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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기각되니 "법원 XXX들아"…서초동 흔드는 진보·보수

중앙일보 2019.10.24 15:45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주변에서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왼쪽)와 기각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남궁민 기자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주변에서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왼쪽)와 기각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남궁민 기자

법원의 판단을 앞두고 사법부를 압박하는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에 대한 압박이 공정한 판단을 해칠 수 있다며 우려를 드러낸다.
 
정경심(57) 동양대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가 이뤄진 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주변에서는 '응원전'이 펼쳐졌다. 오후 7시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 모인 집회 참가자들은 '정 교수님 힘내세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구속영장 기각을 촉구했다.
 
같은 시각 서울중앙지법 앞 삼거리에는 영장 발부를 촉구하는 맞불집회가 벌어졌다.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 주최 집회에 모인 참가자들은 '정경심 구속해 사법정의 세워주세요'라고 쓰인 피켓을 들었다. 70대 남성 참가자는 "기각되면 사법부가 죽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찰은 34개 중대 1800명의 경찰관을 서울중앙지법 주변에 배치했다. 이날 낮부터 청사 주변에는 경찰버스 30여대가 주차되는 등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날 중앙지법 앞에서 집회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던 직장인 최모(36)씨는 "이곳에서 근무한지가 꽤 됐지만 구속영장 발부를 두고 대규모 집회를 벌이는 건 처음 봤다"면서 "법원 앞에서 하는 큰 집회가 최근에 많아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진보·보수 서초동 흔들기 이어져

지난 8월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도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 약 1000여명이 모여 박 전 대통령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남궁민 기자

지난 8월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도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 약 1000여명이 모여 박 전 대통령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남궁민 기자

 
법원의 결정을 지켜보겠다며 새벽까지 진행된 두 집회는 24일 정오쯤 영장이 발부된 뒤에도 이어졌다. 영장 기각을 촉구한 집회 참가자들은 "법원이 미쳤다" 등의 격한 반응을 보였다. 연단에 오른 한 참가자는 "딱 한마디만 하겠다. 법원 XXX들아"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법원의 주요 판단을 앞두고 벌어지는 집회는 상시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날 법원 앞 집회를 벌인 자유연대 측은 24일 '법원의 좌편향성 규탄' 집회를 예고했다. 영장이 기각될 경우 법원을 규탄하기 위해 준비한 집회다. 정 교수 지지자들은 법원의 비판하기 위한 주말 집회를 논의하고 있다.

 
법원 주변 대규모 집회는 주요 인사에 대한 판결이 나올 때마다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67)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이뤄진 지난 8월29일에는 대법원 정문 앞에는 지지자 1000여명이 모여 '박근혜 석방'을 외쳤다. 일부 참가자는 대법원 청사 앞까지 진입하기도 했다.
 

"여론전 자제해야…3심제·구속적부심 대안 있어"

지난 23일 오후 대검찰청 청사에 경찰 버스가 주차돼 있다. 이날 오후 7시부터 서울중앙지방법원 인근에선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구속영장 발부, 기각을 주장하는 보수단체와 진보단체의 집회가 열렸다. 김기정 기자

지난 23일 오후 대검찰청 청사에 경찰 버스가 주차돼 있다. 이날 오후 7시부터 서울중앙지방법원 인근에선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구속영장 발부, 기각을 주장하는 보수단체와 진보단체의 집회가 열렸다. 김기정 기자

 
과거 판사로 근무했던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엄청난 여론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신밖에 없다"면서 "법원과 법관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건 공정한 재판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재판'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는 법원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시민들의 집회의 자유는 존중해야 하지만 정치권과 언론이 판결과 판사를 공격하고, 검찰까지 판결을 부정하는 듯한 논평을 내놓는 건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선 국민대 법학과 교수는 "사법권 독립은 입법·행정부뿐 아니라 여론으로부터의 독립도 포함되는 개념"이라며 "헌법이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단을 보장한 이유도 재판이 여론에 좌우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일각에서 법원에 대한 압박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견제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오해"라면서 "판사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바로 잡는 건 여론이 아니라 3심제나 구속적부심·보석 등 제도적인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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