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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의 삽질일기] 난 한 놈만 팬다, 찍기의 기술 10가지

중앙선데이 2019.10.26 05:01
국화가 있어 시월은 밝다. 종류가 어마어마해 2만5000~3만5000종이 국화 문중에 한발이라도 걸쳐있단다. 꽃이 피는 식물 양대 가문 중의 하나다. 다른 하나는 난초다. 남극에서 자라는 종류도 있다니 지구를 점령한 셈이다. 코스모스도 국화과다. 아저씨 혼자 국화주 홀짝이며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면 궁상맞을라나. 오톨도톨한 종이에 수채물감으로 그렸다.

국화가 있어 시월은 밝다. 종류가 어마어마해 2만5000~3만5000종이 국화 문중에 한발이라도 걸쳐있단다. 꽃이 피는 식물 양대 가문 중의 하나다. 다른 하나는 난초다. 남극에서 자라는 종류도 있다니 지구를 점령한 셈이다. 코스모스도 국화과다. 아저씨 혼자 국화주 홀짝이며 시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면 궁상맞을라나. 오톨도톨한 종이에 수채물감으로 그렸다.

아니 저자는 일 안 하고 맨날 뭔 짓이야?
밭 쥔장이나 옆 밭 분들은 나를 보면 혀를 끌끌 찰 테다. 그도 그럴 것이 밭에 들어서면 연장 배낭을 던져놓고 이상한 짓을 해대니 말이다. 풀 뽑고, 채소 거두고, 물주고, 서둘러 집에 가서 목살이나 굽지 않고 대체 왜 저 모양이지, 허리를 숙이고 여기저기 기웃대네, 쭈그려 앉기도 하고, 무릎 꿇고 뭔가를 살피고, 딱 서리꾼 자세잖아. 땅바닥에 배를 깔고 눕거나 기어 다니기도 하는 걸 보면 군대 시절 포복에 얽힌 트라우마가 있나, 생긴 건 멀쩡한데 거 참. 뭐 이런 생각을 하며. 
그게 아니다. 내가 살짝 모자라긴 해도 아직 그렇게까지 맛이 간 아재는 아니다. 취미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흙 만지며 노는 재미 중의 하나는 사진이다. 밭에서는 시간이 KTX처럼 내뺀다. 어 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후딱 간다. 그저 눈으로 보고 지나치기에는 빛나는 채소들이 지나치게 아깝다. 주말농장을 시작하며 찍기 시작했으니 20년이 넘었다. 지난 기록을 넘기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때 있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주로 보급형 자동사진기로 눌렀다. DSLR도 써봤지만 곧 접었다. 코딱지만 한 농사를 지으며 선수급 장비 들고 눌러대는 꼴이라니. 묵직한 기계 잡고 설치다가 손목 나가면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한다. 핸드폰이 구세주였다. 호박보다 빨리 자라는 카메라 성능 덕이다. 마구 누르다 보니 텃밭 사진을 찍는 나름의 기술이 생겼다. 동료인 사진전문기자 권혁재 어깨너머로 흘금거리며 배우는 재미도 컸다. 그가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권혁재의 핸드폰사진관』은 나 같은 날탕에게는 더 없는 교과서다.      
아래는 ‘삽자루가 막사진 찍는 수법’이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자가 노동하며 ㄱ과 ㄴ을 구분하게 된 경위서랄까. 사실은 뻔한 얘기다. 핸드폰을 막 장만한 유치원생들이 알아두면 좋은 수준으로 보면 되겠다.  
벌레가 갉아먹는 양배추 잎 위에 맺힌 이슬. DSLR로 찍으면 훨씬 생생하겠지만 휴대폰으로도 찍어도 충분하다.

벌레가 갉아먹는 양배추 잎 위에 맺힌 이슬. DSLR로 찍으면 훨씬 생생하겠지만 휴대폰으로도 찍어도 충분하다.

