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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고개 갸우뚱하지만, 최종 목표는 ‘한류 파라다이스’

중앙선데이 2019.10.26 00:20

문화예술 지원이 경영이다 <2> 최윤정 파라다이스 그룹 부회장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푸르스트 의자’와 한국작가 제여란의 작품 사이에 선 최윤정 부회장. 신인섭 기자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 알렉산드로 멘디니의 ‘푸르스트 의자’와 한국작가 제여란의 작품 사이에 선 최윤정 부회장. 신인섭 기자

발닿는 곳마다 예술이다. 커다란 왕관 모양 조각으로 손님을 맞는 입구부터 이런 호사가 없다. 공간을 잇는 통로와 샹들리에, 카지노 입구까지 그 자체로 작품이다. 현대미술이 궁금하다면 ‘아트테인먼트 리조트’를 표방하는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감잡을 수 있다. 축구장 47개 크기의 드넓은 부지에 제프 쿤스, 데미언 허스트, 쿠사마 야요이 등 현대미술 대표선수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집안 전체가 타고난 예술가들
모든 사람이 즐거운 공간 꿈꿔
백남준 ‘아트의 자존심’으로 존경
미디어아트 페스티벌까지 구상

 
고고한 예술의 담벼락도 허물었다. 콧대 높은 예술가들이 ‘스페셜 도슨트’를 자처한다. 9월부터 11월까지 매주 계속되는 ‘원데이 아트 투어’에 안무가 차진엽,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등이 시민의 문화예술 탐방을 안내하며 즉석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 그 행렬에 파라다이스 그룹 최윤정 부회장도 끼곤 한다.

 
“작년에 시작한 건데 반응이 너무 좋아 우리도 놀랐어요. 인천문화재단과 함께 기획한 시민을 위한 행사로, 도슨트 맡은 예술가들이 더 좋아하세요. 원래 설명만 하는 자리지만 이것저것 많이 보여주고 싶은가 봐요. 프로그램이 더 풍요로워졌죠. 한정된 인원만 보기에 아까워서 투숙객들도 지나다니며 볼 수 있게 동선을 다시 짜야겠어요.”

 
170cm의 장신에 여배우 버금가는 비주얼이 어딘지 ‘얼음여신’ 포스지만, ‘재벌가 사모님’ 베일을 벗고 발로 뛰어 일궈낸 ‘예술왕국’에 대한 열정이 얼음을 녹여버린다. 지난해 오픈한 아트 스페이스 전시도 매번 직접 챙길 정도로 애정이 뜨겁다. “이번에 시작한 ‘랜덤 인터내셔널’ 전은 지난번 ‘프리즘 판타지’에 이어 관객과 서로 소통하는 전시에요. 리조트다 보니 추억만들기 연장선에서 참여 위주로 기획하고 있는데, 미술관 중 국립을 빼면 우리 관객이 제일 많다네요.”

 
“문화와 복지 사업 연결하고파”

 
파라다이스 아트랩 선정 작 이장원의 ‘Oracle’. [사진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파라다이스 아트랩 선정 작 이장원의 ‘Oracle’. [사진 파라다이스 문화재단]

2014년 그룹 부회장을 맡으며 활동에 나섰지만, 한때는 그도 ‘베일의 내조자’였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던 전필립 회장이 파라다이스시티 건설을 계기로 전면에 나서면서 함께 베일을 벗었다. “전에도 일부 디자인 쪽에 관여해 왔어요. 여기 건설이 확정되고 그룹 색깔을 살리면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다 보니 제가 발로 뛰어야 하는 입장이 됐죠. 해외 쪽과 일을 해야 하는데 네트워크가 없으니 발품을 팔 수밖에요. 작년에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받을 때 좀 알려졌지, 주로 뒤에서 땀흘리고 있어요.(웃음)”

 
호텔과 카지노로 유명한 파라다이스 그룹은 사실 선구적인 메세나 기업이다. 장충동 사옥 한켠에 국내 최초 종합문학관인 한국현대문학관을 운영하고 있고, 계원예술중·고 및 대학을 통해 예술 인재도 키워 왔다. 30주년을 맞은 문화재단은 최근 3년간 예술지원에 약 100억원을 썼다.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화예술후원우수기관 인증기업으로도 선정됐다.

 
문화재단과 복지재단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최 부회장은 두 사업을 연결시키는 방안을 고민중이다. 청각장애 청소년을 위한 축제와 합창단을 활성화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문화예술을 활용하고 싶다는 것이다. “5월이면 축제 시즌인데 장애 청소년들은 갈 곳이 없잖아요. 그 친구들 위해 매년 축제를 열어왔는데, K팝 가수들을 초청했더니 너무 좋아하더군요. 이들도 감성은 똑같아요. 제일 좋아하는 게 음악과 춤이죠. 이런 걸 더 확장하는 게 꿈입니다.”

 
담장없는 현대미술 뮤지엄을 만드느라 “발바닥에 땀나도록” 돌아다니다 보니 ‘세계 200대 컬렉터’에도 꼽혔지만, 수치상 최고의 컬렉션은 아니라 부끄럽단다. 하지만 해외에서 명망있는 뮤지엄 관계자들이 “전세계에서 이런 공간 처음 봤다”고 엄지를 치켜세울 때 뿌듯하다고. “연세드신 분들이 열심히 셀카 찍고 계시는 걸 볼 때도 마음이 따뜻해지죠. 전 회장이 피렌체를 다녀와서 구상한 게 광장문화거든요. 사람들이 예술에 파묻혀 여유를 즐기는, 그런 행복한 공간을 만들자는 거였죠.”

