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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신 커피 2잔 값, 추운 이웃에겐 연탄 사흘치

중앙일보 2019.10.25 09:00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45)

날씨가 추워졌다. 이제 곧 겨우살이를 준비할 때다. 예전에는 두 가지 큰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장과 연탄을 장만하는 일이다.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하면서 이전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연탄은 서민에게 소중한 난방 자원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 연말이 가까워지면 불우이웃 돕기 행사를 정기적으로 하곤 했다. 직원들과 함께 춘천에 있는 지적장애아 시설에 위문 갔던 날이다.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해 두 시간 남짓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이들이 몹시 반가워하며 우리들 품에 안겼다. 지적 수준은 낮았지만 덩치가 큰 아이어서 처음에는 은근히 걱정됐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우린 곧 그곳 분위기에 익숙해졌고 위문품을 전달한 후 아이들과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봉사활동을 갔던 지적장애아 시설 사회복지사에게 애로사항을 묻자 아무도 자신이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을 때 힘들다고 말한다. 사진은 한 시설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활동가 모습. [중앙포토]

봉사활동을 갔던 지적장애아 시설 사회복지사에게 애로사항을 묻자 아무도 자신이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을 때 힘들다고 말한다. 사진은 한 시설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활동가 모습. [중앙포토]

 
직원들이 그렇게 원생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그곳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설 현황에 관한 얘기 끝에 ‘가장 큰 애로사항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건 괜찮지만 아무도 자신이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을 때 힘이 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오후 늦게 그곳 원생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춘천을 떠났다. 서울로 오면서 여러 생각이 오갔다. 위문이랍시고 이렇게 한번 다녀오면 그것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났다. 그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했던 사회복지사의 모습도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 회사에 출근해 전 직원을 상대로 공지 글을 하나 썼다. 먼저 직원들이 거두어준 돈으로 어제 위문을 잘 다녀왔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음으론 불우 이웃을 돕는다는 일이 이렇게 일회성의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되고 꾸준히 지원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매월 희망자에 한해 월급의 일정액을 떼어 그들을 도와주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가 모은 돈으로 연탄을 사서 주면 최소한 그곳의 아이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거라는 얘기를 덧붙였다.
 
직원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거의 모두 자기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공제하겠다고 했다. 이런 뜻을 춘천에 있는 시설의 원장에게 전달하고 한 달에 연탄을 얼마나 쓰는지 난방비 예산을 알려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 그 금액에 해당하는 돈을 송금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10만 가구 가운데 8만 5천 가구가 저소득층이다. 1만원이면 3일을 따뜻하게 살 수 있다. 커피 두 잔 값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전국에서 연탄을 사용하는 10만 가구 가운데 8만 5천 가구가 저소득층이다. 1만원이면 3일을 따뜻하게 살 수 있다. 커피 두 잔 값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마음속으로 사회복지사를 떠올리며 ‘우리는 당신의 노고를 잊지 않고 있다’란 말을 전하고 싶었다. 직원들의 월급에서 공제한 돈이 난방비를 충당하고 남아 여분의 돈이 쌓였다. 회사 규모가 커지자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해 적립한 돈도 점점 많아졌다. 그곳뿐 만아니라 다른 이웃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중앙일보 보도를 보니 요즘도 전국에서 10만 가구가 연탄을 사용한다. 이 중 8만 5천 가구가 저소득층이다. 강원도 원주의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의하면 연탄을 기다리는 ‘에너지 빈곤층’이 주위에 많다. 그러나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들을 돕는 손길이 예전 같지 않다. 1만원이면 어려운 사람이 3일을 따뜻하게 살 수 있다. 커피 두 잔 값으로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사회 소외층을 도와준다면 우리 사회 전체로 그 온기가 퍼질 것 같다. 우리 회사가 그랬듯이 직장 단위로 결연 맺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국력이 커져선지 이젠 해외까지 나가 어려운 난민을 지원하고 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봉사했던 고 이태석 신부나 말라위에서 봉사활동을 펴고 있는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선생이 좋은 사례다. 우리 모두가 그들처럼 일선에 나가 봉사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이 봉사할 수 있도록 뒤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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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기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 필진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죽음.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은 무엇일까. 의외로 돈 많이 벌거나 높은 지위 오르거나 하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다. 생을 살며 ‘조금만 더’ 하며 미뤘던 작은 것을 이루는 것이라고. 은퇴 후 인생 2막에서 여가, 봉사 등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 죽음도 편하다고 한다. 노후준비엔 죽음에 대비하는 과정도 포함해야 하는 이유다. 은퇴전문가가 죽음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방법과 알찬 은퇴 삶을 사는 노하우를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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