 
 
1. 불금에 술 푸면 슬프다  
동트기 직전과 직후는 상쾌하고, 해지기 직전과 직후는 서글프지만, 셔터 누르기엔 이때가 갑이다. 새벽이슬 머금은 상추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맑다. 아욱을 땡볕으로 고문하고 넘어가는 햇살은 힘이 빠진다. 이즈음은 빛이 도와주니 유아인 어린이가 찍어도, 발가락으로 찍어도 작품이 된다. 그렇다고 ‘신이여 이거 정말 제가 눌렀습니까’ 하며 떠들지는 말고. 
사진기는 빛을 먹고 산다. 주인이 게으르면 사진기는 배고프다. 흐린 날도 별로다. 사진 한장 찍겠다고 밭에 조명 들고 가면 진짜 진상 아재 된다. 햇살 쨍한 대낮도 웬만하면 피한다. 
나처럼 주말에나 밭에 가는 이들은 그래서 금요일 밤에 정신 잘 차려야 한다. 불금이라고 늦게까지 놀다가는 망하기 쉽다. 간신히 밭에 가도 게슴츠레한 눈으로는 대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밤을 새워도 끄떡없는 강철 체력이 아니라면 슬프더라도 일찍 누울 것. 해 뜨는 시간은 알아두고, 휴대폰 자명종이 울면 벌떡 일어날 것. 
 
 
햇살이 퍼지기 전의 접시꽃. 한낮에는 빛이 튀어 하얀색이 이처럼 투명하지 않다. 이슬도 없다.

햇살이 퍼지기 전의 접시꽃. 한낮에는 빛이 튀어 하얀색이 이처럼 투명하지 않다. 이슬도 없다.

2. 난 한 놈만 패
전복 다듬는 법을 검색하려고 포털에 들어갔는데 ‘나루히토의 호칭은 일왕? 일황? 천황?’이라는 제목에 낚여 꾹 누른다. 그 옆에 ‘짝이 맞지 않는 화투패의 변신’이 보여 꾹, ‘지금즉시 오늘만 43% 할인 청소기’에도 꾸욱, ‘고무줄 605개로 수박 묶었는데 대박’에도 꾸우욱, 웹툰 ‘가우스전자’가 보이기에 또 꾸우우욱…. 결국 왜 컴퓨터를 끌어안고 있는지도 모르는 판단정지 상태가 된다. 
밭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주일 만에 가면 면 눈이 팽팽 돌아간다. 온통 새로운 풍경에 아유 기특해, 어메 이쁜 거, 소리를 지르며 셔터를 눌러댄다. 이러다가는 종일 찍어도 모자란다. 시간을 아끼려면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먼저 밭의 대강을 담고, 다음에 계절에 맞는 소재를 집중 공략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지렁이야, 시간 남으면 뱀을 찍고.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생양아치 유오성이 한 말을 잊지 말 것. “난 한 놈 만 패”
 
이날은 역광을 이용해 잎만 집중해서 찍었다. 빨강·노랑·녹색·자주·연두.... 채소 잎은 색깔백화점이다.

이날은 역광을 이용해 잎만 집중해서 찍었다. 빨강·노랑·녹색·자주·연두.... 채소 잎은 색깔백화점이다.

 
 
3. 아저씨, 한발만 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 가장 많이 붙어있는 말씀이다. 같은 데서 같은 부추를 찍었는데도 벙벙한 사진과 꽉 찬 사진이 있다. 대개 주인공보다 배경이 쓸데없이 넓으면 허술해 보인다. 대상을 화면에 대충 넣고 누르니 그렇다. 궁둥이를 뒤로 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손봐 줄 놈을 정했으면 끝을 봐야지. 몸을 앞으로 숙이고 돌격 앞으로. 권투경기를 할 때도 링 바깥을 빙빙 돌다가도 한 방 먹이려면 잽싸게 파고들지 않는가. 한 발 더 다가서면 화면이 달라진다. 승부에 다음은 없다. 여기서 엉뚱한 문제 하나.  
 
다음에 한번 보세 / 2일 오후 6시 골목집서 소주 한잔 어때?
언제 차 한잔하지 / 17일 오후 4시에 삼각지 사각카페서 볼까?  

 
당신은 엉거주춤파인가요, 똑부러지게파인가요. 
 
 
한발 다가서면 대상이 뚜렷해지고, 한발 더 다가서면 색다른 세상이 나타난다. 빙빙 돌아가는 씨앗의 동선을 한참 쳐다보니 눈이 뱅뱅 돈다.

한발 다가서면 대상이 뚜렷해지고, 한발 더 다가서면 색다른 세상이 나타난다. 빙빙 돌아가는 씨앗의 동선을 한참 쳐다보니 눈이 뱅뱅 돈다.

