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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위기의 진보 ‘우리만의 리그’서 벗어나라 - '祖國 사랑’ 깃발은 둘이 아닌 하나다

중앙일보 2019.10.26 00:03
위선적인 ‘입진보’ 감싼 문 대통령, 최악의 민심 이반 초래
상식 있는 진보는 대립·갈등의 주체 아닌 중재자·해결사 돼야

커버 스토리 - 특별기고

 
지난 10월 3일 오후,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의 많은 현안과 과제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성찰의 계기였다.

지난 10월 3일 오후,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의 많은 현안과 과제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성찰의 계기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전격 사퇴했다. 지난 두 달간 “조국으로부터 아침을 시작하고, 조국으로부터 저녁을 마감한다”라는 말이 나왔다. 심지어 술자리에서 친하게 지냈던 우정도 한순간에 무너뜨릴 정도였다. 정치적 논쟁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조국’이라는 단어가 금기시되기도 했다.
 
이른바 ‘조국 대란’으로 ‘서초동’과 ‘광화문’이란 두 개의 광장이 생겼다. 양측의 주장은 ‘조국 수호’와 ‘조국 사퇴’로 압축돼 서로 적대적인 대결 양상을 보였다. 각자의 태극기 깃발 안에서 서로의 증오감을 증폭시키는 ‘광기의 진영논리’로 철저하게 무장했다. 결과적으로 탄핵으로 다 죽었던 자유한국당이 30%대 정당지지율로 다시 부활했다. 자한당은 싫고, 검찰개혁은 동의하고, 조국 수호 프레임에는 동의하지 않는 중도 세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국 전 장관이 사퇴했으니 분열적인 정치 갈등 상황은 일시적 휴전 국면으로 들어섰다. 이 시점에서, 잠시 냉정을 찾고 숨을 고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조국(祖國)은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가? ‘조국 대란’은 조국을 통해 나타난 우리 사회의 많은 현안과 과제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성찰의 계기를 만들었다.
 
‘조국 대란’의 최종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 그의 전략적 판단이 틀렸던 것이다. 대통령이 조 장관을 임명했을 당시, 여의도 국회는 패스트트랙 상정으로 인해 정치 갈등이 최고조 위기상황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청와대 최측근인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직행이 가져올 논란을 무시했다. 조 전 장관 딸의 제1저자 논문과 배우자의 사모펀드 의혹 등을 중심으로 불거진 ‘공정성·도덕성’ 논란에 대해서도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언급하면서 임명을 강행했다.
 
검찰개혁 적임자 선정의 조급성이 ‘과정의 공정’, ‘기회의 균등’, ‘결과의 정의’라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전략적 오판을 초래했다. 눈에 보이는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고, 자만이었다. 바닥 민심의 흐름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국민은 검찰 개혁의 방향과 검찰 권력의 남용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적임자가 “왜 하필 조국이어야 하는가”를 이해시키는 데는 전술적으로 실패했다. 특히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지지한 청년·학생·주부·중도층이 갖게 된 상대적 박탈감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조국 프레임’을 ‘문재인 프레임’으로 전환시켜, 문재인 정부 지지철회를 촉진시키는 최악의 민심이반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조국 프레임’을 ‘문재인 프레임’으로 전환

10월 9일, ‘조국 사퇴’를 요구하는 서울 광화문 집회에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았다.

10월 9일, ‘조국 사퇴’를 요구하는 서울 광화문 집회에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았다.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의 윤리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구별했다. ‘선한 의도’와 ‘선한 결과’는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신념윤리만으로 책임 윤리를 담보하지 못한다. 문 대통령은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검찰개혁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신념윤리만으로 검찰개혁의 완성을 이루지 못한다.
 
이제부터라도 검찰개혁의 ‘전략적 낙관’과 ‘전술적 비관’의 꼼꼼한 개혁 추진전략을 실행해야 한다. 대안과 전략은 국민적 상식의 기반 위에서, 대화와 타협의 기제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문 대통령은 ‘착한 대통령’보다는 ‘성공한 대통령’이 돼야 한다.
 
결국 검찰개혁의 최종 완결은 국회가 해야 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은 모두 국회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안들이다. 대통령의 통합과 소통의 의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의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이 자만하면, 집권당은 오만해진다. 선거개혁과 검찰개혁을 위해 야당과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등 돌린 중도층의 민심을 되돌리는 지름길이다.
 
