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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이혼과 후궁 축출···태국 국왕 '기이한 사생활'

중앙일보 2019.10.27 05:00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 [로이터=연합뉴스]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태국 왕실 소식으로 인터넷이 시끌시끌했습니다.  

세 번 이혼 네 번 결혼에 후궁 축출까지
복잡한 사생활, 기이한 행동으로 구설수
왕실 인기 떨어졌어도 여전히 권력 막강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이 배우자(consort) 시니낫 웡와치라파크디의 모든 지위를 박탈했단 뉴스였죠. 시니낫이 조신하지 못하고 국왕에게 충실하지도 않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태국 왕실은 성명을 내고 "은혜를 모르고 지위에 맞지 않게 행동했다"며 주장했습니다. 후궁 격인 시니낫이 왕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무성합니다. 
 
'조선 시대 장희빈이야 뭐야. 그리고 21세기에 웬 후궁?'  
 
조선 시대의 칠거지악을 연상케 하는 지금의 태국 왕실. 궁금해집니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선 와치랄롱꼰 국왕은 대체 어떤 인물일까요.
 

44년의 기다림 끝에 국왕 즉위했지만

지난 5월 거행된 태국 국왕 즉위식 [AFP=연합뉴스]

지난 5월 거행된 태국 국왕 즉위식 [AFP=연합뉴스]

 
올해 67세인 와치랄롱꼰(라마10세)은 스무살에 왕세자로 책봉됐습니다. 20대 시절 공군·육군 장교 등으로 복무하며 국내외 여러 군사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죠. 태국 불교도의 전통에 따라 1년 간 승려로 지내기도 했고요.
 
만년 왕세자던 그는,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아버지 푸미폰 전 국왕(라마 9세)이 2016년 10월 서거하자 그해 12월 새 국왕에 즉위합니다. 왕세자로 책봉된 지 무려 44년 만이었죠. 부왕의 추모 기간이 끝나자 그는 지난 5월 초호화 대관식을 열어 전 세계에 자신의 즉위 사실을 알렸습니다. 3일 동안 365억원을 들인 호화로운 행사였죠. 다른 입헌군주국들 역시 즉위식에는 공을 들입니다만, 와치랄롱꼰은 왕세자 시절부터 사치스러운 생활로 유명했기에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치 만큼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이 있었으니….

 
태국 국왕과 그의 후궁 시니낫 [EPA=연합뉴스]

태국 국왕과 그의 후궁 시니낫 [EPA=연합뉴스]

 
네, 그의 사생활이었죠.

 

세 번의 이혼, 네 번째 결혼 그리고 후궁 축출

와치랄롱꼰 국왕이 처음 결혼한 것은 1977년이었습니다. 왕세자 시절이었죠. 외사촌 동생 솜사와리 키티야카라 공주를 왕세자비로 맞고 딸도 낳았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몇 년 후 여배우 수짜리니 위와차라웡과 사랑에 빠졌거든요. 그는 이혼을 요구하지만 세자비가 거절합니다. 그러자 1993년 가정법원에 이혼을 신청하기에 이르죠. 결국 둘은 파경을 맞고, 수짜리니와 사이에서 다섯 아이를 둔 그는 1994년 2월 두 번째 결혼식을 열게 됩니다.  
 
그러나 수짜리니 역시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못했습니다. 식을 올리고 2년 후 두번째 왕세자비는 아이들을 데리고 돌연 영국으로 떠났고, 와치랄롱꼰은 그녀와 이혼합니다. 수짜리니가 장군과 간통을 저질렀단 이유로 말이죠. 진실 여부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01년. 어느덧 쉰을 바라보게 된 그는 평민 출신 비서였던 스리라스미 스와디와 결혼합니다. 19세 연하였죠. 평범한 여인이었기 때문일까요. 결혼식은 비밀리에 치러졌습니다. 스리라스미가 정식 왕세자비로 책봉된 건 2005년, 아들을 낳고 나서였습니다.  

 
스리라스미 전 태국 왕세자비. 그러나 모든 지위를 빼앗기고 이혼당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스리라스미 전 태국 왕세자비. 그러나 모든 지위를 빼앗기고 이혼당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잘 사나 했는데 2014년, 와치랄롱꼰은 스리라스미 왕세자비의 모든 지위를 박탈하고 이혼합니다. 왕세자비의 여러 친인척이 대규모 비리 사건에 연루돼 있단 게 드러났거든요. 스리라스미는 왕족인 첫째 부인, 배우 출신인 두 번째 부인과 달리 평범한 여인이었기에 궁에서 쫓겨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6년 드디어 권좌에 오른 와치랄롱꼰 국왕은 올해 5월, 즉위식을 며칠 앞두고 네 번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번엔 26세 연하의 승무원 출신 근위대장 수티다였죠.  
 
