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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러시아의 카디즈 침범, 한·미 동맹 굳건해야 막는다

중앙일보 2019.10.24 00:17 종합 34면 지면보기
러시아의 군용기 6대가 22일 또다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멋대로 들어와 6시간이나 한반도 상공을 휘젓고 다녔다. 우리 전투기 10여 대가 긴급 출동해 영공까지 들어오진 않았지만, 러시아의 카디즈 침범은 올 들어 20번째다. 문제를 일으킨 군용기에는 조기경보기뿐 아니라 전폭기와 전투기까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우발적이 아닌, 상습적 도발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카디즈 침범 문제 등을 논의할 한·러 군사회의 직전에 이뤄져  의도적 행위로 보인다.
 

미 중거리 미사일 배치 견제용인 듯
한·일 갈등 촉발하려는 작전일 수도

방공식별구역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 아닌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급적 이를 존중해주는 게 국가 간 예의다. 특히 민항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속도의 군용기가 영공에 근접할 경우 사전에 알려주는 게 사고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런데도 러시아 측이 카디즈를 침범한 것은 한국을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가 한국 측 반발에도 이렇게 나오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한·미 동맹이 느슨해진 틈을 타 러시아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크다. 요즘 국제무대에서는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과 옛소련 간에 맺어졌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파기하면서 긴장의 수위는 한층 더 높아졌다. 특히 INF 조약이 무효화되면서 미국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 내에 단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이 생겼다. 러시아의 카디즈 침범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견제하기 위한 실력과시일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악화한 한·일 간 갈등을 부채질함으로써 한·미·일 안보 협력을 흔들기 위해 카디즈 침범이 이뤄졌을 공산도 적지 않다.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치는 독도 인근 지역을 비행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카디즈 침범을 계기로 한·일 간 영유권 분쟁이 또다시 촉발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19세기 이래 러시아는 태평양 연안에서의 부동항 확보를 위해 한반도까지 세력을 뻗치려고 부단히 노력해 온 나라다. 1980년대 말 옛소련 붕괴 이후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래 강력한 러시아의 재건 차원에서 또다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구도다.
 
이 같은 러시아의 의도를 견제하고 무시받지 않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다. 바로 굳건한 한·미 동맹, 나아가 원활한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으로 러시아의 도발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학생들의 미 대사관저 난입 등 최근 한·미 동맹을 흔드는 사건이 잇따라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공기처럼 우리 안보의 기틀인 한·미 동맹 역시 사라지고 난 뒤 그 소중함을 깨닫는 비극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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