국민은 소통하고 통합하는 대통령의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현 시국의 민심 흐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 통합적 국정운영을 해나간다는 전향적 자세를 갖기 바란다. 위기가 기회다. 지지율 반등 기회는 충분히 있다. ‘조국 대란’의 정치적 경험이 국정운영의 좋은 성찰 기회가 될 것이다. 사실 국민은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는 동의했지만, 조 장관이 적임자인가 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적임자를 다시 임명해서 성공한다면 국민적 지지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세의 진정성에 따라 내년 총선의 결과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조국 대란’은 첨예한 정치적 갈등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해야 하는 여야 정치권의 역할을 한꺼번에 실종시켰다. 진보든 보수든 광장의 민심은 존중되고 수렴돼야 한다. 그러나 진영논리에 입각한 ‘광장정치’로 정당정치의 기능을 대신할 순 없다. 갈등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광장정치에 무책임하게 무임승차하는 정치행위가 더 문제다.
 
여당은 조 전 장관을 신성불가침 영역 수준으로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의 심리적 마지노선 40%가 무너질 조짐을 보이자 그제야 정치적으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조국 대란’의 민심분열에 대한 사과 없이 ‘검찰의 반성’만 요구하고 있다. 아직까지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지지층 결집만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빈정 상한 중도층을 흡수할 진정성 있는 정치적 실천이 필요하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와 있는 선거 및 검찰개혁 법안을 하루빨리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해, 법적으로 선거 및 검찰개혁을 완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 정부의 국정철학이 과연 실현되고 있느냐는 젊은이들의 슬픈 외침에 여당은 책임감 있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도덕적 우월감 벗어던진 ‘솔직한 진보’를 원한다

조 전 장관이 사퇴 성명을 발표한 10월 14일, 관련 방송을 시청 중인 시민들.

조 전 장관이 사퇴 성명을 발표한 10월 14일, 관련 방송을 시청 중인 시민들.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조 전 장관 사퇴를 또 다른 정치 공세의 빌미로 삼는 정략적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당은 ‘조국 사퇴’ 카드에 무조건 올인했다. 조국만 계속 비판하면 선거에 승리할 것이라는 단순한 환상에 빠져 있었다. 현재 포스트 조국 이후 닥쳐올 선거법 개정이나 당의 인적·정책적 쇄신, 보수 통합 전략에 대한 정치적 콘텐트가 마련돼 있지 않다. ‘불평등과 불공정’의 갈등을 법률 안정성 속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내는 것이 보수의 기본이념이다. 그런데 현실은 보수 이념의 과잉이 아니라, 결핍이다. 두 달간 ‘조국 정국’ 속에서 보수세력 재집결과 중도층 흡수를 통한 지지율 상승효과를 한국당은 쏠쏠하게 봤다.
 
그러나 ‘조국 법무부 장관 전격 사퇴’로 매력적인 투쟁 재료가 갑자기 사라졌다. 조국 효과가 사라져 버렸다. 조국 사퇴를 ‘사필귀정’ ‘국민의 승리’ 등으로 자축할 처지가 아니라, 포스트 조국 정국을 풀어 갈 정치 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의 국론 통합 콘텐트를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보여 주지 않는 이상, 당 지지율 상승은 일시적 특수 효과에 불과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진영 간 정치적 갈등은 당분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대타협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정치 본연의 역할이다.
 
‘조국 대란’은 진보의 ‘이중적 위선’에 대한 성찰적 화두를 제공했다. 도덕적 가치에 대한 기준점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 조국 대란은 ‘우리가 남이가’ 식의 선택적 의리를 중시하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철저한 이분법의 진영논리를 작동하게 만들었다. 정치적 동지인 조국 일가의 비리 의혹에도 “악랄한 거악(巨惡)인 검찰조직에 비하면 작은 문제다” “보수들의 비리가 훨씬 심한데도, 진보 인사들의 사소한 흠집만 부각시킨다” “보수 기득권의 부당한 공격에 조 장관을 끝까지 지키자”고 격렬히 주장했다.
 
