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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2019년에 우리 마음이 아프다

중앙일보 2019.10.23 00:46 종합 32면 지면보기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지난봄 부터 우리들 마음이 심상치 않았다. 단순 사고로 시작된 ‘버닝썬 사태’가 유명 연예인들의 대화방 스캔들로 번지면서 우리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체념의 시작이었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온라인에서 주고받은 사적인 대화가 공개된다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엄습하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2019년 우리의 봄날은 그렇게 잔인하게 흘러갔다.
 

2019년 행복지수 크게 하락
불신과 분열로 의식 수축된 탓
독서로 멘탈 스트레칭할 필요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불안과 울분, 짜증이 증폭됐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과연 이길 수 있을 것인가라는 불안, 불매운동으로 표출된 울분, 그리고 정부 간 외교의 실종 때문에 우리의 일상이 불행해지고 있다는 인식으로 인한 짜증이 2019년 우리의 여름을 장식했다.
 
그리고 가을에 시작된 광장의 분열.2019년 우리의 봄·여름·가을은 그렇게 실망과 울분과 분노로 물들었다.
  
데이터로 본 2019년 한국인의 행복지수
 
대한민국은 2019년에 정말 불행했을까? 과연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까?
 
한국인의 행복을 매일매일 측정하고 있는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의 2019년은 2018년에 비해 실제로 훨씬 더 우울하고 짜증스러웠다. 국민들의 평균 행복지수는 눈에 띄게 하락했고, 짜증·우울·스트레스는 크게 증가했다. 행복지수의 하락 추세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에 걸쳐 골고루 나타났다. 3월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한 행복 점수가 좀처럼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10대들의 행복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사회의 영향보다는 호르몬의 영향을 크게 받는 존재들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10대의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점이 위안거리라면, 20대의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점은 씁쓸하다. 그들은 2018년과 마찬가지로 2019년에도 다른 모든 연령대 사람들보다 행복감이 낮았다. 워낙 낮으니 더 낮아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2018년에도 화나는 일, 슬픈 일, 고통스러운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정상회담, 러시아 월드컵 등과 같은 범국가적 행복 이벤트들이 존재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올 한 해에는 그런 행복 이벤트들이 거의 없었다. 올림픽·정상회담·월드컵 같은 사건들은 경계를 허물며, 우리의 의식을 확장시킨다. 다양성의 가치를 인식하게 해주고, 인간에 대한 보편적 신뢰를 구축해준다. 행복은 그런 확장된 의식세계와 보편적 원칙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반면에 2019년에 우리가 경험한 사건들은 우리들 사이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일들이었다. 서로 간에 넘을 수 없는 벽을 세우는 사건들이었고, 그 누구에게라도 결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불신을 조장하는 사건들이었다. 그 결과, 우리의 의식세계는 초라할 정도로 수축되었다. 글자 그대로 세상이 줄어들었다. 지리적으로 한 나라가 배제되었고, 정치적으로 절반의 세력이 배제되었다.
  
정신도 육체처럼 스트레칭이 가능
 
근육이 수축되면 몸이 아프듯, 의식이 수축되면 마음이 아픈 법이다. 수축된 근육을 확장시키기 위해 근육 스트레칭을 하듯, 수축된 의식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간단한 멘탈 스트레칭이라도 해야 한다.
 
우선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행복하다. 행복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지 책을 읽기 때문에 행복한지는 더 살펴볼 구석이 있지만, 적어도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책을 많이 읽는다는 사실이다. 광장에 나아가 자신의 신념을 외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도서관 구석의 좁은 책상에 앉아 독서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독서란 의식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이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최고의 수단이다. 둘째, 음악을 들어야 한다. 가끔이라도 음악에 심취하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음악의 즐거움에 푹 빠져드는 경험을 한 사람들일수록 혈액 속의 염증 수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적 경험에 심취하는 경험은 세상에 대하여 마음이 열리는 신호다.
 
셋째, 글자 그대로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뛰고 걷고 땀을 흘려야 한다. 몸의 확장은 의식의 확장으로 연결되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희망이란 가능성의 확장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2019년의 겨울이 남아 있다. 불신과 분열로 수축된 의식을 확장시키기 위해 적극적 공세를 취해야 한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신뢰와 포용의 DNA를 믿어야 한다. 역전은 언제나 가능한 법이니까.
 
최인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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