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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 피고인 무죄 확정…경찰은 “증거인정 너무 엄격”

중앙일보 2019.10.23 11:26
2002년 5월 부산 사상구의 한 다방 여종업원을 살해한 피의자가 피해자 통장에서 돈을 찾는 모습이 찍힌 은행 폐쇄회로TV(CCTV) 사진. [부산경찰청 제공]

2002년 5월 부산 사상구의 한 다방 여종업원을 살해한 피의자가 피해자 통장에서 돈을 찾는 모습이 찍힌 은행 폐쇄회로TV(CCTV) 사진. [부산경찰청 제공]

장기 미제 사건이었던 부산 ‘태양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이 영구 미제로 남게 됐다. 대법원은 강도살인으로 기소된 양모(48)씨 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검찰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이 선고한 무죄를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일사부재리의 효력을 지닌 면소 판결이어서 양씨가 자백하더라도,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더라도 양씨는 무죄다.
 

2002년 부산서 발생한 ‘태양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
대법원, 피고인에 무죄 확정…영구 미제로 남아

대법원이 피고인 양씨의 무죄를 확정한 ‘태양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은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5월 다방에서 퇴근하던 A씨(당시 22세)가 괴한에게 납치돼 흉기로 살해당한 사건이다. 범행 9일 만에 마대 자루에 담긴 A씨 시신이 바다에서 발견됐다. A씨는 흉기로 가슴 등을 40여 차례의 찔려 살해됐다.  
 
이 사건은 10여년간 미궁에 빠졌다가 살인사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일명 태완이법)이 개정된 2015년, 경찰이 재수사를 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경찰은 A씨가 사망한 당일 예·적금을 인출한 양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2017년 붙잡아 재판에 넘겼다.  
 
1, 2심 법원은 양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경찰은 4가지 증거를 제시했다. 양씨가 A씨 사망 당일 A씨의 예금을 인출한 점, 양씨가 A씨 예금 비밀번호를 알게 된 정황 진술을 번복한 점, 마대 자루를 함께 들어줬다는 양씨 동거녀의 진술, 양씨가 자백했다는 조사 경찰관의 증언 등이다. 법원은 경찰이 제시한 간접증거를 바탕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2002년 부산 사상구에서 발생한 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 피의자가 무려 15년여 만인 2017년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15년전 발견된 살인사건 피해자 시신이 담긴 마대자루. [사진 부산경찰청 제공]

2002년 부산 사상구에서 발생한 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 피의자가 무려 15년여 만인 2017년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15년전 발견된 살인사건 피해자 시신이 담긴 마대자루. [사진 부산경찰청 제공]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 1월 대법원은 ‘중대 범죄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데 한 치의 의혹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부산고법은 지난 7월 “범행은 의심스러우나 유죄를 증명할 간접증거나 직접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양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부산고법은 양씨 동거녀의 기억이 오염됐다고 판단, 동거녀의 진술을 간접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은 “간접 증거에 대한 판단을 다시 받아보겠다”고 대법원에 재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부산고법)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대법원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다”며 “원심 판단이 검찰 상고 주장처럼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검찰이 3심의 파기환송 판결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환송 판결의 기속력을 중시한 것이다.  
 
경찰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2년간의 수사 끝에 양씨를 붙잡은 부산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 관계자는 “증거 인정을 이렇게 엄격하게 하면 장기 미제사건 용의자를 잡기는 점점 더 어렵다”며 “다른 미제사건의 용의자들이 이번 판결을 보고 무죄로 풀려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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