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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처럼 까먹지 않아" 양금덕 할머니, 분노의 유니클로 패러디

중앙일보 2019.10.22 05:00

1년5개월의 ‘지옥’…끔찍한 고통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지난 8월 10일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경제침탈 아베규탄! 광주시민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지난 8월 10일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경제침탈 아베규탄! 광주시민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100년이 지난들 잊겄어. 정확히 74년 전이여. 내가 갈 때만 138명이 배를 탔제.”
22일 오후 전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양금덕(89) 할머니 목소리는 떨렸다. 최근 위안부 및 강제징용 조롱 논란을 일으킨 유니클로의 광고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듯했다. 양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에서 17개월간 강제징용 피해를 겪었다.

양 할머니, 패러디 영상 참여 심정
“日사죄도 못 받았는데…원통하다”
윤동현씨 영상에 “잊혀지지 않는다”
유니클로측, ‘조롱 논란’ 방송 중단

 
양 할머니는 유니클로 광고에 대해 “강제징용 후 74년간 사죄도 못 받았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생겨 원통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주·목포·광주·순천·여수에서만 138명이 배를 탈 때나 온종일 매를 맞아가며 비행기를 닦아낼 때 일은 10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양 할머니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44년 5월 ‘학교를 보내준다’는 일본인 교장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시모노세키행 배를 탔다”며 “비행기를 만드는 미쓰비시 공장에서 1년 5개월을 지옥 같은 시간을 버텼다”고 했다. 또 “(유니클로 광고) 얘기를 듣고는 하도 원통하고 분해서 학생이 하자는 대로 푯말을 들었다”라고 했다.
 
위안부 조롱 논란을 일으킨 유니클로 광고 한국어 자막. 오른쪽은 윤동현씨가 SNS에 올린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 [뉴스1] [뉴시스]

위안부 조롱 논란을 일으킨 유니클로 광고 한국어 자막. 오른쪽은 윤동현씨가 SNS에 올린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 [뉴스1] [뉴시스]

유니클로 광고, “원통하고 분해”

양 할머니가 말하는 ‘푯말’은 최근 ‘유니클로 광고 패러디’ 영상 속 팻말을 말한다. 그는 전남대 사학과 윤동현(25·4학년)씨가 지난 1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영상 제작에 참여했다. 양손에는 일본어로 ‘잊혀지지 않는다(忘れられない)’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서다. 이를 본 윤씨가 “할머니, 그 문구 완전 좋은데요!”라고 말하자, 양 할머니는 “난 상기시켜 주는 걸 좋아하거든!”이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누구처럼 원폭이랑 방사능 맞고 까먹지는 않아”라는 말도 덧붙였다.
 
윤씨가 만든 영상은 지난 15일 공개된 유니클로 국내 광고를 패러디한 것이다. ‘유니클로 후리스 : LOVE & FLEECE’ 광고에는 90대 할머니와 10대 소녀가 등장해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영상에서 할머니는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었냐”는 질문에, “그렇게 오래전 일은 기억 못 한다”(I can’t remember that far back)고 답한다.
 
21일 오후 서울 유니클로 광화문점 앞에서 평화나비네트워크와 대학생겨레하나 회원들이 유니클로 광고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뉴시스]

21일 오후 서울 유니클로 광화문점 앞에서 평화나비네트워크와 대학생겨레하나 회원들이 유니클로 광고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뉴시스]

광고 패러디 영상, 10만뷰 돌파

하지만 실제 대사와 달리 한국어 자막은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로 의역돼 있다. 이는 1930년대 강제징용과 위안부 동원이 이뤄지던 80년 전을 지목해 조롱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유니클로는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고, 의역은 단순히 광고 의도를 잘 전달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며 지난 18일부터 광고 송출을 중단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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