장대에 전입해 오면 3개월간 집중적인 교육을 받고 평가과정을 거친다. 김희영 하사는 “만족할 수준으로 총기를 다루려면 1년 정도 숙련이 필요하다”며 “70명으로 꾸려진 전체 대형에 들어가 다양한 행진과 대형에 맞춰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서정 중사(진)는 “일주일에 5일, 매일 8시간씩 훈련한다”며 “총을 던지고 받는 동작이 많아 손가락을 다치기도 한다”며 상처가 아문 손을 들어 보여줬다.
 
의장대원은 하루 8시간 ‘피, 땀, 눈물’ 흘리며 훈련을 반복한다. 영상캡처 = 강대석 기자

의장대원은 하루 8시간 ‘피, 땀, 눈물’ 흘리며 훈련을 반복한다. 영상캡처 = 강대석 기자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의장대원은 먼저 총기 점검과 수리부터 했다. 의장대원은 연습과 행사용 M16A1 소총 두 정과 함께 작전에 투입될 때 사용하는 K2C1 신형소총을 받는다. 총을 들고만 있는 의전 행사에는 K2C1 소총을 가져가지만, 총을 던지고 돌리는 동작 시범에선 M16A1 소총을 사용한다. 신형 소총은 수직 손잡이가 달려있어 동작행사에 쓰기엔 불편하고 폼도 덜 난다. 
 
의장대는 부대기와 태극기 및 외국기 등 약 600개 깃발을 관리한다. 영상캡처 = 공성룡 기자

의장대는 부대기와 태극기 및 외국기 등 약 600개 깃발을 관리한다. 영상캡처 = 공성룡 기자

 
의장대가 보유한 깃발은 여러 나라 국기와 각종 부대기를 더해 모두 600개가 넘는다. 의장대는 연중 200회 넘게 행사에서 깃발을 들거나 회의장에 설치한다. 국기만 약 350개, 태극기는 30개나 갖고 있다. 행사 전후로 구김이 없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선재 상병은 “깃발 색이 변할 수 있어 물을 뿌리지 않고 다림질하기 때문에 어렵다”면서도 능숙한 실력을 보여줬다. 
 
의장대원이 바지 주름을 펴는 다림질을 하고 있다. 영상캡처 = 강대석 기자

의장대원이 바지 주름을 펴는 다림질을 하고 있다. 영상캡처 = 강대석 기자

 
깃발뿐 아니라 복장 관리를 꼼꼼하게 해둬야 매일 같이 반복되는 행사에 바로 투입될 수 있다. 장석빈 병장은 “그나마 검은색 동복은 관리가 편하다”며 “해군이 여름에 착용하는 복장은 모두 흰색이라 관리가 더 까다롭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군복 ‘칼주름’을 유지하는 비법은 다양했다. 바지 밑단을 머리 위에 올려두고 다림질하는 장병도 발견했다.
 

관련기사

25일 오후 전쟁기념관 평화광장에서 열린 국군, 군악 의장행사에서 여군 의장대가 시범을 보이고 있다. [뉴스1]

25일 오후 전쟁기념관 평화광장에서 열린 국군, 군악 의장행사에서 여군 의장대가 시범을 보이고 있다. [뉴스1]

 
훈련은 힘들고 긴장감을 갖고 행사에 나서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김다혜 중사는 “보육시설을 찾아 시범을 보였던 행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따뜻한 마음을 전하러 갔지만, 오히려 위로를 받고 돌아왔다”며 미소를 보였다. 의장대 행사는 특별한 날에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정례 의장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행사 기간(4~6월, 10~11월)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2시에 전쟁기념관, 매주 토요일 오후 1시엔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멋진 의장대와 함께 할 수 있다.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영상 = 강대석·공성룡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다른기사 보기 >https://news.joins.com/Issue/11202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