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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래 “5공 때면 끌려갈 ‘농염’ 개그…시대 잘 타고나 가능”

중앙일보 2019.10.23 19:27
1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코미디 스페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사진 넷플릭스]

1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코미디 스페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사진 넷플릭스]

“은퇴하지 않고 계속 방송할 수 있게 돼서 너무 다행이에요.”
23일 서울 삼청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열린 코미디언 박나래(34)가 건넨 첫인사다. 지난 16일 넷플릭스에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가 공개된 이후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이 쏟아진 덕분이다. 지난 5월 17~18일 서울에서 열린 100분짜리 공연을 62분으로 압축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5분 만에 양일 2500석이 매진되는 등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부산ㆍ대구ㆍ성남ㆍ전주 등 지방 공연을 돌고 서울 앵콜 공연까지 마쳤다.  

넷플릭스 ‘농염주의보’로 새 도전
“편하게 자기 얘기 가능해 매력적
수위보다도 재미 없을까 더 걱정”

 
지난해 MBC ‘나 혼자 산다’로 대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대세 예능인’인 그가 은퇴까지 거론한 이유는 두 가지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19금(禁)’도 아닌 ‘190금(禁)’을 표방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쇼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tvN ‘코미디빅리그’ 등 콩트를 주로 해 왔던 그가 분장이나 특수효과 같은 별다른 무기 없이 마이크 하나 들고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맞닥뜨려야 한다는 두려움도 컸다. 그는 “수위도 수위지만 재미가 없을까봐 그게 가장 큰 공포였다”고 말했다.
 
박나래는 ’젊은 여성 관객뿐만 아니라 60대 노신사분도 박장대소하시는 걸 보고 안심했다“며 공연 소감을 밝혔다. [사진 넷플릭스]

박나래는 ’젊은 여성 관객뿐만 아니라 60대 노신사분도 박장대소하시는 걸 보고 안심했다“며 공연 소감을 밝혔다. [사진 넷플릭스]

“언젠가 이름을 걸고 만든 쇼를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박나래는 넷플릭스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막연하게 3년 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제 발로 찾아온 기회를 마다할 수는 없었던 것. 그는 “그때부터 스탠드업 코미디를 공부해본 결과 본인이 가장 편하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하면 될 것 같았다”며 “정치도 모르고 디스나 풍자도 못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바로 섹스 터치 코미디였다”고 설명했다.
 
평소 거리낌 없이 본인의 연애담을 솔직하게 털어놓던 그는 “방송에서 못하던 것”에서 초점을 맞췄다. 수위 높은 개그 맛뵈기에도 전유성ㆍ이홍렬 같은 대선배들에게 “5공화국 때면 끌려 간다”고 구박 받았기에 수위 조절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섹스터치는 4만 볼트 전기고압선 바로 밑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선까지만 놀 수 있으면 최고의 개그맨이 될 수 있지만 아니면 감전되는 것”이라는 신동엽의 조언처럼 자칫 잘못하면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탓이다.  
 
‘썸앤쌈’ ‘마성의 나래 바’ 등 여러 코너를 통해 호흡을 맞춰온 ‘코미디빅리그’의 최영주 작가가 1차 관객이 되어줬다. 대본 작업까지 직접한 박나래는 “저와 성향이 너무 다른 분이라 그분이 웃으면 쓰고, 질색하면 뺐다”며 “현재 출연 중인 방송 제작진 등을 초청해 사전 리허설을 하면서 원래 생각보다는 수위가 조금 낮아졌다”고 말했다. “제 별명이 연예계 칭기즈칸입니다. 정복하지 못한 남자가 없어요” “세상에 남자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나랑 잔 남자, 앞으로 잘 남자” 같은 명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박나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 예능인의 부재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지금은 많은 분들이 활약하고 있다“며 ’그 흐름에 제가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박나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 예능인의 부재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지금은 많은 분들이 활약하고 있다“며 ’그 흐름에 제가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예능 ‘범인은 바로 너’에 이어 ‘농염주의보’의 연출을 맡은 김주형 PD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나만의 철학이 있어야 가능한 포맷인데 각종 페스티벌이나 강연에서 보여준 박나래씨의 이야기에서 그런 걸 엿볼 수 있었다”며 “단순히 웃음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교훈도 있어 공감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남자, 여자 등 세상이 만든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시원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자”는 그의 메시지가 던지는 울림이 상당하다.  
 
그는 “시대와 잘 맞물려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감사를 표하면서도, “조금 더 수위를 높였어도 됐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많은 분들이 언젠가 할 줄 알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본인은 차마 못하지만 이 공연에 맞는 이야기를 해 주시기도 했고요. 준비하면서 아시아계 미국인 앨리 웡의 쇼를 봤는데 너무 멋있더라고요. 저도 결혼하고, 임신하고, 출산하면 꼭 그런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때 되면 ‘농염주의보’ 2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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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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