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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농지 강탈 사건’ 피해자 재심 확정···대법 “재심사유 별개로 판단”

중앙일보 2019.10.23 12:00
박정희 정권 당시 구로공단 조성 명분으로 농지를 강제로 빼앗긴 피해 농민 이모씨 유족들의 재심이 받아들여졌다.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전경 [중앙일보]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전경 [중앙일보]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른바 ‘구로공단 농지 강탈 사건’의 피해자인 고 이모씨의 유족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 등기 소송의 재재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1950년 3월 정부는 해방이 되자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로 수용됐던 구로동 일대 약 30만평의 땅을 농지개혁법에 따라 농민들에게 분배했다. 농민들이 경작하던 구로동 일대 농지를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가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을 위해 다시 강제 수용했다. 이른바 구로공단 농지 강탈 사건이다. 농지를 강탈당한 농민들은 1964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 1968년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1984년,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 농민들의 승소를 취소하는 판결을 받아냈다. 해당 소송에서 증언했던 공무원 등이 위증 혐의로 유죄가 나고, 소송을 제기한 농민들이 소를 취하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폭행·불법구금을 동반한 보복성 수사·기소에 의한 것이었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국가가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민사소송에 개입해 공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사기죄와 위증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농민들 및 공무원 등 23명이 재심을 청구했고 그중 21명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됐다.

 
형사 판결이 뒤집히자 농민들의 수분배자들의 후손들은 소유권이전 등기 민사소송에 대한 재재심을 청구했다.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8호는 판결의 기초가 된 민사나 형사의 판결, 그 밖의 재판 또는 행정처분이 다른 재판이나 행정처분에 따라 바뀐 때 재심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재심의 사유를 안 날부터 30일 이내에 제기해야만 한다.

 
이씨의 유족들은 2013년 6월 17일, 위증죄로 처벌받은 김모씨의 재판 결과에 따라 재심을 신청했으나 각하됐다. 김씨의 형사 재판 결과가 2013년 5월 3일에 나왔는데 이로부터 30일이 지난 6월 17일에 재심을 청구했다는 이유에서다.

 
2018년 6월 이씨의 유족들은 재심을 다시 청구했다. 사기죄와 위증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박모씨가 받은 무죄 판결 결과에 따라 재심을 청구한 것이다. 정부는 “김씨와 박씨의 형사재심은 모두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에 해당하고 그 재심사유나 무죄의 이유가 동일하므로, 이는 통틀어 민사소송법에서 정한 하나의 재심사유라고 보아야 한다”며 소가 부적법하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재심사유는 그 하나하나의 사유가 별개의 청구원인을 이루는 것”이라며 “재심 대상 판결의 기초가 된 각 유죄판결에 대하여 형사재심에서 인정된 재심사유가 공통된다거나 무죄판결의 이유가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달리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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