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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때 파출소 방화범으로 3년간 억울한 옥살이, 사망 후 재심서 무죄

중앙일보 2019.10.24 10:59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시내에 등장한 탱크.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연합뉴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시내에 등장한 탱크.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연합뉴스]

부마민주항쟁 때 파출소에 불을 지른 혐의 등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남성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숨진 뒤에야 무죄 판결을 받았다.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고 황모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 선고
5.18 민주화 운동 때 집행유예 받은 최모씨도 무죄 선고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형사1부(김진석 고법 부장판사)는 소요·공용건조물방화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한 고(故) 황모(1996년 사망 당시 43세)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재심 재판부는 황씨가 부마항쟁 당시 파출소를 부수고 불을 지르는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는데도 수사기관에서 고문이나 가혹 행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시인했고, 이런 내용을 법정에 호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자료 등에 근거해 당시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황씨가 파출소에 불을 지른 행위에 가담했다는 자백을 하게 하려고 고문·가혹행위 등 방법이 사용됐다고 볼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어 유죄증거로 삼을 수 없다”며 “자백 외 나머지 증거는 황 씨가 구체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뒷받침하기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부마항쟁 당시 시민 사이에 ‘유신철폐’,‘민주회복’ 등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된 점을 고려하면 황 씨 등 시위대의 행위를 소요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심 판결문에 따르면 건축공사장 경비원으로 일했던 황씨는 1979년 10월 17일 부산 자갈치 시장 앞에서 남포동 파출소 방면으로 오던 중 길 건너편에서 시위 장면을 구경하다 경찰에 갑자기 체포됐다. 이후 부마항쟁 시위에 참여해 부산 남포동 파출소 등을 부수고 불을 지르는 데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79년 11월 제2관사계엄보통군법회의는 이 씨에게 소요죄·공용건조물방화죄를 적용해 황 씨에게 징역 5년을, 1980년 3월 상급심인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결국 황씨는 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한 뒤 지난 1996년 사망했다. 검사는 지난해 4월 황씨 사건에 대해 재심 청구를 했고, 법원은 지난해 10월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같은 재판부는 이날 소요죄·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1980년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최모(62) 씨에 대한 재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1980년 당시 전남도청을 장악한 계엄군 병력.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영상 캡처=연합뉴스]

1980년 당시 전남도청을 장악한 계엄군 병력.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영상 캡처=연합뉴스]

 
재심 재판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가 1979년 12월 12일 일으킨 군사 반란을 시작으로 1980년 5월 비상계엄 확대 선포, 1981년 1월 비상계엄 해제 등의 행위는 헌정질서 파괴 범죄인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최 씨가 무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5·18 민주화운동은 1979년 12·12 군사반란 등 헌정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다”며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정 씨의 행위는 헌법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방위에 해당해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최 씨는 5·18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26일 광주 전남도청 앞 시위에 참여하고, 다음 날 새벽 칼빈소총 1정, 실탄 등을 받고 계엄군의 시내 진입을 저지하는 경계를 서는 등 계엄 포고령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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