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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조국 정국’의 상흔으로 남은 ‘광장의 분열’

중앙일보 2019.10.26 00:03
광화문 vs 서초동 두 쪽으로 갈라져 대화·타협 여지 실종... 대규모 군중 동원 기세 싸움에 대의민주정치 시스템은 후퇴
 

커버 스토리 - 집중분석

광장은 본래 시민의 공간이었다. 시초는 만민공동회다. 계급의 구분이 사라진 광장에서 백성의 목소리가 ‘자강(自强)’의 국론을 잉태했다. 1919년 3월 1일 광장에서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 열창은 독립국가 건설의 초석을 다졌다. 광장에는 언제나 우국충정의 결기가 넘쳤고, 순수한 열망이 가득했다. 시민 즉, 민중의 목소리는 하나였고, 뜻도 하나였다. 광장에는 겨울도 찾아왔다. 광장은 권력의 공간으로 넘어갔다. 민중은 동원의 대상이 됐다. 관제데모가 일상화됐고, 기쁨의 노래보다 숨 막히는 삼엄함이 광장을 옥좼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다. 온기가 깃든 광장에서 민중의 춤사위가 다시 펼쳐졌다.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역사가 광장의 봄바람을 맞으며 싹을 틔웠다. 2019년의 광장은 어떤가. 해방 직후 외세의 신탁통치를 두고 찬반으로 갈라졌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대결의 줄다리기는 팽팽하다. 정치권력은 호시탐탐 광장의 시민을 동원된 군중으로 치환하려 시도한다. 동원된 군중을 권력의 척도로 가늠하는 권위주의 시절의 답습이다. 보수와 진보가 이런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폄훼와 과장, 왜곡이 민주주의의 룰을 깨고 있다. 다시 겨울로 돌아갈 것인가. 광장의 유산을 이대로 잃어버리고 말 것인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계기로 광장이 둘로 쪼개졌다. 10월 12일 서초동 촛불집회와 10월 3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조국 사퇴 촉구 촛불집회. / 사진: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을 계기로 광장이 둘로 쪼개졌다. 10월 12일 서초동 촛불집회와 10월 3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조국 사퇴 촉구 촛불집회. / 사진:연합뉴스

둘로 쪼개진 광장에서 구호와 함성이 부딪혔다. 눈을 들면 청와대가 보이는 서울 광화문에서, 검찰청 건물이 우뚝 선 서초동에서 시민의 목소리는 대상을 직접 향했다. 대의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인 여의도는 시민들의 시선 밖에 있었다. 시민들은 국회에 역할을 맡기는 대신 직접 정치의 한복판에 나섰다. 지난 두 달여간의 ‘조국 정국’이 대의정치의 실종이자 광장정치의 등장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광장에 선 시민들의 목소리가 거의 대등하게 둘로 쪼개진 것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73년 전 해방 직후 신탁통치안을 둘러싸고 일어난 좌우익의 대립인 찬탁·반탁운동 이후 거의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게다가 국민이 직접 선출한 정치인이 아닌 임명직 장관의 거취를 두고 ‘수호’와 ‘퇴진’ 구호가 맞부딪힌 것은 전례가 없었다.
 
아홉 차례에 걸친 ‘조국 수호·검찰 개혁’ 서초동 촛불집회와 맞불 성격인 광화문 집회의 가장 큰 한계는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때 광장에 모인 군중의 수가 여론을 대변하던 시절이 있었다. 민주화 시위가 일상적이었던 1980년대가 특히 그랬다. 수시로 실시되고 결과가 공표되는 여론조사나 실시간 여론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일이다. 이때 집회 인원은 위력적이었다. 그래서 집회 참가 인원을 놓고 주최 측과 경찰 간에 승강이를 벌이는 게 다반사였다.
 
경찰은 최대 운집 인원을 계산하는 방식을, 주최 측은 연 인원을 계산하는 방식을 고집했다. 경찰은 단위면적당 참가 인원수 계산법(페르미 추정법)을 적용했고, 주최 측은 각 참여 단체의 인원에 일반 시민의 참여를 더했다. 어느 쪽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터무니없이 부풀리거나 축소하는 경우는 없었다. 언론도 ‘주최 측 추산’과 ‘경찰 집계’를 병기하는 게 일반적인 시위 기사 작성의 불문율이었다.
 
시위 문화는 과거와 달라졌지만 광장에 모인 군중의 숫자로 세를 과시하는 방식은 예전 그대로였다.
 
9월 28일 열린 서울 서초동 ‘조국 수호·검찰 개혁’ 촛불집회에서 주최 측은 200만 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곧이어 10월 3일에 광화문에서 열린 ‘조국 반대·문재인 정권 규탄’ 집회 주최 측은 300만 명이 모였다고 응수했다. 다시 이틀 뒤(5일) 서초동에서 열린 진보 진영의 집회는 일주일 전 집회보다 인원이 크게 늘었다. 양측의 숫자 싸움이 보수·진보 진영의 자존심 대결로 번진 셈이다.
 

