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데이 칼럼] 셰익스피어와 정치

중앙선데이 2019.10.26 00:20 658호 31면 지면보기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정치의 본질은 무엇일까. 석기시대이건 소위 인공지능(AI)과 제4차산업혁명을 운위하는 21세기이건 불변의 정치적 본질이 있을까. 우리는 민주주의에 입각한 주권재민의 시대, 총선과 대선으로 민의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수천 년 전부터 바뀌지 않는 핵심적인 정치의 뭔가가 있을까.
 

시대 초월한 정치 본질은 질서
최고 지도자는 국가 주권 지켜야
양심 어긴 야심은 고통의 근원
민중의 외침은 정치세력에 부담

정치의 본질은 ‘공동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불평등한 권력의 분배(an unequal distribution of power to maximize communal interests)’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재물이나 권력을 ‘가진 자(haves)’와 ‘못 가진 자(have-nots)’가 있다. 하지만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쥐고 있는 권력과 재물로 사회에 베풀어야 한다. 이타적인 이유 이전에 그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다.
 
셰익스피어(1564~1616)의 작품에 따르면, 가진 자도 마냥 편안한 것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그들 또한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상기시켜 준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위안이요,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따끔하지만, 의미 있는 경고다. 그런 설득력 덕분에 셰익스피어는 호메로스나 괴테, 성경의 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불멸의 작가다.
 
가진 자들은 나름 무거운 짐도 지고 살아야 한다. 가진 자들끼리의 경쟁도 살벌하다. 국민·백성·평민을 만족하게 하지 못하면 반란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돈이나 권력을 쥔 사람들은 공동체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 이런 메커니즘을 가장 절실하게 잘 알고 있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 못 가진 사람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재단이 가장 발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결 구도가 정립한 것은 대략 19세기다. 하지만 현대인은 시대착오적(anachronistic)으로 예수나 공자, 무함마드 같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보수성과 진보성, 페미니즘 친화성을 따진다.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눈 것에 대해 진보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 예컨대 예수에 대해 『신약성경』을 인용하며 그가 시원적(primal) 민족주의자이거나 사회주의라는 주장이 있다.
 
셰익스피어 초상화. [영국 국립초상화갤러리]

셰익스피어 초상화. [영국 국립초상화갤러리]

영국이 낳은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수·진보를 따지는 학자들이 많다. 셰익스피어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희곡에 담아낸 걸작을 쏟아냈다. 우선 셰익스피어는 사랑 전문가였다. 그는 정치·권력 전문가이기도 했다. 셰익스피어는 16세기 영국 정치의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속하는 내부자(insider)가 아니면 모를 내용을 작품에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내부자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아주 작은 정보로도 전체상을 파악할 능력이 있는 천재였을 가능성이 크다.
 
비교정치학적 관점에서 셰익스피어를 독해한다면, 셰익스피어는 일단 왕이나 주권재민 시대의 대통령이나 총리는 우선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작가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런 면에서 셰익스피어는 헨리 5세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그가 문학의 거성일 뿐만 아니라 마키아벨리 못지않은 ‘알려지지 않는 위대한 정치철학자’라고 후한 점수를 주는 학자들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작가로서 또 사상가로서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작품에서 국왕 시해(regicide)를 감행한 야심가들은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워한다. 셰익스피어에 따르면 양심을 어긴 야심은 고통의 근원일 뿐이다. 셰익스피어는 자연의 질서와 정치의 질서가 상응(相應)한다고 봤다. 그의 희곡에서 국왕 시해의 결과는 무질서와 천재지변이었다.
 
어느 시대에나 ‘간신’과 ‘충신’이 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신하도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왕국의 신하도 21세기 대한민국 지도자급 인사도 ‘물리적 목숨’ 혹은 ‘정치적 목숨’을 내걸고 직언을 한다. 시공을 초월한 정치적 행위의 보편성은 놀랍다. 다행히 우리나라 여당 야당에서 당파적 이익을 초월하려는 ‘대한민국 충신’들이 보인다. 그런 정치 지도자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에 ‘호산나’로 환영한 것도, 예수를 죽이라고 외친 것도 예루살렘 민중이었다. 셰익스피어는 군중의 변덕에 대해서도 작품 속에 넣고 있다.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을 지지한 것도, 순식간에 표변해 단죄한 것도 민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살핀다면 수십만, 수백만 민중이 우리 편을 위해 모인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민중의 외침은 강하다. 그래서 민중의 외침은 모든 정치 세력에게 큰 부담이다.
 
셰익스피어는 왕과 귀족, 서민 모두를 만족하게 했다. 무식하건 유식하건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며 웃고 울며 손뼉 치고 한탄했다. 어쩌면 우리는 셰익스피어 같은 정치인이 필요하다. 좌파와 우파, 여당과 야당을 모두 흡족하게 하는 지도자는 나올 수 없을 것인가.
 
셰익스피어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그래머스쿨(grammar school)을 나왔다. 작품이 워낙 뛰어나 옥스퍼드대를 다녔을 것이라는 ‘억지’ 주장도 있다. 그는 학벌보다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인이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