수티다 왕비의 근위대장 시절 모습. 1978년 생인 수티다 왕비는 타이항공 승무원 출신으로 2017년에는 비왕족 여성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작위 ‘탄푸잉’을 받았다. [EPA=연합뉴스]

수티다 왕비의 근위대장 시절 모습. 1978년 생인 수티다 왕비는 타이항공 승무원 출신으로 2017년에는 비왕족 여성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작위 ‘탄푸잉’을 받았다. [EPA=연합뉴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국왕이 수티다와 네 번째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두 달 뒤, 33세 연하 후궁 시니낫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알렸단 사실입니다. '배우자'란 명칭을 붙여서였죠. 후궁을 둔 태국 국왕은 약 100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희한한 명칭"(NYT)이란 평가가 잇따랐고, 와치랄롱꼰의 사생활은 또 한 번 세간에 오르내렸죠. 그의 아버지인 라마 9세가 평생 한 여인(시리낏 왕비)과 함께한 러브스토리가 워낙 유명했기에 더욱 비교당한 면도 있습니다.  
 
육군 출신인 시니낫. 왕비와의 권력 암투 끝에 모든 지위를 박탈당한 것으로 보인다. [AP=연합뉴스]

육군 출신인 시니낫. 왕비와의 권력 암투 끝에 모든 지위를 박탈당한 것으로 보인다. [AP=연합뉴스]

 

기이한 행동도 구설에 올라

수티다 왕비가 결혼식에서 행해진 의식에서 국왕 앞에 엎드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수티다 왕비가 결혼식에서 행해진 의식에서 국왕 앞에 엎드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기중심적인 성격, 기이한 행동으로 소문도 많이 돌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건 2007년 있었던 일명 '왕세자비 애완견 케이크 사건'입니다. 셋째 부인이었던 스리라스미가 반라로 국왕의 애완견 생일파티에서 엎드려 케이크를 먹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된 겁니다. 위키리크스의 폭로였죠.

 
자신의 상반신 문신이 훤히 드러나는 차림을 하고 젊은 여성과 돌아다니는 모습이 독일 쇼핑몰에서 포착돼 SNS에 사진과 영상이 돌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사진의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없던 인기가 더 떨어졌습니다. 푸미폰 전 국왕이 흔들리는 아들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 소용이 없었죠.
 

인기 떨어졌지만, 왕실 힘은 여전히 막강

현재 태국 짜끄리 왕조는 1782년 시작됐습니다. 역사도 꽤 깊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왕실 중 한 곳으로 꼽히죠. 왕실 재산은 어림잡아 약 33조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2016년 10월 푸미폰 전 국왕 서거 당시 조문 행렬 [AP=연합뉴스]

지난 2016년 10월 푸미폰 전 국왕 서거 당시 조문 행렬 [AP=연합뉴스]

 
무엇보다 태국 왕실은 국민에게 진심어린 존경과 사랑을 받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태국은, 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가 유럽 식민지로 전락했던 20세기에 식민 통치를 피한 거의 유일한 나라인데요. 많은 태국인은 당시 국왕이던 라마 5세의 현명한 처신 덕분에 그게 가능했다고 믿거든요.

 
그래서일까요. 1932년 입헌군주국이 된 이후 상징적인 국가원수라곤 하지만, 태국 왕실의 권위는 대단합니다. 법으로 '국왕·왕비·왕세자를 비방하거나 위협한 자는 3년형에서 최고 15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고 정해뒀을 정도죠.  
 
물론 이 강력한 법규는 비판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거죠. 때때로 외교적인 논란도 낳습니다.  
지난 2011년에는 푸미폰 전 국왕의 생애를 다룬 책을 태국어로 번역해 인터넷에 올린 태국계 미국인 남성이 태국에 입국하자마자 체포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책이 금서였거든요. 그는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등 국제기구에서는 이 판결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지만, 태국 왕실의 입장은 완고했습니다.  
 
큰 존경을 받았던 태국 푸미폰 전 국왕 [중앙포토]

큰 존경을 받았던 태국 푸미폰 전 국왕 [중앙포토]

 
그래도 푸미폰 전 국왕은 '살아있는 부처'라 불릴 정도로 국내외에서 존경을 받았기에 괜찮았는데, 와치랄롱꼰 즉위 이후 왕실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 사이에서 불만이 크다는 거죠.
 
그럼에도 와치랄롱꼰 국왕의 힘은 당분간 꺾이지 않으리란 게 주요 외신의 진단입니다. 가디언은 "국왕의 힘은 여전할 것"이라며 "그는 태국에서 가장 강한 군대를 휘하에 거느리고 있으며, 현대 군주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힘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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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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