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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끝자락에 서당·영화관·공연장까지 갖춘 신기한 동네서점

중앙일보 2019.10.26 08:00
탁무권 더숲아트시네마 대표가 15일 노원구 더숲아트시네마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탁무권 더숲아트시네마 대표가 15일 노원구 더숲아트시네마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우리 동네에 희한한 데가 있어.”

‘더 숲’을 알게 된 건 노원구 주민의 제보였다. 서울 시내에선 시간표를 찾기 힘든 작은 영화들이 하루에도 10편 가까이 상영하는 예술영화관이 노원역 인근에 생겼다고 했다. 40석짜리 쪼그마한 상영관 두 개가 전부지만, 감독‧배우도 종종 찾아오고, 영화 해설 프로그램도 알차 자신 같은 단골도 더러 있다는 것이었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영화관들도 경영난에 허덕이는 마당에, 어떤 용감한 이가 동네에 그런 곳을 열었을까.  
 

노원역 옆 비밀공간 같은 문화 아지트
'더 숲' 운영 탁무권 노원문고 대표

북카페·서당·미술관·예술영화관 알차
25년 전 상계동에 문연 서점이 시작
문화토양 척박한 시절부터 지역에 환원
"더 나은 대안사회, 철학 전파 꿈꾸죠"

호기심에 찾아보니 그냥 영화관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이다. 평소엔 빵 냄새 향긋한 북 카페 겸 서점이자,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무료 미술관. 피아노가 놓인 작은 무대에선 인디밴드 콘서트며 낭독회, 인문학 강좌가 열렸다. 매주 토요일엔 동네 아이들이 『논어』 『명심보감』을 배우는 서당으로 변신했다.  
서점과 카페가 어우러진 더숲 라운지. 오른편 안쪽으로 영화관 입구가 보인다. [사진 더숲]

서점과 카페가 어우러진 더숲 라운지. 오른편 안쪽으로 영화관 입구가 보인다. [사진 더숲]

홈페이지엔 이런 공고도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창작 공간을 2개월 이내 무상으로 사용하며 왕복 항공료, 생활비까지 지원받을 소설가를 모집한다는 것이다. 세상에나!
 
‘더 숲’의 노원문고 탁무권(62) 대표를 15일 만났다. 1994년 상계동 서점 한 곳으로 시작해 노원역 옆 ‘더 숲’까지 그가 운영하는 서점이 이제 신촌‧연신내 등 여덟 곳에 달한다. ‘더 숲’은 3년 전 문을 열었다. 서점 주인부터 서당 교장 선생님, 교육복지재단 이사장…. 불리는 이름은 많지만 명함은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그는 소탈하게 첫인사를 건넸다.  
 
“무술 무(武)에 권세 권(權)을 써요. 이름이 너무 세죠.”
“무림고수 이름 같은데요.”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말 무림고수가 따로 없었다.  
 

부천주민이 상계동에 서점 연 까닭 

이런 데에 예술영화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저도 못했어요”(웃음)
 
노원에서 25년째 서점을 하시는데, 토박이신가요?  
“아니요, 연고도 없어요.”
 
어떻게 노원구에 오게 되셨어요.
“저는 부천에 살았어요. 94년에 서점을 해보려고 알아보는데 누가 상계동을 한 번 가봐라, 상계동에 서점이 부족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상계동에 온 첫날 부동산 임대매물이 눈에 띄어요. 시장조사 개념 없이 느낌이 와서 계약했죠. 지금은 지하철 7호선이 다니지만, 그때만 해도 공사를 막 하고 있고 좀 외졌어요. 한 2년 지나니 주위에서 ‘망할 줄 알았는데 자리 잡네’ 그러더군요.”
 
기억을 돌이키면 80년대 말, 90년대 초만 해도 상계동은 재개발이 한창인 달동네였다.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88년 외국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서울 곳곳 ‘가난’의 이미지를 지우는 작업에 상계동도 포함됐다. 살던 집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상계동 철거촌 주민들이 서울에서 떠밀려 간신히 자리 잡은 곳이 부천이었다. 이런 과정은 김동원 감독의 27분여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1988)에도 담겼다.  
다큐 ‘상계동 올림픽’(상영시간 27분) 한 장면.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노원을 담은 영화 특별상영 일환으로 25일, ‘내친구 정일우’(84분)과 함께 상영됐다.[사진 푸른영상]

다큐 ‘상계동 올림픽’(상영시간 27분) 한 장면.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노원을 담은 영화 특별상영 일환으로 25일, ‘내친구 정일우’(84분)과 함께 상영됐다.[사진 푸른영상]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지만, 지역에 필요한 것을 하겠다는 것은 탁 대표가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지론이다. 이를 “부모님의 밥상머리 교육 덕분”이라 했다.  
“저희 집이 2남 2녀인데 부모님이 46년도에 좀 일찍 월남하셨어요. 월남하신 분들이 보통 보수‧극우적인 데 반해, 부친은 사회에 대한 관심, 비판적 시각을 늘 얘기하셨죠.”
 
