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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합리적인, 너무나 합리적인

중앙일보 2019.10.25 00:43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인간은 주어진 정보에서 최적의 판단을 한다는 것이 고전경제학의 전제다. 이른바 ‘합리적 경제인’ 가정이다. 이런 합리성만으로는 경제 행위 설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문제 제기다. ‘현상유지 편향’ ‘손실회피 편향’ ‘공정성 선호’ 등 각종 심리학 이론이 동원된다.
 

잇따른 실정에도 반성없는 여권
지지층 분열 막는 합목적적 전략
무능·분열 야당이 깰 수 있겠는가

현실을 외면하고 유리한 통계만 되뇌는 여권의 경제 인식도 이런 ‘편향’으로 설명되곤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이 대표적이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핑계로 성공한 것은 김건모 밖에 없다’는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부 요인을 대며 “선방하고 있다”는 인식 같은 거다. 소득주도성장은 기피어가 될 정도로 실패작임이 판명 났지만, 이를 인정 않는 고집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춘 며칠 뒤, 대통령 시정 연설에선 ‘튼튼한 재정’ ‘소득 증가세 전환’ ‘청년 고용률 12년 만에 최고’ 같은 단어가 동원됐다.
 
편향과 고집이 경제뿐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다. 정경심 구속까지 부른 조국 사태에서도 여권의 진지한 성찰은 찾기 힘들다. 시정 연설에서 대통령의 명쾌한 사과는 끝내 없었다. ‘제도에 내재한 합법적 불공정’을 고민해야 한다는 유체이탈식 화법 만이 남았다. 청와대는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조국 동력 되살리기에 매달리는 야당에 맞서 전선은 여전히 뜨겁다. 정치 언어의 기능을 통합과 외연 확대로 알아온 사람들에게 집권 세력의 언술은 이해하기 어렵다. 도저히 합리적이라고 여길 수가 없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합리’라는 단어의 사전적 풀이는 ‘이치에 맞다’다. 왠지 공허한 뜻풀이다. 목적에 맞는 최적의 수단을 찾는다는 뜻이 훨씬 현실적이다. 막스 베버가 말한 ‘목적 합리성’이다. 이런 면에서 여권의 언술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이를 담보하는 것은 40% 지지율이다. 임기 초반에 비해 반토막 나긴 했지만, 40%선은 여간한 악재가 있어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역대 정부가 가져보지 못한 자산이다.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조국 가족처럼 깨끗한 가족은 없다” 같은 맹목이 힘이다.
 
주52시간제 보완 등으로 노동계와 여권이 갈등이 없지 않지만, 결국 가재는 게 편이다. 통합의 언어를 말했다가 자칫 ‘보수 세력에 대한 투항’으로 낙인찍히느니, 지지층 다지기가 훨씬 합리적 선택이다. 온갖 무리수를 투척하며 조국 일가 지키기에 나서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진영 밖에선 비상식적일지 몰라도 진영 내에선 합리성의 정점에 있다.
 
그러나 이런 ‘닫힌 합리성’이 오래 갈 수는 없다. 내부 모순이 쌓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청와대는 태블릿 보도 다음 날 ‘뜻밖에’ 신속히 사과했다. 사소한 실수를 인정하면 사태가 쉽게 수습되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국정 혼선과 비선 논란, 과거 회귀적 권위주의 등으로 누적된 내압(內壓)은 계산하지 못했다. 봇물이 터진 뒤, 성급한 사과가 전략적 잘못이었다는 내부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더 큰 비극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무책임한 정치공학적 발상일 뿐이다. 이런 전철을 여권이 다시 밟으려는가.
 
여권의 계산을 합리적으로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도우미는 보수 야당이다. 천하삼분지계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조국의 시간, 검찰의 시간, 대통령의 시간 뒤 다가올 ‘국민의 시간’은 닫힌 합리성과 열린 합리성의 싸움이다. 지금의 보수 야당이 이 싸움을 견인할 수 있는가. 조국 사퇴가 자신들의 전공(戰功)인 양 표창장을 주고 받으며 웃고 떠드는 모습에서 어떤 희망을 볼 수 있는가. 거대 정당 틈바구니에서 알량한 당권을 놓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은 또 어떤가.
 
“한 줄기 강이 가로막은 가소로운 정의여!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는 진리가 저쪽에서는 오류.” 21세기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 사이는 파스칼의 피레네 산맥보다 더 넓고, 높고, 험하다. 닫혀버린 진영의 합리성 속에서 우리 사회 진리는 점점 가소로워지고 있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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