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공수처 논란에서 생각해야할 점들

중앙일보 2019.10.23 00:57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조국사태에 이어, 삶의 문제가 아닌 권력기관 문제를 둘러싸고 또다시 온 사회가 대시위와 대논쟁 중이다. 적폐청산, 탈원전, 대학입시공론조사, 유치원개혁, 개헌, 선거제 개편, 한일 무역갈등…. 사안마다 온 사회가 갈라져 세몰이를 해야 하다니, 정부와 의회를 포함하여 이 공동체의 갈등해결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에 틀림없다.
 

공수처, 명칭보다 내용이 중요
현재 안, 권력통제와 부패처벌
은폐 및 불가능하게 할 우려 커
민주적 감시가능토록 수정해야

하루하루 삶의 문제도 버거워, 전체 사회문제를 해결하라고 뽑아놓은 정부와 의회가 싸움질만 하고 있어, 그들의 싸움에 힘을 보태느라 노상 떼를 지어 모여야 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나라 모습인지 근래 문명 민주국가에선 전례조차 드물다. 민주화 이후에도 시위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통계를 보면 단단히 고장난 정부 구조임에 분명하다.
 
선현들의 우려처럼, 군주정의 신민은 의당 지나야하나 민주정의 시민조차 넘어 아예 중우정의 우민·중민·폭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왕당파와 의회파, 급진파와 보수파 대결에서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동원되는 ‘우발적 폭민정치’를 넘어, 안정적인 ‘민주적 공화정치’로 가기 위해 한 진영 대신 전체 공화국 시민으로서, 어리석은 지도자와 대표들의 맹성을 안내했던 중용적 지혜들이 절실한 상황이다. 흥분과 격정의 감정 대신 분별과 사려의 이성을 말한다. 심리적 정치적 내전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근본 문제로부터 차분히 살펴보자. 우선 한국사회에서 깨끗한 정부를 갖기 위한 고위공직자의 처벌과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공수처 같은 기구의 필요성은 이로부터 주어진다. 진보·보수를 넘어 정당들과 시민단체들이 그러한 기구의 설치에 동의하였던 이유다. 둘째 검찰과 법원을 포함한 (준)사법기구의 고위공직자에 대한 처벌은 일반국민에 비해 크게 미약하였다는 점이다. 나아가 정부 영역, 공기업, 정부의 민간 지원, 복지예산의 확대로 인해 철저한 감독·수사·처벌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끝으로 민주화 이후 검찰의 역할이 너무 커지면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검찰개혁은 민주화 이후의 상징적 개혁과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까지 하다. 그러나 필요성이 곧 적합성은 아니다.
 
먼저, 민주공화국에서 정부 영역에 대한 제도적 감시와 처벌 문제다. 이는 두 단계다. 감사기구에 의한 직무 및 회계감사가 1단계다. 따라서 감사원 독립을 통한 직무와 회계의 감독·감찰·징계가 철저하다면, 2단계인 검찰과 사법기구에 의한 수사·기소·처벌(권한)은 크게 달라진다. 그간 검찰이 강화된 한 요인은 모든 권력들이 예산권·감사권을 다 틀어쥐고는 자기정부에 대한 감사·감찰을 방해 또는 방치했기 때문이다. 즉 부패감소와 검찰 약화·견제를 위해선 감사원 소속과 감사원장 및 감사위원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어서는 안된다. 감사권의 독립·강화와 의회 귀속이 먼저다.
 
둘째, 근본 원칙의 문제다. 현재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공수처는 권력의 분산과 견제라는 민주공화국의 원리에 비추어 위험하다. 무엇보다 검찰의 분산·약화가 대통령 및 청와대 권력의 강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총량적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부정적 후유증을 낳을 것이다.
 
현재도 득표율에 비교하여 완전 불비례의 승자독식 대통령제인데, 제출된 법률안을 보면 민주공화국에서 엄금하고 있는 ‘국가 안의 국가’(imperium in imperio)처럼 보인다. 특히 수사기관 간 권한과 관할권 문제에 있어 공수처의 독자적인 ‘이첩요구’ 조항(24조 1항/2항)을 보면, 상시적인 수평적 헌법·법률 기관 간의 이러한 특별 재량권의 허용은 제도적 법치를 자의적 인치로 전락시키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다.
 
셋째는 실질적 처벌 효과와 민주주의 위축의 문제다. 기존의 법률체계와 검찰체제에서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였다. 특히 대통령 가족과 측근 범죄는 재임 중 모두 처벌받았다. 심지어 대통령도 처벌받았다. 정치적 사회적 소통적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그러나 공수처 설치 이후 대통령과 가족·측근들의 범죄사실이 수사단계는 물론, 최근 정부의 입법예고처럼, 기소 후까지도 공표되지 않는다면 당대 정권 내의 부정비리에 대한 알 권리와 시민저항과 법적 처벌은 불가능하다. 공수처로의 이첩을 통해 장악한 뒤, 시민과 의회와 언론의 감시 사각지대에서 민주적 통제도 없이 깜깜이 수사를 진행하고, 최악의 경우 선거를 포함한 민주정치에의 영향이 차단된 뒤 종결될 수도 있다. 너무 위험하다. 최근 사태에서 보듯, 현재 권력에 대한 수사는 늘 권력의 간섭이 심하다는 점을 민주개혁파 시민들은 명심해야한다.
 
정부 여당의 법률안을 보면, 세계민주주의 지수 66위·73위 국가를 공수처 유사사례로 들고 있다. 우리는 21위다. 안쓰러울 뿐이다. 장자는 ‘이름은 실질의 손님일 뿐’이라고 말한다. 손님을 넘어 실질을 보지 못하면 검찰개혁은 거꾸로 가고 말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