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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성교제 금지·군대식 합숙’…학생선수 기숙사실태 보니

중앙일보 2019.10.23 12:00
한 고등학교 야구부 합숙소. 29명이 2층 침대가 빼곡한 한 방에 모여 생활한다. [국가인권위원회]

한 고등학교 야구부 합숙소. 29명이 2층 침대가 빼곡한 한 방에 모여 생활한다. [국가인권위원회]

휴대전화 금지, 두발·이성교제 제한, 폐쇄회로(CC)TV감시를 비롯해 폭행·성추행 등의 인권침해가 학생선수들의 합숙소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이런 결과를 담은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결과를 23일 공개했다. 인권위가 조사한 학교는 모두 16곳이다. 수도권 7곳, 이외 9곳을 올해 6월부터 10월까지 찾아 조사했다.
 
조사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학생선수들이 합숙생활을 하는 학교는 체육계 고등학교를 빼고 모두 380개다. 전원이 기숙생활을 하는 곳은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87곳이었다. 이 중 157곳은 가까이 사는 학생들도 무조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29명 한 방에서 생활…구타·휴대폰 압수도 

합숙소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조사대상인 16곳 가운데 한 방에 7명 이상이 생활하는 학교가 6곳이었다. 그중 4곳은 한 방에 10명 이상이 함께 생활한다. 휴게 시설이 없는 학교도 절반(8곳)이었다. 한 고등학교 야구부는 29명을 2층 침대를 빼곡하게 채운 방에 몰아넣고 합숙을 시켰다. 이 학교는 5명만 합숙생활을 한다고 거짓 보고하기도 했다.
 
폭력·구타도 빈번했고 관리·감독도 안됐다. 조사에 참여한 한 중학교 축구부에선 가해 학생이 후배들을 창고 등에서 수십차례 폭행했다. 또 고참 선수가 후배에게 7개월간 ‘빨래셔틀’을 시키고, 마사지를 매일 30분~1시간 이상 시킨 경우도 드러났다.  
 
부당한 감시와 통제도 만연했다. 한 중학교 축구부 선수는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휴대폰은 학교로 돌아오는 일요일 저녁에 수거하고 집에 가기 전 금요일 저녁에 돌려준다”며 “잘한 게 있으면 (코치들이) 휴대폰을 줄 때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등학생 선수는 “시간·청소 약속을 안 지키면 2일 동안 핸드폰을 뺏거나, 일정 시간 이후에 걷어가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를 안 지키면 벌금을 물었다. 또 두발·연애도 제한받아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도 했다.
 

군대식 생활에 유사 성행위 요구도

이밖에 의류각 잡기·관등성명 등 예전 군대식 규율 강요도 합숙소에서 일어났다. 한 체육고 육상부 여학생은 인터뷰에서 “선배들이 제 물건을 만지면 예! OOO 호실 X 번 아무개입니다! 라고 관등성명을 크고 빠르게 외쳐야 했던 게 가장 큰 문화충격”이라고 밝혔다. 또 “기숙사에선 이유도 없이 흰 양말을 신어야 했고, 양말·속옷·겉옷 개는 법과 침대 정리 방식도 정해져 있었고, 생리대나 옷걸이에도 전부 이름을 적고, 옷걸이·샴푸 꼭지 방향도 모두 똑같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식사할 때 한 손만 쓰거나, 선배와 식사할 땐 음식을 남기면 절대로 안 됐고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는 음식도 (선배에게)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성폭력 사건 4건을 비롯해 성희롱·성추행도 합숙소에서 벌어졌다. 동성 간 유사성행위 강요 사례도 발견됐다. 한 남자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올해 3월 3학년 학생이 1~2학년 후배에게 여러 차례 성적인 행위를 요구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 학생은 조사에서 “(선배가)1학년 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자기 XX를 빨아달라고 했다”며 “여러 사람이 있을 때 요구해서 장난인 줄 알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이런 성적인 요구 외에도 피해자 어머니에 대한 성적 언어폭력도 숙소·운동장에서 일삼았다. 
한 고등학교 야구부 합숙소에 설치된 CCTV 영상이 코치방 컴퓨터로 전송된다. [자료 국가인권위원회]

한 고등학교 야구부 합숙소에 설치된 CCTV 영상이 코치방 컴퓨터로 전송된다. [자료 국가인권위원회]

또 대부분 합숙소는 CCTV를 설치했다. 안전시설을 못 갖춘 곳도 많았다. 이번 조사대상 16곳 가운데 14곳이 CCTV를 설치하고 선수들을 감시했다. CCTV는 합숙소 복도·식당 외에 숙소에 설치한 곳도 많았다. 코치들은 이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이 밖에 스프링클러·비상구·대피로가 전부 없는 곳도 16곳 중 5곳이었다.
 
인권위는 편법·부실운영되는 합숙소에 대해 인권 친화적 기숙사로의 전면 개편을 권고하고 관련 법령 개정 및 교육부의 감독 강화 등을 개선방안으로 제시했다. 24일에는 '합숙소 앞에 멈춘 인권' 실태조사 결과보고 토론회를 열고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개선방안을 찾는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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