 
어린 시절 월트 디즈니를 꿈꿨던 전 회장에게 이 공간은 디즈니랜드인 셈이다. 들국화, 봄여름가을겨울 등 1세대 밴드와 어울렸던 ‘전설의 드러머’인 그는 타고난 예술가다. 최 부회장은 “아이 셋을 포함해 전씨 가문에 넘치는 ‘아티스트 DNA’는 못말린다”며 혀를 내두른다. “저도 예술에 로망이 있었는데, 결혼과 함께 사라졌어요. 저까지 붕 떠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요.(웃음) 어머님도 현대무용을 하셨고, 아버님도 현실적인 비즈니스맨은 아니셨죠. 갑자기 아트스쿨을 짓는다거나, 그림을 사고 예술가를 후원하신 게 지금 와선 큰 자산이지만, 그 시절엔 인정 못받았거든요.”

 
파라다이스시티를 계획할 때도 주변에선 고개를 갸우뚱했다. 드넓은 플라자를 쇼핑몰이 아니라 예술광장으로 만드는 것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꿈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런 2차 시설들은 경영 마인드로는 이해할수 없는 구조죠. 어디서 수입이 나느냐고 물어요. 결국 제일 큰 꿈이었던 아레나는 못 세웠어요. 페스티벌에 대한 꿈을 가진 전 회장은 ‘모든 사람이 즐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그게 왜 안돼?’라는데, 숫자를 내밀면서 간신히 말렸죠. 개인이 운영하기에는 아직 공연 시장이 작으니 좀 기다리자구요.”

 
파라다이스시티의 최종 목표는 ‘한류의 종착지(K-Style Destination)’다. 세계적인 작품들로 유혹해놓고 한류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3000여 점의 컬렉션 중 한국 작품이 90%인 이유다. “마카오에서는 해외 배우를 대량 스카웃해서 마케팅 비용만 200억을 쓰기도 하는데, 우리 차별점은 한류밖에 없겠더군요. 목표가 확실해졌죠. 한류를 보여주자. 정구호 디렉터가 기획한 첫 전시부터 화려하지 않아도 깊이 있는 우리 문화의 우월성을 은근히 보여줬는데, 오프닝 때 왔던 제프 쿤스도 그런 의도를 이해하고 코멘트를 많이 해줬어요. 한국작가 역량도, 동서양 아트를 보여주는 방식도 놀랍다면서.”

 
‘한류 종착지’ 컨셉트, 경영에도 효과

 
파라다이스 그룹에게 한류 후원은 자연스런 행보다. 창업주 전낙원 회장도 1970년 문예지 『동서문학』을 창간해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데 앞장섰고, 최 부회장도 ‘뉴욕 아트 오마이(Art-OMI)’ 레지던스 사업 등 신진 작가 해외 활동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기업이 추구해온 방향이니까요. 우리나라도, 우리도 잘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건데, 결과적으로 이런 컨셉트가 사업에도 도움이 되고 있어요. ‘데스티네이션’이 있다는 건 찾아올 이유를 드리는거니까. 외국인들이 제약없이 찾을 수 있도록 관광정책을 잘 세워줬으면 좋겠네요.(웃음)”

 
파라다이스 아트랩 선정작가들. [사진 파라 다이스 문화재단]

파라다이스 아트랩 선정작가들. [사진 파라 다이스 문화재단]

후원 분야도 창의적으로 개발한다. 올해의 화두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다. 18일부터 11월 3일까지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파라다이스 아트랩’ 쇼케이스는 음악·무용·시각 등 각 장르와 VR·프로젝션 맵핑·모션 캡쳐 등 미디어가 결합된 독특한 작품들을 관객이 체험하게 하는 미래지향적인 프로젝트로, 파라다이스의 숙원사업이다. “전 회장이 백남준 선생의 엄청난 팬이거든요. 우리나라가 미디어아트 선구자로서 계속 앞서가야 한다고 주장하죠. 미디어아트 페스티벌까지 꿈꾸며 시작한 사업이라, 이번에도 페스티벌 요소를 넣어 재밌게 구상했어요. 항상 ‘펀 앤 이지’로 모든 걸 재밌게 하고 싶거든요. 사람들이 다가올 수 있게.”

 
이런 ‘소통본능’이야말로 파라다이스의 DNA다. ‘전설의 드러머’ 전 회장은 녹슬지 않은 실력을 직원들 앞에서 뽐내기도 한다고. “정원영, 한상원 등 뮤지션 친구들이 많으니까 주로 개인 공간에서 열정을 풀죠. 직원 행사를 할 때도 가끔 치세요. 회장이 치셔야 자리가 파하니, 빨리 치고 가자고 하죠(웃음).”

 
파라다이스로선 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이 꼭 기업으로서의 책임은 아니다. “정말 좋아서” 한다. 최 부회장이 머잖아 많은 기업의 자연스런 동참을 전망하는 이유다. “젊은 기업인들이 메세나에 참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금방 좋아질 거예요. 젊은 친구들은 빠르고 적극적이고, 예술을 즐기니까요. 가명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직은 과도기라 주목받는 게 부담스러운 거죠. 세상이 크게 바뀌고 있으니 곧 적극적인 참여가 일어날 거예요.”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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