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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를 줄'개', 노란 스카프의 천사 '헌혈견' 곰순이 가족

중앙일보 2019.10.26 11:00
'헌혈견'을 아시나요?
 

[눕터뷰]

개도 사람처럼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에 수혈이 필요하다. 반려견 커뮤니티 등에서는 긴급 수혈이 필요해 도움을 요청하는 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수혈이 필요한 개에게 피를 나눠주는 개를 '공혈견'이라 부른다. 현재 개 수혈의 90%를 공혈견이 맡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공혈견의 존재가 감사함은 사실이지만, 평생 '피를 뽑는 용도'로만 살아야하는 공혈견에 대해 희생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최근에는 대형견을 중심으로 ‘헌혈견’ 문화가 퍼지고 있다.
 
 
이현희씨가 곰웅이(왼쪽), 곰순이와 함께 앞마당에 누웠다. 이씨는 반려견 헌혈에 대해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을 동시에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이현희씨가 곰웅이(왼쪽), 곰순이와 함께 앞마당에 누웠다. 이씨는 반려견 헌혈에 대해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을 동시에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경기도 양평에 거주하는 이현희(46) 씨는 헌혈견 가족의 보호자다. 버니즈 마운틴독 ‘곰순(엄마·8살), 곰웅·곰돌(아들·5살)’이가 그 주인공이다. 모자지간인 이들은 지금까지 총 5회의 헌혈을 했다. 한 번의 헌혈로 소형견 3~4마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최대 15마리 이상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
 
모자지간인 곰순이네는 총 5번의 헌혈을 했다. 왼쪽부터 곰웅이, 곰순이, 곰돌이. 장진영 기자

모자지간인 곰순이네는 총 5번의 헌혈을 했다. 왼쪽부터 곰웅이, 곰순이, 곰돌이. 장진영 기자

 
“솔직히 처음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방송에서 본 공혈견들의 열악한 현실을 떠올리며 그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헌혈하고 온 날은 평소보다 더 안아주고 특식도 제공한다. “피를 뽑고 난 공혈견들을 수고했다고 쓰다듬어 주기나 할까요? 그 친구들 생각하면 우리 애들이 1년에 한 번 정도 고생하는 건 괜찮습니다” 이들이 목에 매고 있는 노란 스카프는 다른 친구들을 위해 헌혈한 개들에 주어지는 훈장 같은 것이다. 스카프에는 '한국헌혈견협회'라고 적혀있었다.
 
헌혈중인 곰순이. [사진 이현희]

헌혈중인 곰순이. [사진 이현희]

 
헌혈견 가족이 되는 데는 원만하고 유순한 버니즈 마운틴독의 성격도 도움이 됐다. “건강검진을 위한 피검사에도 놀라지 않는 애들이에요. 곰순이는 헌혈할 때 잠들기까지 했고요”. 병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헌혈 과정에는 보호자가 함께한다. 의료진도 같이 바닥에 앉아 진행하며 반려견의 심적 안정을 돕는다. 헌혈을 마친 뒤에는 충분한 휴식과 수액이 제공된다.  
 
헌혈을 마친 곰웅이. 헌혈견에게는 고맙다는 뜻으로 노란색 스카프를 목에 걸어준다. [사진 이현희]

헌혈을 마친 곰웅이. 헌혈견에게는 고맙다는 뜻으로 노란색 스카프를 목에 걸어준다. [사진 이현희]

 
이 씨의 반려견들이 헌혈견이 된 것은 지난 2015년 세상을 떠난 뽀빠이(래브라도 리트리버)의 영향이 컸다. “검진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긴급 수혈을 하게 되었어요. 뽀빠이가 위독한 상태의 말티즈에게 피를 나눠주었죠. 살려줘서 고맙다는 보호자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참 후에 병원을 다시 찾았는데 그 친구가 또 응급한 상태로 실려 왔다. 이번엔 곰웅이가 나서서 긴급 수혈을 했다. “우리 애들이 한 생명을 두 번이나 살린 거죠”    
 
 
헌혈과 건강검진을 동시에 진행하기 위해 동물병원을 찾은 곰웅이(왼쪽)와 곰순이. [사진 이현희]

헌혈과 건강검진을 동시에 진행하기 위해 동물병원을 찾은 곰웅이(왼쪽)와 곰순이. [사진 이현희]

건강한 개만 헌혈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있다. 헌혈에 대비해 평소 건강관리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헌혈하기 위해서는 2~8살 사이, 심장사상충과 구충 등 정기적으로 예방접종을 해야 하고 25kg 이상의 몸무게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정기적인 헌혈은 적혈구 생산을 자극해 더 많은 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헌혈 전 피검사를 통해 건강검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일반 검진 때보다 자세하게 결과를 알 수 있어서 좋아요. 헌혈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니 비용도 들지 않고요”  
헌혈후에 받은 검사 결과지. [사진 이현희]