1980년대 사고 벗어나지 못한 조국 찬·반 집회

진보와 보수 진영은 각각 조국 수호와 조국 사퇴를 외치며 검찰청이 있는 서초동과 청와대가 보이는 광화문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경쟁적으로 열었다. 10월 3일의 광화문과 9월 28일의 서초동 집회 모습.

진보와 보수 진영은 각각 조국 수호와 조국 사퇴를 외치며 검찰청이 있는 서초동과 청와대가 보이는 광화문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경쟁적으로 열었다. 10월 3일의 광화문과 9월 28일의 서초동 집회 모습.

그나마 객관적인 기준으로 인원을 집계해 온 경찰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추산 인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뜻에서다. 경찰청 관계자는 “여론의 분출구가 다양해진 시대에 광장에 모인 인원만 놓고 누가 더 목소리가 크냐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며 “경찰도 집회 관리에 필요한 경찰력 동원에 참고하기 위해 추산인원을 내부적으로 활용할 뿐 다른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 인원을 추정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경찰이 기준으로 삼는 페르미 추정법 외에도 집회 장소 일대에 설치된 휴대전화 기지국의 접속 단말기 수로도 참가 인원 계산이 가능하다. 서울시와 KT가 공공빅데이터를 이용해 공개하는 ‘서울 생활인구’ 자료에 따르면 각 집회 참가 인원과 연령대까지 추정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추산한 결과는 양쪽 집회 주최 측 주장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10월 3일 광화문 집회가 열릴 당시 이 일대 7개 집계구에서 최대 36만여 명이 운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5일 서초동 집회는 일대 17개 집계구를 기준으로 최대 운집 인원이 11만여 명이었다. 객관적인 빅데이터를 근거로 한 집회 인원 추정치가 공개되면서 정치권과 주최 측의 인원 부풀리기 경쟁은 한풀 꺾였다.
 
하지만 각 집회 참가자 사이의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상대 진영의 집회 참가자가 일당을 받고 동원됐다거나, 조직적으로 세를 결집했다는 비난이 꼬리를 물었다. 세대 논쟁으로도 비화했다. 광화문 집회에는 장년층이, 서초동 집회에는 청년층이 더 많이 참여한 것을 두고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두 집회 참가자의 연령대가 크게 차이난 것은 사실이다. 서울 생활 빅데이터에 따르면 10월 3일 광화문 집회에서 최대 인파가 모인 오후 2시 이 지역에 집결한 인구 연령 구성은 70세 이상이 35%로 가장 높았고 이어 60대가 27.3%를 차지했다. 50대는 14.9%, 40대 8.0%, 30대 6.5%, 20대 5.2%, 10대 1.5% 순이었다. 10월 5일 서초동 집회의 경우 4050세대가 주축을 이뤘다. 오후 6시 기준 인구 구성은 40대가 26.7%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24.4%를 차지했다. 30대는 12.2%, 60대 12.1%, 20대가 8.2%였다. 70세 이상은 7.6%에 그쳤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양쪽의 세대 경쟁이 아니다. 10~20대 청년의 참여율이 지극히 저조했다는 점이다. 데이터로 보면 두 집회는 ‘장년’과 ‘중년’의 싸움이었을 뿐이다. 광장에서 ‘청년’이 실종된 것이다.
 
청년 참여 비율이 눈에 띄게 적은 것은 진보와 보수 어느 쪽도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낼 흡인력이 부족했다는 방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규모 군중집회의 구시대적인 방식과 의미 부여가 청년들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한 것이다. 이를 두고 1020세대의 낮은 정치 참여 의식과 무관심을 탓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내재적 문제로 돌리는 것은 기성세대의 시각이자 관성일 뿐이다.
 

광장에서 사라진 1020세대

2016년 11월 18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교생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위에 합류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2016년 11월 18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교생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시위에 합류해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역대 대규모 군중 집회가 벌어졌던 이슈들을 돌이켜 보자.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서 교복을 입고 촛불시위에 참석한 청소년과 청년들의 모습은 부모 세대를 광장으로 나오도록 한 기폭제가 됐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 이화여대 학생들의 발랄한 시위 영상은 두고두고 화제다. 마스크를 쓴 채 총장실 앞에서 경찰과 대치한 삼엄한 와중에도 걸그룹 소녀시대의 인기곡을 열창하는 장면은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86일에 걸친 농성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입학·학사 과정 특혜 의혹과 맞물리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기폭제가 됐다. 김혜숙 이화여대 총장은 지난해 2월 2018학년도 입학식에서 “이화여대생들은 어려운 고난을 겪으면서도 촛불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민주화의 불을 밝히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민주화의 봄을 되찾은 1987년 6월 항쟁의 주역도 당시 기성세대에겐 ‘철부지’로 여겨졌을 청년·학생들이었다. 시대와 상황마다 가장 먼저 나서서 기폭제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20대가 갑자기 정치의식이 사라졌다고 해석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편견에 가깝다.
 