4. 井(우물 정)의 묘미
주인공을 화면 어디에 놓을지 누구나 고민한다. 대개는 가운데 놓고 찍는다. 그러면 정직해 보이는데 어딘가 답답하다.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한다. 먼저 마음속으로 화면에 井(우물 정)을 그린다. 화면을 가로세로 삼등분한 뒤 주인공을 선과 선이 만나는 지점에 놓는다. 대상이 중심에서 살짝 비켜나면 여유와 여백이 생긴다. 빡빡하고 골치 아픈 세상에 사진이라도 숨통이 트여야 하지 않을까.  
다음으로 찍을 대상에 들어있는 선을 찾는다. 없으면 만든다. 대상에는 수평·수직·대각선과 원·타원·삼각형·사각형 같은 다양한 도형이 들어있다. 풍경이든 사람이든 기준선을 먼저 봐두고 그를 중심으로 주인공을 배치하면 그럴싸하다. 수평 맞추기도 그중 하나다. 대충 그렇다는 얘기다. 직감으로 찍고 사진을 재단하며 이런 기준에 맞추는 경우도 많다.  
 
20일무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 속으로 한줄기 빛이 비쳤다. 초점이 자꾸 흔들려100여 장을 눌렀다. 하나는 맞았겠지 했는데 그래도 시원찮다. 주인공을 가로세로선이 만나는 지점에 배치했다.

20일무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새끼손톱보다 작은 꽃 속으로 한줄기 빛이 비쳤다. 초점이 자꾸 흔들려100여 장을 눌렀다. 하나는 맞았겠지 했는데 그래도 시원찮다. 주인공을 가로세로선이 만나는 지점에 배치했다.

 
오이 지지대와 오이를 두 개의 세로축으로, 배경에 있는 토란숲을 두 개의 가로축으로 해서 井구도를 만들었다. 말은 그럴듯한데 작품은 영 아니다.

오이 지지대와 오이를 두 개의 세로축으로, 배경에 있는 토란숲을 두 개의 가로축으로 해서 井구도를 만들었다. 말은 그럴듯한데 작품은 영 아니다.

초록 바탕 위에 점점이 떠있는 노랑색을 대각선으로 배치하니 화면에 생기가 돈다.

초록 바탕 위에 점점이 떠있는 노랑색을 대각선으로 배치하니 화면에 생기가 돈다.

초록 물결 위를 건너가는 빨강 징검다리. 방향을 달리한 대각선 구도다. 열무김치 담글 때 20일무 썰어넣으면 시각효과 만점이다.

초록 물결 위를 건너가는 빨강 징검다리. 방향을 달리한 대각선 구도다. 열무김치 담글 때 20일무 썰어넣으면 시각효과 만점이다.

꽃등에를 한가운데 놓았다. 대개 주인공이 가운데 들어가면 답답한데 여기서는 접시꽃 줄기가 왼쪽에 서 있어 단조롭지 않다. 그런데 저놈 뒤태가 장난 아니다.

꽃등에를 한가운데 놓았다. 대개 주인공이 가운데 들어가면 답답한데 여기서는 접시꽃 줄기가 왼쪽에 서 있어 단조롭지 않다. 그런데 저놈 뒤태가 장난 아니다.

5. 색 쓰는 재미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을 보고 셔터를 누른다. 미세먼지 하나 없네, 가을 하늘 공활하네. 그런데 뭘 어쩌라고, 하며 곧 심심해진다. 초봄의 연둣빛 새순, 한여름의 진초록 들판, 가을날 단풍드는 숲, 눈 덮인 겨울 산하를 찍은 사진 안에는 다양한 층위를 가진 계열 색이 들어있어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일종의 색깔 맞춤이다. 대조하는 방법도 있다. 먼셀 색상환을 머리에 넣고 있으면 건너편에 있는 색이 보인다. 연두와 보라, 노랑과 남색, 빨강과 청록, 주황과 파랑처럼. 
서로 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이쪽이 저쪽을, 저쪽이 이쪽을 보완한다. 색들이 어울리면 서로 산다. 물론 자연에서 이 같은 상황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밭은 시시때때로 달라지고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잠시도 같은 색이 아니다. 
색의 변화를 어떻게 조화시킬까,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며 생각한다. 
 
갖가지 종류의 쌈거리가 어울렸다. 연두색만 있으면 재미가 덜할 테다. 한발 더 가까이 가니...