헌혈후에 받은 검사 결과지. [사진 이현희]

 
이 씨는 얼마 전 헌혈을 진행한 곰순이의 검진 결과지를 받고 가슴 쓸어내린 이야기를 했다. “헌혈 후 검사결과를 통해 바베시아증 양성이 의심된다고 했어요” 진드기로 전염되는 바베시아증은 혈액을 파괴해 패혈증 등의 증상을 일으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헌혈을 진행한 병원은 정확한 진단을 위해 미국에 있는 기관에까지 혈액 정밀검사를 의뢰했다. 다행히 3차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헌혈한 날에는 특식이 주어진다. [사진 이현희]

헌혈한 날에는 특식이 주어진다. [사진 이현희]

 
개들에게 묻지 않고 주인 맘대로 진행하는 게 아니냐는 말에 이 씨는 이렇게 답했다. “미안함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병원 진료도, 치료도 묻지 않고 다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내 아이들을 위하면서 다른 아이들도 위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묻는 분들에게 공혈견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냐고 되묻고 싶어요. 공혈견을 없애지 못한다면 조금이라도 쉬게 해줘야 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반려견이 소중한 만큼 공혈견과 다른 이들의 반려견도 소중하다는 이 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은 지난 2017년부터 헌혈견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강부성 한국헌혈견협회 대표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헌혈견의 필요성과 헌혈견이 되기 위한 절차에 대해 알아봤다.
 
강부성 대표(오른쪽)가 긴급수혈을 받은 경험이 있는 요크셔테리어 '체리'와 그의 보호자와 함께했다. 체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빈혈로 수혈을 받았으나 수혈부작용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다행히 재수혈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사진 강부성]

강부성 대표(오른쪽)가 긴급수혈을 받은 경험이 있는 요크셔테리어 '체리'와 그의 보호자와 함께했다. 체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빈혈로 수혈을 받았으나 수혈부작용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다행히 재수혈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사진 강부성]

 
헌혈견이 필요한 이유는? 
수년 전 공혈견에 대한 열악한 실태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동물 보호 문제가 대두했다. 이에 협회는 그 어떤 생명도 다른 생명을 위해 혈액만 공급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고 반려견 헌혈 캠페인을 시작했다. 공혈견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헌혈견은 꼭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헌혈견에 대한 인식은? 
헌혈하는 대형견 보호자뿐만 아니라 수혈을 받는 다른 개들의 보호자에게도 공혈견이 아닌 헌혈견에 대해 알리는 캠페인에 힘쓰고 있다. 수의사 선생님들도 실제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자란 헌혈견의 혈액이 공혈견의 혈액보다 치료에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헌혈견협회의 역할은? 
지난 2017년 7월부터 대형견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헌혈 캠페인을 시작했다. 200여 명의 정회원과 80여 마리의 헌혈견이 등록되어 있다. ‘1년에 한 번 헌혈하자’를 구호로 내세우고 헌혈견에게 부담 가지 않는 선에서 진행하고 있다. 대형견 3600여 마리가 1년에 한 번만이라도 헌혈할 수 있다면 공혈견이 더는 활동하지 않아도 될 거라 예상한다. 연계병원을 늘려가고 전국적 네트워크를 조직해 지역 내에서 헌혈과 수혈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반려견이 헌혈하면 좋은 점? 
헌혈 전에 연계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아 사전에 병의 예방이 가능하다. 정기적인 헌혈은 새로운 혈액의 생성을 돕기도 한다.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반려견이 건강하다는 것이다. 또 헌혈견에게는 약품, 사료, 영양제 등의 후원 물품을 준다. 
 
반려견 헌혈 절차는? 
연계병원과 정해진 날짜에 정기헌혈 및 긴급헌혈을 진행하고 있다. 헌혈견·수혈견·협회·동물병원 사이에 어떠한 금전적 보상은 제공되지 않는다. 서울 건국대학교 부속동물병원, 경기 성남 분당 해마루동물병원과 의정부 서정동물메디컬센터와 정식으로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신청을 받아 평소 건강상태와 약물 복용 여부를 고려해 선별한다. 사전 피검사를 통해 헌혈 가능 여부를 판단하고 반려견이 진정 되지 않으면 헌혈을 진행하지 않는다. 보통 다리의 혈관에서 몸무게의 1% 정도를 채혈한다. 3개월 후면 다시 헌혈이 가능하지만, 협회에서는 1년 간격을 권한다. 헌혈 가능한 동물병원이 수도권에만 국한되어 있어 현재 현대자동차와 이동식 헌혈카인 ‘도그너헌혈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12월까지 전국 13개 지역에서 이동 헌혈이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글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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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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