2016년 7월 이화여대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대생들의 시위는 정유라 이대 입시·학사 특혜 의혹의 기폭제가 됐다.

2016년 7월 이화여대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대생들의 시위는 정유라 이대 입시·학사 특혜 의혹의 기폭제가 됐다.

집회의 성격도 예전과 달라졌다. 10월 3일의 광화문 집회에 친구들과 함께 참가한 60대 은퇴자 김모 씨는 무대 위 스피커에서 쏟아내는 구호를 따라 하면서도 눈을 스마트폰에서 떼지 못했다. 그는 연신 사방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그가 찍은 현장 사진은 카카오톡으로 지인들에게 실시간 중계됐다. 김씨는 “지방에 있는 친구들에게 서울의 집회 분위기를 보여 주고 싶어서 단체 대화방에 사진을 올렸다”고 했다. 그가 보여 준 단체 대화방에선 조국 사태에 관한 의견들이 활발하게 오고 갔다.
 
10월 5일 열린 서초동 집회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한 손에는 ‘조국 수호·검찰 개혁’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다른 손에 쥔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조작했다. 현장 분위기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하거나, 셀카를 찍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이렇게 찍은 현장의 모습들은 곧바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지인들과 공유됐다.
 
두 장면에는 더 이상 광장만이 시민을 대변하는 유일한 창구가 아니란 사실이 녹아 있다. 광장에 모이지 않아도 여론이 생성되고 증폭된다. 무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사물과 사람을 모두 연결해 주는 초연결 사회에서 광장의 의미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한 장소에 모인 ‘머릿수 경쟁’은 무의미해진다.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나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광장은 기성세대가 기억하는 예전의 모습과 딴판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거리 시위를 시작으로 광장은 더 이상 폭력과 정치 구호가 난무하는 시위의 공간이 아닌 문화와 여가, 축제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 ‘데모’, ‘시위’라고 불렸던 군중집회가 ‘촛불문화제’와 같은 대중적 이벤트로 바뀐 것은 이런 시대상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화염병 대신 촛불을, 현수막 대신 손피켓을, 결기에 찬 민중가요와 ‘팔뚝질’ 대신 흥겨운 대중가요와 춤사위가 자리를 대신했다.
 

‘광장의 힘’은 광화문과 서초동에만 있지 않아

1987년 6월 항쟁 이후 광장은 시민의 뜻이 하나로 분출되는 민의의 잉태 공간이자 축제의 공간이었다. 87년 6월 항쟁, 2002 한·일 월드컵 거리 응원, 2008 광우병 촛불집회 장면. (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

1987년 6월 항쟁 이후 광장은 시민의 뜻이 하나로 분출되는 민의의 잉태 공간이자 축제의 공간이었다. 87년 6월 항쟁, 2002 한·일 월드컵 거리 응원, 2008 광우병 촛불집회 장면. (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 방향)

이처럼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광장의 힘을 수단화하려는 정치권의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집회 참가 인원을 놓고 각자의 유불리를 따지며 상대 진영을 헐뜯기 바쁘다.
 
10월 3일 광화문 집회가 역대 보수 진영의 집회 중 가장 큰 규모로 치러지자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화력을 동원해 보수 진영에 대한 정치 공세를 펼쳤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10월 4일 오전에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한국당은 태풍 피해 등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동원 집회에만 골몰하며 공당이길 포기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은 “서초동 집회는 깨어 있는 국민의 자발적 참여, 한국당 폭력집회는 문재인 정권을 흔들어 보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집회”라며 선과 악의 대립으로 몰아갔다.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토요일(5일) 촛불집회에 많은 분이 오길 기대한다”며 집회 참여 경쟁을 독려했다.
 
자유한국당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10월 3일 광화문 집회에 참석해 “지난주 서초동에 모인 이들이 200만 명이라면 우리는 2000만 명”이라며 “모택동이 자신의 정권이 위태로우니 홍위병을 풀었다. (문재인 정권도) 홍위병을 풀어 200만 명을 운운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선 9월 28일 서초동 촛불집회 다음 날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에 정신 나간 이들이 그리 많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같은 당의 민경욱 의원도 “위선과 허위, 뻥튀기 병이 도졌다. 종북좌파의 관제데모일 뿐”이라고 원색적으로 폄훼했다.
 