갖가지 종류의 쌈거리가 어울렸다. 연두색만 있으면 재미가 덜할 테다. 한발 더 가까이 가니...

대비 효과. 네가 아무리 황홀한 옷을 입고 입어도 나는 너를 뜯어먹으련다.

대비 효과. 네가 아무리 황홀한 옷을 입고 입어도 나는 너를 뜯어먹으련다.

 
6. 왜 엉덩이 방석인가
벌과 나비는 찍기 힘들다. 앉아서 꿀을 빠는 모습을 보고 핸드폰을 들이대면 휙 날아간다. 너 잡아먹을 생각 없으니 걱정하지 마, 하며 살살 다가가도 뒤통수에 눈이 달렸는지 금세 알아차리고 튄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쫓아다니다가 운 좋게 몇 컷을 건져도 대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구도와 초점이 제멋대로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어떻게 순간포착을 할까. 장비 덕만은 아닐 텐데. 알고 보니 아주 쉽다. 기다리면 된다.  
벌과 나비는 많다. 한 놈이 꽃을 떠나도 다른 놈이 또 찾아오고, 아까 그놈이 다시 오기도 한다. 구도를 정해 사진기를 고정해놓고 오가는 놈 꾹꾹 누르기만 하면 된다. 착륙하고, 꿀을 빨고, 이륙하는 전 과정을 주르륵 찍을 수 있다. 그런데 허리를 구부리거나, 쪼그려 앉아 꼼짝 않고 있다 보면 온몸이 뒤틀리고 장딴지에 쥐가 나기도 한다. 

이럴 때는 김매기 용 엉덩이 방석이 하느님이다. 나는 아직 장만을 못 했지만.  
 
메꽃에는 벌이나 나비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먹잘 게 적으니 그렇다. 사진기를 고정하고 숨죽이며 꽃등에가 올 때마다 눌렀다. 어깨 빠지는 줄 알았다.

메꽃에는 벌이나 나비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먹잘 게 적으니 그렇다. 사진기를 고정하고 숨죽이며 꽃등에가 올 때마다 눌렀다. 어깨 빠지는 줄 알았다.

 
7. 1천장이냐 1장이냐
권혁재 기자가 물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뭔지 아느냐고. 눈만 끔벅대고 있으니 이런다. “프로는 한장을 건지려 수천장을 찍고, 아마는 한 방으로 끝내지.”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란다. 
삽질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사진 한장에 1천 번이면, 누르다가 날 새고 손가락에 물집 잡히겠다. 그래도 그 말을 들은 뒤로 비슷한 장면을 열 번 정도는 누른다. 사진을 돌려보면 뭐가 문제인지 드러난다. 뭐를 말하고 싶은데, 배경은 단순한가, 화면 안에 양념 하나씩은 들어있는가…. 
복습은 우등생이 되는 지름길이다. 메모해놓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버릇만 고쳤으면 나도 벌써 고수가 되었을 텐데. 
 
 
늙은 오이를 찍는데 사진기가 저 황금색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꾸 비스무리한 색을 보여주지 뭔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며 작정하고 무작정 눌러댔더니 결국은 순도 99%짜리 색깔을 내놓았다. 누르다가 폭삭 늙을 뻔했다.

늙은 오이를 찍는데 사진기가 저 황금색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꾸 비스무리한 색을 보여주지 뭔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며 작정하고 무작정 눌러댔더니 결국은 순도 99%짜리 색깔을 내놓았다. 누르다가 폭삭 늙을 뻔했다.

8. 챙겨야 할 약
좌대에 앉아 가방을 열었더니 낚싯대가 없네, 수프를 먹어야 하는데 숟가락이 없네…. 환장할 상황이다. 햇살 미치게 좋은 5월 어느 날 아침,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다 보니 약이 부족하다고 건전지 그림이 빨갛게 변했다. 차에 가서 충전하며 시간 허비하기는 싫고, 동냥할 데도 없어 눈물을 머금고 중간에 멈췄다. 이런 날일수록 채소잎은 더 투명하고 앞산은 더욱 빛난다. 
사진 앱은 용량이 커서 배터리 소모가 많다. 동영상을 찍으면 더하다. 겨울에는 줄어드는 눈금이 보일 정도다. 이제는 보조배터리도 텃밭 농사 필수 연장이다.
 
