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코노미스트] 3600여 투자자, 원금 절반이라도 건질까

중앙일보 2019.10.27 00:03
시장에선 배상비율 50~70% 예상… 과거 유사 사례의 배상비율은 50%
 

분쟁조정위원회로 넘어가는 파생결합펀드(DLF)

10월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검에서 우리은행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피해자들과 금융정의연대 관계자 등이 손태승 우리은행장을 사기죄로 고소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0월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검에서 우리은행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피해자들과 금융정의연대 관계자 등이 손태승 우리은행장을 사기죄로 고소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3600여 명의 개인투자자가 사들인 파생상품만 7300억원. 이 돈이 전부 날아갈 판이다. 은행권에서 판매한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얘기다. 금융감독원은 10월 1일 DLF 관련 중간 검사 결과 DLF 설계·제조·판매 전 과정에서 은행권이 투자자 보호보다는 자사의 이익을 중시해 리스크 관리 소홀, 내부통제 미흡, 불완전판매 등 문제점이 다수 나타났다고 밝혔다. 은행권은 자체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DLF 상품의 제작부터 판매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만기·수익률 등의 조건을 은행이 정한 뒤 증권사에 파생결합증권(DLS) 발행을 요청하면 증권사가 해당 상품을 주문·생산했다는 것이다. DLF를 통해 은행권은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약정수익률 2.02%(6개월 기준)보다 높은 4.93%가량을 수수료로 챙겼다.
 
하지만 투자자는 원금을 모두 날릴 판이다. DLF 피해 관련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시청한 조정 신청 건수도 증권사 3건, 은행권 190건 등 모두 193건(9월 말 기준)에 이른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11월께 DLF 피해 조정 신청을 분조위에 상정할 예정이다. 분조위에서 배상비율이 결정되면 투자자는 비율만큼 은행권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배상비율이 30%로 결정되고 투자자와 은행이 이를 수용했다고 하자. 그러면 1억원을 모두 날린 투자자는 3000만원가량을 보상 받을 수 있다. 과거 주요 사례의 배상비율은 20~50% 선이었다. 하지만 DLF는 역대 최고 수준의 배상비율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배상비율 마지노선(70%)에 근접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분쟁조정 신청 건수 190건 넘어

분쟁조정위는 안건이 회부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이를 심의해 조정결정을 하며 구성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조정위는 내부위원(2명), 소비자단체(4명), 법조계(9명), 학계(10명), 금융계(2명), 의료계(1명), 전자금융(1명) 등 2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분쟁조정 업무의 전문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해 법률 및 의료자문역인 104명의 전문위원도 참여한다. 조정 절차는 일반적으로 분쟁 접수에 대한 사실 조사와 검토(분쟁조정전문위원 자문)를 거쳐 위원회 회부, 심의·의결, 조정결정통보 순으로 진행한다. 금감원은 통상 해당 분쟁조정 사례가 불완전판매인지 여부를 확인한 후 적합성과 설명의무 위반, 부당권유 등을 판단해 배상비율을 정한다. 판매 금융사의 리스크 관리 소홀이나 내부통제 미흡 등은 배상 비율 가감요인이 될 수 있다.
 
위험상품에 대한 투자 경험과 투자자의 나이도 감안 요인이다. 다만 분조위는 투자에 대한 자기책임원칙도 감안하기 때문에 이론적인 배상비율 마지노선은 최대 70% 선이다. DLF의 분쟁조정 역시 핵심은 불완전판매 여부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은행권 등이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적정성·적합성·설명 의무 등 세 가지 의무를 준수하지 않으면 불완전판매로 본다. 금감원의 중간 검사 결과 불완전판매가 일부 확인된 만큼 관심은 이제 배상비율이 얼마나 될지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배상비율이 높으려면 자본시장법이 아닌 은행 내규를 기준으로 불완전판매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자사의 내규를 얼마나 잘 지켰는지 여부가 이번 DLF 사태의 분쟁비율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불완전판매 대표 사례로 꼽히는 우리파워인컴펀드,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태보다 배상비율이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2008년 발생한 우리파워인컴펀드 사태가 DLF와 비슷해 배상비율이 50%까지 올라갈지 관심이 쏠린다. 당시 은행권은 우리파워인컴펀드는 분기별로 5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에 1.2%의 가산금리를 더해 확정금리를 지급하는 안전한 상품으로 홍보했다. 분조위는 우리은행에 손실액의 50%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은행 직원이 단순히 상품을 설명 고지했느냐보다는 은행이 상품 설계·판매에 책임이 있느냐까지 봐야 한다”며 “무자격자 판매 행위 등 은행이 전사적 판매로 푸시가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분쟁조정 신청을 한다고 해도 개별 접수 건에 따라 배상비율은 달라질 수 있다. 피해자가 불완전판매 근거를 많이 갖출수록 배상비율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고령자는 배상비율이 더 올라갈 수 있다. 은행은 일단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조정 절차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지성규 하나은행장은 10월 1일 사과문을 내고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책임 있는 자세로 분쟁조정절차 등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완전판매 문제 등에는 적극 방어할 전망이다. 배상비율이 만약 50%로 정해지면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각각 1004억원, 1087억원을 배상해야 한다.
 
투자자들은 분쟁조정 신청은 물론 법적 대응에도 나서며 은행권에 손실 보상을 압박하고 있다. 우리은행장의 형사고소 조기 처리와 함께 9월 25일 법무법인 로고스와 손잡고 법원에 DLF 첫 소송을 제기했다. 첫 소송 제기자는 개인 투자자 2명과 법인 1곳으로, 이들은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 금리 연계 DLF와 KEB하나은행이 판매한 영국·미국 이자율스와프(CMS) 금리 연계 DLF에 투자했다. 이들은 두 은행이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고객을 기망했기에 애초 상품 가입 취소 사유가 성립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분조 위에 조정 신청을 하면 소멸시효가 정지되고 변호사 비용 없이 결과도 빠르지만 민사소송은 피해자들이 자료를 갖춰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크다”며 “소송은 은행권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감원, 은행이 조정 거부하면 소송 지원

한편 윤석헌 금감원장은 DLF 관련 분쟁조정안을 은행이 거부하면 피해자에 대한 소송 지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윤 원장은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은행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 원장은 10월 8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DLF 피해자들은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는 게 좋다”며 “금감원이 해답을 잘 마련해서 제시하겠지만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그때가서 소송으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은행이 분쟁조정 결과에 불복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공익목적이 있으면 소송지원이 가능하다”며 “DLF 피해자에 대해서도 소송지원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