최창렬 용인대(교양학부) 교수는 “단순한 세 대결이 아니라 극단적 분열 상태”라며 ‘사회적 내전(內戰)’이라고 규정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정치 실종의 장기화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여야에 주문했다. 문 의장은 “분열·편가르기·선동의 정치가 위험선에 다다랐다. 국민 분노에 가장 먼저 불타 없어질 것이 국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광장의 분열에 우려의 메시지를 내놨다. 10월 7일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정치적 의견의 차이가 활발한 토론 차원을 넘어서서 깊은 대립의 골로 빠져들거나 모든 정치가 그에 매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많은 국민께서 의견을 표현하셨고, 온 사회가 경청하는 시간도 가진 만큼 이제 문제를 절차에 따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온 뒤 서초동 집회 주최 측은 10월 12일 9차 집회를 끝으로 당분간 열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불과 3일 만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전격 사퇴하면서 광장의 분열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조짐이다.
 
진보 진영은 조 전 장관의 사퇴와 검찰개혁 관련 법안이 국회로 넘어간 상황을 고려해 다음 집회 장소로 국회의사당이 있는 여의도를 지목했다. 앞서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 연대는 10월 12일 집회에서 지금까지의 촛불집회를 ‘시즌 1’로 규정하고, “요구 사항이 이뤄지지 않으면 다시 촛불이 켜질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 뒀다.
 
한국당은 조 전 장관의 사퇴로 잔뜩 고무된 분위기다. 당초 광화문 집회의 핵심 구호였던 ‘조국 사퇴’ 요구가 달성되자 전선을 문재인 정부의 정책 전반으로 넓혔다. 조 전 장관 사퇴 후 처음 열리는 10월 19일 광화문 집회를 ‘시즌 2’로 규정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저들의 타깃은 처음부터 조국 장관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라며 “결국 광장의 목소리를 순수하게 듣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이용하겠다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거리의 정치’가 민주주의 대체 못해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치적 의견 차이가 깊은 대립의 골로 빠져 들거나 정치가 그에 매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광장의 분열을 우려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치적 의견 차이가 깊은 대립의 골로 빠져 들거나 정치가 그에 매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광장의 분열을 우려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철희 민주당 의원의 고뇌는 광장에서의 주도권 싸움에 매몰된 정치 현실의 민낯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이 의원은 조 전 장관이 사퇴한 다음 날(10월 15일) 단체 문자메시지를 통해 조국 정국을 거친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조국 얘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국면이 67일 만에 끝났다. 그동안 우리 정치, 지독하게 모질고 매정했다.” 그는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정치는 결국 여야, 국민까지 모두를 패자로 만들 뿐”이라며 “정치가 해답을 주기는커녕 문제가 돼 버렸다”고도 했다.
 
광장의 분열이 깊어지자 이 상황을 끝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흥분에 묻혀 있던 이성의 목소리는 진영을 초월한다. 김병관 아주대(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주말마다 일상을 뒤로하고 거리로 나오는 현상은 ‘정치 과잉’”이라고 해석했다. 갈등이 극대화한 데에는 정치·언론·노동계 등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정재형 동국대(영화영상학과) 교수는 [교수신문] 기고문에서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공적인 정신이 이탈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장덕진 서울대(사회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금의 세 대결에서 누군가 이긴다고 하면 다른 집단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다는 건가. 세 대결은 사태 수습을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지금 벌어지는 두 집회는 정파적일 뿐 이를 초월한 정파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늦은 감이 있지만 국회에서도 의회 정치를 살리려는 노력이 움트고 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지금 광장으로 민의가 쏟아져 나오고 국회에서 정치가 실종된 책임에 대해 통감한다”고 말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도 최근 대의민주주의가 실종된 것을 연쇄 대규모 집회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대변인은 “국민이 압박하지 않으면 여야가 세월만 보내고 개혁 과제들을 무위로 돌려 버릴 수 있다는 우려를 경고하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여야 교섭단체 3당은 ‘2+2+2’ 협의체를 시작으로 조국 정국으로 마비 상태였던 국회 정상화에 나섰다. 첫 회의에서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사법개혁 법안과 정치개혁 법안 중 여론의 요구가 높은 공수처 설치법안 등 사법개혁 법안 처리를 의제로 삼았다. 한국당이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는 터라 협상 과정이 쉽진 않을 전망이다.
 
윤평중 한신대(철학과) 교수는 지식인 사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윤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차분하고 균형감 있던 학자와 지식인들조차 주관적 진정성의 이름 아래 진영논리의 거친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 걸 보고 섬찟 놀란다”며 “합리적 토론 이전에 ‘넌 어느 편이냐’고 윽박지르고 다그치는 풍경은 지성의 냉철함과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광장정치는 대의정치의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아니다. 거리의 정치로 국가 운영을 대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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