성균관대 사학과를 다니던 시절엔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조금 더 깊게 설명하면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민주화운동청년연합’ 같은 단체에서도 활동했죠. 조금 살다 나와서는 두레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다가 뭐, 영어‧일어 번역도 조금 하고요.”
 

돈 벌면 꼭 기부하자 다짐했죠 

왜 하필 서점을 열려고 했나요. 
“처음엔 학교도 중간에 잘리고 사회경험도 없고 책은 조금 아니까 시작했죠. 그때 서점 문화가 선지불이 아니고 책을 판 뒤에 판 만큼 출판사에 돈을 줬어요. 사업상 장점이 있었죠. 또 하나는 그때 교보‧영풍 같은 대형 서점이 있고 동네 소형 서점이 있는데 중간 크기가 아주 부족했어요. 독자 입장에선 수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민주화 운동하는 동료들한텐 저 혼자 사업한다는 게 미안하더라고요. 그나마 서점이니까 덜 미안했지. 그래서 돈 벌면 꼭 어딘가에 기부하자, 나 스스로 약속했죠. 사회활동을 서점 사업한 것만큼 했어요.”
"영화를 모르면서 영화관을 하고 문방구를 모르면서 문구점을 한다" 는 탁 대표는 그래서 자신은 함께하는 사람들을 "신뢰해야만 한다. 정말 이 일에 애정이 있는지를 발견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를 모르면서 영화관을 하고 문방구를 모르면서 문구점을 한다" 는 탁 대표는 그래서 자신은 함께하는 사람들을 "신뢰해야만 한다. 정말 이 일에 애정이 있는지를 발견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이상 평화재단, 한겨레 통일문화재단, 한국 사회책임 투자포럼, 교육과미래 교육복지재단…. 그가 과거 몸담았거나 몸담은 사회 단체들이다. 지점이 늘고, 서점이 자리 잡으면서 이런 활동을 서점 안에서 해보잔 생각이 들었단다. 외부 강사를 초빙한 강의를 해보다 10년 전 가장 먼저 정착시킨 것이 ‘노원서당’이다. “서당 개념은 철학이에요. 『사자소학』 『명심보감』 이런 게 다 생활철학이죠. 책은 미끼고, 애들 인성교육이 본론이죠. 한 6개월 다니면 애들이 차분해지고 생각이 깊어지더라고요.”
3년 전 복합문화공간을 열면서 이듬해 노원구 최초 예술영화관을 시작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사업가 마인드 대신 작가 정신 

영화관은 어떻게 여셨어요.
“제가 영화는 잘 안 봐요. 참 아이러니죠. 대신 책의 연장으로 봤어요. 일반영화가 아니라 여기서 상영하고자 하는 영화를요. 나는 사회 진화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책이 주는 메시지가 어떤 부분에선 영화로 줄 때 더 강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사업이) 된다는 확신은 0인데, 영화의 사회적 영향을 실험해본 거죠. 누가 그래요. 제가 사업하는 게 사업가 마인드가 아니고 작가정신 같다고. 어, 그거 맞는 표현이다, 그랬죠. 몸도 안 좋고 대외 활동들은 다 정리할 때 마지막으로 요거 한 번만 시도해보자, 하는 마음이었거든요.”  
  
더숲 아트시네마 1관. 총 40석의 작은 규모다. 상영작 선정 등은 최휘병 프로그래머가 도맡는다. [사진 더숲 아트시네마]

더숲 아트시네마 1관. 총 40석의 작은 규모다. 상영작 선정 등은 최휘병 프로그래머가 도맡는다. [사진 더숲 아트시네마]

영화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나요.
“처음엔 철학적‧역사적‧문화적인 교육 관점에서 대안 사회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지금은 그런 관점이 좀 교조적이다, 싶어요. 필요한 것을 앞서서 던져주는 용기가 첫째고 둘째는 그런 감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기획전을 많이 하려고 해요. 서점만 봐도 사회 모든 현상을 담고 있거든요. 어떤 이슈가 나오면 그에 대한 책이 나와요. 영화도 마찬가지로 사회 이슈에 맞춰 생각해볼 만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죠. 작가‧감독 초청해서 토론도 해보고. 영화는 하나의 도구이고 영화를 갖고 하는 대화가 본론이죠.”
 

예술영화 하면 망한다 했지만... 

