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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매료시킨 외교관 출신 왕비, 일본 마사코 시대 개막

중앙일보 2019.10.23 00:05 종합 8면 지면보기
일본 왕비 마사코(雅子)가 22일 즉위식에서 전통 예복 차림으로 서 있다. 외교관 출신인 그가 새로운 왕비상을 정립할지 주목된다. [AP=연합뉴스]

일본 왕비 마사코(雅子)가 22일 즉위식에서 전통 예복 차림으로 서 있다. 외교관 출신인 그가 새로운 왕비상을 정립할지 주목된다. [AP=연합뉴스]

22일 즉위식을 올린 나루히토(德仁·59) 일왕의 왕비 마사코(雅子·56)는 결혼 전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겠다”는 포부를 지녔던 외교관이었다. 일 때문에 왕세자의 청혼도 7년간 거절했을 정도로 외교에 애정이 깊다. 한 외교소식통은 “왕비로 등극한 뒤에도 외시 합격 동기가 해외에 부임할 때 축하 e메일을 잊지 않고 보낸다”고 전했다.
 

15kg 예복 입고 축하사절 맞아
하버드 우등, 도쿄대 재학 중 외시
지금도 외교관 동기들과 e메일
보수파 “키 크다, 말 많다” 트집
아들 출산 압박에 적응장애 겪어

즉위식을 맞은 마사코 왕비의 감회는 남달랐을 터다. 왕세자비 시절이 그에겐 암흑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후계를 이을 왕자를 출산하라는 왕실 안팎의 압박에 시달리다 적응장애 판정을 받고 대상포진도 앓았다. 약 10년간 칩거하며 공무도 완수하지 못했다.
 
하지만 즉위식과 함께 그의 암흑기는 끝났다. 이젠 그가 외교관으로서의 자질을 살려 새로운 적극적 왕비상을 정립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9일 자신의 생일을 맞아 성명을 내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마사코는 나루히토(德仁)의 7년간 구애 끝에 결혼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사코는 나루히토(德仁)의 7년간 구애 끝에 결혼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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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즉위식을 위해 거처인 아카사카 고쇼(赤坂御所)를 떠나는 마사코 왕비의 표정은 밝았다. 미소를 지으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가 탄 도요타 센추리 차량엔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금장 국화 문양이 박힌 깃발이 나부꼈다. 즉위식에선 주니히토에(十二単)라고 불리는 성장을 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의식을 치렀다. 15㎏에 달하는 예복 차림으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축하 사절을 맞았다. 그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올린 것이다.
 
왕비로서 그의 데뷔 무대는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 행사였다.  
 
5월 27일 왕궁 만찬에서 외교 관례상 그는 주빈인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쪽에 앉았다. 1시간 넘는 만찬 동안 통역은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마사코 왕비가 유창한 영어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대화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사코 왕비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고, 그의 답변을 들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멜라니아 여사와도 양볼에 키스를 나눌 정도로 친분을 쌓았다. 일본 여론도 그에 대해 “기품이 넘친다”며 열광했다. 그의 외교관 DNA가 빛난 데뷔였다.
 
마사코 왕비의 아버지 오와다 히사시(小和田恆)도 외교관이었다. 마사코 왕비에겐 외교관의 피가 흐르는 셈이다. 아버지 오와다는 주미 일본대사관 공사 등 요직을 거쳐 국제사법재판소(ICJ) 소장까지 지냈다. 아버지를 따라 마사코 왕비는 어린 시절 미국·러시아 등지에서 성장했다. 덕분에 영어·러시아어·프랑스어에도 능통하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졸업하면서 우등생인 마그나 쿰 라우데(Magna Cum Laude)로 선정됐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유명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밤 늦게까지 컴퓨터와 씨름하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호평했다.
 
귀국 후 그는 도쿄대 법학부 3학년으로 편입한다. 하지만 곧 중퇴하는데, 외무고시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87년 외무성 근무를 시작한 그에겐 운명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사코 왕비가 지난 5월 방일한 트럼프 대통령과 통역 없이 대화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마사코 왕비가 지난 5월 방일한 트럼프 대통령과 통역 없이 대화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마사코 왕비가 86년 외시에 합격했을 당시 여성 외교관의 숫자는 극히 드물었다. 테레비 도쿄의 당시 인터뷰 영상에서 마사코는 커트 머리에 밝은 미소를 띄우고 “결혼해도 일은 계속하고 싶다” “여성도 외교관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똑부러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해 스페인 엘레나 공주의 환영 리셉션에 신입 외교관으로 참석하며 마사코의 운명은 바뀐다. 나루히토 당시 왕세자가 마사코에게 한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마사코상이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말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며 “마사코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고 밝혔다.
 
이후 나루히토 왕세자가 계속 구애했지만 그는 업무에 집중했다. 영국 옥스퍼드대로 연수를 떠난 뒤에도 나루히토 왕세자의 구애는 계속됐지만, 마사코는 외교관의 길을 걷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루히토 왕세자가 “마사코상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자 둘의 결혼을 위해 외교관들이 총출동했고, 그의 아버지까지 마사코를 설득해 둘의 티타임을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왕세자는 “(결혼을 하면) 외교관을 그만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왕비로서 나와 함께 왕실 외교관이 되면 어떻겠냐”는 논리로 마사코를 설득했다고 한다. 나루히토가 “평생 전력을 다해 마사코상을 지키겠다”고 한 말은 일본 젊은이들의 단골 프러포즈 대사가 됐다.
 
그러나 그의 시련은 결혼 발표 기자회견부터 시작됐다. 공손한 모습으로 회견에 임했지만 일본 보수파들은 “남편보다 19초를 더 말하다니 건방지다”거나 “남편보다 키가 크다”며 트집을 잡았다.
 
결혼 초기엔 외교에 관여하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임신은 왜 못하느냐”는 비판에 시달리다 결국 칩거에 들어갔다. 유산 후 2001년 딸 아이코(愛子)를 낳았지만 아들을 출산하라는 압박은 더 심해졌다. 하지만 이 같은 시련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됐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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