보수는 보수끼리, 진보는 진보끼리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 맞는 ‘선택적 정의’를 차용했다. 이것은 사실과 가치를 혼란시키는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고, 가치의 프레임 속에서만 사실을 판단하게 만들었다. 특히 SNS를 통해 서로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진영논리는 기형적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이러한 사고구조는 정치적 양극화를 가속시키면서 대화와 토론을 통한 협의의 정치, 공존의 정치를 방해하는 전체주의 요소로 작동했다. 초연결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에 역행하는 구시대의 낡은 유물에 불과하다. 상식 있는 진보는 정치적 대립과 갈등의 주체가 아니라, 갈등 해결의 중재자 및 촉진자가 돼야 한다.
 
정치적 양극화 프레임에서 진보가 먼저 탈출해야 한다. 진보는 다소 억울해야 한다. 보수는 이익으로 뭉치고, 진보는 가치로 모인다. 각자의 성장 동력이 다르다. 진보의 가치는 도덕성이 최고 경쟁 무기다. 이참에 아예 도덕을 적당히 내팽개치자는 주장과 도덕적 굴레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진보의 도덕적 우월감’이 공정사회를 만드는 핵심요소다. 포장된 위선의 진보보다 솔직한 진보가 필요하다.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국민은 혐오하고 싫어한다.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주장한 각자의 내용이 ‘선택적 정의’ ‘선택적 해석’ ‘선택적 결집’일지라도 그들 모두는 적(enemy)과 동지(friend)가 아니라, 민주 공화국의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경쟁자(adversary)이자 시민이다. 공존 정치의 핵심 파트너다.
 
적대자가 아니라 경쟁자이고, 틀림의 논쟁이 아니라 다름의 확장성 경쟁이다. 검찰개혁의 국가적 과제를 다르게 평가하고 다르게 실천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혹자는 “정치가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이며, 적을 죽임으로써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정치의 종말이고 파시즘으로 가는 거짓된 선동에 불과하다. ‘서초동’과 ‘광화문’이 비록 정치적 대립과 갈등관계에 있지만, 대한민국 정치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이기에 서로의 정치적 주장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내 편이냐 아니냐’의 진영논리는 극단의 확증편향을 낳고, 광기의 감정적 판단을 유발해 합리적 이성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포퓰리즘을 지속적으로 생산한다.
 

강남좌파 너머 ‘생활진보’ 고민할 때

그때부터 민주주의의 위기가 시작된다. 한국사회는 세대별, 계층별, 이념별 생각과 지향점이 모두 다르다. 검찰개혁을 지지해서 서울 서초동 집회에 참석했지만, 조국 수호 구호엔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를 보수, 진보 진영 대결로 바꾸는 진영논리의 이분법으로는 한국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치유할 수 없다.
 
진보 세력들은 ‘회색분자의 박쥐’로 비판하는 중도 세력의 민심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그들은 기회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정치적 사안에 따라 때로는 진보주의자로, 때로는 보수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서초동 촛불이냐, 광화문 태극기냐”의 이분법적 진영논리 주장을 불쾌하게 느낀다. 그들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가 사안에 따라 모자이크처럼 혼합된 개방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정치적 양극화 사회에서 이분법의 정치적 선택을 암암리에 강요받는다.
 
선동의 센 목소리만 조국(祖國)을 사랑하는 애국자가 아니다. ‘서초동’과 ‘광화문’ 모두 다 조국(祖國)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우리의 태극기는 둘이 아니고, 하나다.
 
‘조국 대란’으로 상위 10%에 들어 있는 강남좌파의 유리 바닥을 봤다. 좌우 갈등이 아니라, 대한민국 상층 엘리트의 민낯을 봤다. 조 전 장관은 이런 말을 했다. “정치적 민주화에 관심 가지면서도 사회경제 민주화와 불평등 문제에 소홀했다. 부익부 빈익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거기에 앞장서 나서지 못했던 점, 저희 아이가 합법이라고 해도 혜택을 입었던 점을 반성한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동시에 함축돼 있다. 한마디로 무늬만 진보고, 생활은 기득권 보수 세력이었다는 것을 정치적 수사로 유식하게 포장한 것이다.
 
이제 강남좌파의 담론진보가 아니라, 생활진보를 고민할 때가 왔다. 마지막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대사가 아둔한 머리에 지속적으로 스친다. “부자는 착해서 돈이 많은 게 아니라, 돈이 많으니까 착한 거야….”
 
 
이쌍규 전 나친박 정치 팟캐스트 진행자,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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