“예술영화 하면 망한다”는 만류를 뿌리치고 2017년 1개 관으로 시작한 예술영화관은 지난해 2개 관으로 확장하며 꾸준히 관객도 늘었다. 3년 새 평균 좌석판매율이 30%를 넘나든다. 예술영화관으론 고무적인 수치다.  
그는 “한 2년 하고 접을 계획이었는데 올해 만 3년을 넘기고 내년엔 이윤이 나기 시작할 것 같다”고 했다. “오히려 ‘영화’가 아니라 사회교육, 책의 연장이란 관점에서 영화를 활용한 게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어요. 이 지역엔 예술영화 볼 사람이 없다, 관객 안 든다고 했거든요. 근데 실제 오는 관객들을 보면 이전엔 독립‧예술영화를 한 번도 안 본 사람들이 많아요. 동네다 보니 가족 관객도 많고요.”
갤러리가 있는 더숲 홀 내부. 홀 한 켠에 더 숲 아트시네마 2관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더숲]

갤러리가 있는 더숲 홀 내부. 홀 한 켠에 더 숲 아트시네마 2관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 더숲]

현재 상영 중인 영화는 ‘벌새’ ‘우리집’ ‘아워 바디’ ‘메기’ 같은 신인감독이 젊은 세대의 관점을 비춘 독립영화, ‘와인스타인’ ‘나의 노래는 멀리멀리’ 등 다큐가 대부분이다. 대중영화를 트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 ‘허스토리’가 그랬다. 인근 멀티플렉스에서 닷새 만에 영화를 내리자, 개봉 2주차부터 ‘더 숲’에서 영화를 틀기 시작했다.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에 민규동 감독, 주연 배우 김희애가 찾은 스페셜토크는 역대 최다 관객을 기록하며 매진됐다.  
 

“‘더 숲’을 내고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영화를 봐도 시내까지 안 나가서 좋고, 이 지역에 이런 갤러리, 문화공간, 다양한 강좌를 들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요. 그런 말이 보상이 되죠.”

 

우리 사회, 사업하면 땅에만 투자 

이렇게 사업이 번창해온 것이 신기할 정도예요.  
“다들 궁금해해요. 다들 망하는데 저는 어떻게 (서점을) 늘렸냐고. 근데 전통 유통업 중에 서점만큼 좋은 게 없거든요. 망한 데들은 대부분 뭐냐면 변화하지 않아요. 진화를 안 시켜요. 우리 사회 전반이 다 그래요. 사업하면 무조건 땅을 사요. 내용 자체에 투자하질 않아요.”  
 
올해로 25년째 몸담아온 노원구에 대해선 “사회를 보는 눈을 길러준 곳”이라 했다. “주위에서 같이 활동한 동료들을 보면 정치하든, 사업을 하든 중심가, 시내에 살아요. 그런데 계속 중앙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재벌밖에 없거든요. 은퇴하면 다 동네 가서 조그맣게 자기 사업을 하는데, 대부분 실패해요. 지역에서의 필요성을 잘 모르니까요. 나는 지역에서 세상을 보게 됐어요. 우리 사회를 구조적으로 보고 문화‧교육‧정치의 전체를 보게 됐죠. 그래서 사업들이 실패하지 않았던 것 아닌가. 나한테는 너무 고맙고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이런 문화공간이 지역마다 확산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게 목표”라 했다.  
탁무권 대표는 '더 숲' 같은 문화 공간이 지역마다 확산되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을 꿈꾼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탁무권 대표는 '더 숲' 같은 문화 공간이 지역마다 확산되어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을 꿈꾼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회적 금융 차원의 금융기관도 꿈꾸죠. 기존 금융기관은 부자한텐 우산을 빌려주고 정작 비가 내리면 우산을 빼앗는다고 하잖아요. 오히려 빈부를 양극화시켜요. 저는 좀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한테 제공할 수 있는 것을 구상하고 있어요. 한 예가 예술가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인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집을 사서 예술가들이 무상으로 한두 달 머물게 하고 있죠. 그냥 스치듯이 여행하는 것과 짧게라도 살아보는 것의 체험이 다르잖아요. 첫 스타트를 끊은 표명희 작가가 다녀와서 쓴 소설 『어느 날 난민』(창비)은 스테디셀러가 됐어요. 독일 베를린에도 집을 구해보려 해요.” 
 

내 재미 위한 10년 숙원 사업은...

-1년 수입 중 사회환원에 얼마나 투자하세요?
“계산해본 적 없어요. 결혼을 안 해서 나눠줄 가족도 없고. 다만 좀 즐기면서 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벌일수록 책임감이 커져요. 제가 쉰다고 그럴 때도 주위에선 또 뭔 일 저지르려고 그래, 그러죠.”
 
자신을 위한 꿈으론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말했다. “한 10년 숙원사업인데 내년엔 이뤄보려고 요즘 하루 1만5000보 걷기를 하고 있어요. 불교에서 ‘수미산’이라 부르는 티베트 카일라스 산에도 언젠가는 가보고 싶어요. 불교만이 아니라 힌두교‧라마교 모든 것의 성지고 지구의 배꼽이라 그러죠. 명상이나 영성 세계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다 가보고 싶어 하거든요. 나빠졌던 건강이 좀 충전되니 꿈틀거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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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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