핸드폰 약이 다 닳아서 이런 구절초를 찍을 수 없다면 재앙이다. 가평 좀비농장에서 찍었다. 내일 지구가 어떻게 되더라도 배터리는 챙길 일이다. 자나깨나 깨나자나 배터리.

핸드폰 약이 다 닳아서 이런 구절초를 찍을 수 없다면 재앙이다. 가평 좀비농장에서 찍었다. 내일 지구가 어떻게 되더라도 배터리는 챙길 일이다. 자나깨나 깨나자나 배터리.

 
9. 팔뚝과 허벅지는 굵어야 맛
구부리고, 쭈그리고, 꿇고, 기고, 찍고…. 밭일의 기본자세와 사진의 기본자세는 닮은 점이 많다. 삽질을 누워서 하지는 않지만. 둘 다 노동이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일할 때 허리가 착착 접히고 관절이 자유자재로 돌아가야 하니 농부나 사진가 중에 배 나온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런 일 오래 하며 몸 관리 제대로 하지 않으면 종합병동 되기에 십상이다. 허리나 관절은 한번 고장 나면 여간해서는 고치기 어렵다. 사진 오래 찍으려면 자전거도 타고 아령도 들어 허벅지며 팔뚝의 근육을 늘리는 게 답이다. 몸이 탄탄하게 균형 잡히면 손 위의 사진기가 흔들리지 않는다. 
저질 체력으로 손 떨며 찍어놓고 흐리기 기법이라고 우기면 ‘그래 네 팔뚝 굵다’고 칭찬해주면 된다.  
한 뼘 정도 되는 민들레꽃을 찍으려면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다. 사진 찍을 때는 자존심도 팽개치고 굴종도 서슴지 않는다. 관절이 시원찮으면 어쩌지 못하고 누워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닦고 조이고 기름칠 것.

한 뼘 정도 되는 민들레꽃을 찍으려면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다. 사진 찍을 때는 자존심도 팽개치고 굴종도 서슴지 않는다. 관절이 시원찮으면 어쩌지 못하고 누워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닦고 조이고 기름칠 것.

 
 
10. 쌓이면 힘이 된다
2012년 12월 4일 비바람 몰아치던 날이었다. 숭례문 옆 길바닥에 떨어진 모과 하나를 주웠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다음 해 봄까지 변화를 관찰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를 모아 ‘모과 생각 158일’ 지면을 만들었다. 집 베란다에서 보이는 풍경을 찍어 계절 변화를 살피기도 했다. 
밭에 갈 때마다 다양한 소재들을 꾸준히 찍어 놓으니 쓸모가 많다. 잎·이슬·열매·새싹·꽃·연장·곤충…. 많이 찍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골라 쓰면 된다. 데이터가 모이면 이야기가 생긴다.    
모과를 158일 동안 들여다보고 만든 지면. 종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모과를 158일 동안 들여다보고 만든 지면. 종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날은 달팽이만 찍었다.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껍데기 속으로 쏙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더듬이를 내밀고 망을 본다. 제 스스로 경계경보를 해제하면 슬슬 돌아다니기 시작하는데 느낌이 서늘하다. 오래 보고 있으면 보이지 않던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이날은 달팽이만 찍었다.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껍데기 속으로 쏙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더듬이를 내밀고 망을 본다. 제 스스로 경계경보를 해제하면 슬슬 돌아다니기 시작하는데 느낌이 서늘하다. 오래 보고 있으면 보이지 않던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았더니 뒷골이 당긴다. 에베레스트 급 선수들이 즐비한 강호에서 겁 없이 썰을 풀다니 뻔뻔하기도 하지.
 
권혁재 기자 작업실에 갔더니 의자를 가리킨다. 여권 얼굴 박아주겠다기에 이게 웬 떡인가 싶어 냉큼 앉고서는 아차 싶었다. 인터뷰 사진 찍을 때 상대방 진을 빼기로 악명 높은 자 아닌가. 그런데 금세 몇 방 누르더니 됐단다. 1천장씩 눌러대던 선수가 이게 뭐지, 하니 이제 이골이 나서 대충 찍어도 원하는 각이 나온다나. 진짜 그런 건지, 아는 사람이라고 신경을 안 쓴 건지, 내가 표정 연기를 잘해서인지 아리송하다.  
그렇게 나온 사진이 괜찮기는 하다만.
 
그림·글·사진=안충기 아트전문기자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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