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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황교안 '민부론' 공격한 여당 자료, 작성자 ID는 기재부

중앙일보 2019.10.22 14:58
제1 야당(자유한국당)이 내놓은 경제정책(민부론)을 반박하는 여당 문건을 기획재정부가 대신 작성했다? 
 
최근 국정감사 장에서 일부 야당 의원이 제기한 의혹이다.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명의 반박자료(민부론 팩트체크)는 여당 지위를 남용해 기재부에 하청 생산시킨 게 의심되는 자료"라고 지적했다. 이는 근거 없는 의혹 제기일까. 22일 중앙일보 취재 결과 민주당의 '민부론 팩트체크' 문건을 둘러싸고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상당수 있었다.
 

'민부론 팩트체크' 작성자 ID 'ri****' 기재부 직원 ID와 동일

'민부론 팩트체크' 원본 파일의 '문서 정보'에는 최초 작성자(지은이)란에 A 기재부 서기관이 썼던 이메일 아이디(ri****)가 찍혀 있다. A서기관은 현재 대국회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다. 그는 "아이디 'ri****'은 본인이 사용한 게 맞지만, 민주당 문건을 본 적도 없고, 왜 최초 작성자로 기록됐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전했다. 기재부 내 다른 대(對) 국회 담당 국장급 인사들 역시 모두 "(민부론 팩트체크) 문건 자체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이 발표한 경제정책 '민부론'을 반박하기 위해 작성한 '민부론 팩트체크' 문건에는 최초 작성자(지은이)가 'ri****'로 기록돼 있다. 이 아이디는 기획재정부 소속 A서기관이 쓰던 이메일 아이디다. ['민부론 팩트체크' 캡쳐]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이 발표한 경제정책 '민부론'을 반박하기 위해 작성한 '민부론 팩트체크' 문건에는 최초 작성자(지은이)가 'ri****'로 기록돼 있다. 이 아이디는 기획재정부 소속 A서기관이 쓰던 이메일 아이디다. ['민부론 팩트체크' 캡쳐]

기재부 "민부론, 직원 시켜 하나하나 분석…통계 오류 검증만" 

한국당의 민부론은 기재부 내 종합정책과에서 검토한 것은 맞다. 민부론에 제시된 각종 경제 통계와 지표 등에 대한 '팩트체크'도 이뤄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국정감사에서 "민부론에 대해 직원을 시켜 하나하나 분석을 다했다. 20개 과정 중 8개 과제가 정부 정책과 유사하고, 나머지는 차이가 있다는 것도 분석을 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렇게 분석한 내용을 민주당에 전달하기도 했다. 다만 기재부 분석은 민부론에 대한 기초적인 수치 오류를 검증한 것에 불과했다는 전언이다. 고광희 기재부 종합정책과장은 "(기재부 안에서) 민부론의 사실관계를 정리한 자료는 있었다"며 "다만, 이 자료와 민주당의 '민부론 팩트체크' 자료가 같은 문건인지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법안 국회 제출, 시범사업 추진' 정부 작성 의심 문구 상당수 

기재부는 민부론의 통계 오류 등 '가치 중립적' 검증에 국한했다고 해명했지만, '민부론 팩트체크' 문건에는 작성 주체가 정부로 의심되는 부분도 상당수 발견된다. 기재부가 단순 오류 검증에서 그치지 않고, 야당 논리에 대한 반박까지 포함해 민주당에 전달했다면, 국가공무원법 65조가 정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가령 '민부론 팩트체크' 문건에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속도를 완화하겠다는 한국당 주장을 반박하면서 "현장 실태와 기업 준비 상황 등을 면밀히 점검해 최종적인 대응 방향을 점검해 나가겠음, (탄력근로제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한정애 의원)했으나 8개월간 계류돼 있는 만큼 조속한 국회 통과가 필요하다"라고 쓰여있다. 현장 실태 점검이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실에 법안을 제출하는 주체는 정부다. 이는 민주당 내부인의 시각에서 쓰였다고 보긴 어려운 문장이다.
민주당의 '민부론 팩트체크' 문건에는 근로시간 단축 속도를 완화하겠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 논리를 실었다. 그러나 문구들은 정당이 아니라 정부 입장에서 서술돼 있다. ['민부론 팩트체크' 캡쳐]

민주당의 '민부론 팩트체크' 문건에는 근로시간 단축 속도를 완화하겠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 논리를 실었다. 그러나 문구들은 정당이 아니라 정부 입장에서 서술돼 있다. ['민부론 팩트체크' 캡쳐]

대기업과 협력사가 벌어들인 이익을 나누는 '협력이익공유제'를 철폐하겠다는 한국당 주장을 반박하면서도 "시범사업 시행 등 추진 과정에서 현장 목소리를 수렴하여 지속 보완 계획"이라고 쓰여 있다. 시범사업 시행 주체도 정부로서 이 역시 정부 시각에서 쓰였다.
 

문장·그래프·도표 양식도 기재부 자료와 판박이 

특히 민주당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 성장'을 옹호하기 위해 서술하는 문장 구조도 평소 기재부 보도자료에 쓰이는 문장과 일치했다. 기재부는 "소득주도 성장은 우리 경제 양극화, 계층이동 단절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나아갈 방향"이란 문구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이 밖에도 기재부가 자료에서 활용하는 것과 똑같은 그래프와 도표가 그대로 들어가 있기도 했다.
평소 기획재정부가 발간하는 자료에 들어가 있는 그래프. 민주당 팩트체크에 실린 그래프와 색깔과 문구 등이 정확히 일치한다. [기획재정부 보도자료 캡쳐]

평소 기획재정부가 발간하는 자료에 들어가 있는 그래프. 민주당 팩트체크에 실린 그래프와 색깔과 문구 등이 정확히 일치한다. [기획재정부 보도자료 캡쳐]

민주당의 '민부론 팩트체크'에 기록된 그래프의 색깔과 문구, 형식 모두가 기획재정부가 평소 보도자료에 삽입하는 그래프와 동일하다. ['민부론 팩트체크' 캡쳐]

민주당의 '민부론 팩트체크'에 기록된 그래프의 색깔과 문구, 형식 모두가 기획재정부가 평소 보도자료에 삽입하는 그래프와 동일하다. ['민부론 팩트체크' 캡쳐]

"정부가 야당 반박 논리 제공했다면, 공무원 중립 의무 위반"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민주당의 '민부론 팩트체크' 자료에는 기재부가 기초 데이터만 제공했다고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며 "기재부가 야당 반박 논리를 제공한 게 맞다면, 정부가 국회 내 특정 정당을 공격한 것으로 삼권분립 원칙을 규정한 헌법 정신 취지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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